지난 2월초 구로공단내 K중소기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환경처 검사반이 들이닥쳤다. 검사반장은 작업중이던 공장근로자중
5명을 지명 차출했다.

그는 이들에게 1분가량 심호흡을 시켰다. 그리곤 "숨이 차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5명중 3명의 손이 올라갔다.

검사반장은 "작업장 청정도 불합격" 딱지를 뗐다. "절반이상이 숨쉬기가
어렵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첨단을 가야 할 환경감시행정에서도 한국의 경제관료들은 청정도
측정기 같은 장비를 외면한다.

대신 "인간 검사장비"를 동원한다. 그나마 검사단계의 얘기다. 시정
단계에 가면 더 기가 찬 일이 벌어진다.

다시 K중소기업. 불합격딱지를 받은 이 회사에 검사반장은 "공기청정기
를 장치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다. 명령과 함께 청정기 제조업체도
소개한다.

K사측은 "환풍기 팬같은 것을 설치하면서 3천만원을 내야 했다"
(L상무)고 투덜댔다.

"할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하지말아야 할 브로커 노릇은 버젓이 한
꼴이다.

교통부산하 자동차공업시험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형식승인검사도
어설프게 이뤄지기는 마찬가지다.

변변한 장비조차 없이 신규 자동차모델에 대해 무려 48건의 형식승인
검사를 실시한다. 기실 검사대상인 국내 자동차모델은 대부분이 일본
이나 미국 유럽모델의 복사판이다.

이미 외국기관에서 검증이 끝난 상태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의미도
없이 강요되는 관료 레드테이프의 전형"이다.

전환기의 경제관료-. 국가경제와 산업을 에워싼 환경이 급변하면서
장비(하드웨어)와 의식(소프트웨어)의 선진화.전문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그네들의 실상은 "구태의연"의 연속일 뿐이다.

장비부족도 문제지만 관료프로페셔널리즘의 결여가 더 큰 독소로
지적되고 있다.

"앞에서도 그랬으니까"라는 전례답습주의에다 "잘 모르니까"는 무소신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그러니 바뀌는 외부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찾는 건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아마추어적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하기 바쁠
뿐이다. 그나마 뒷북치기로 끝나기가 일쑤다.

예를 들어보자. 정부는 각종 불법정보유출 사고가 빈발하자 올들어서야
신용정보에 관한 규정을 부랴부랴 만들었다.

시행은 내년 6월에 가서야 이뤄진다. 백화점의 고객명단이 유출된
"지존파 사건"이 일어났지만 연루자들을 제대로 처벌할 근거규정이
없었다.

이렇게 보면 21세기를 준비한다는 우리관료들이 실상은 스키장이 처음
생겼을 때 "광산법"을 적용하고, 조선소엔 "풀장 규정"을 원용했다는
60,70년대의 행정을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추어리즘은 신정부들어 추진되고 있는 규제완화시책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규제완화지상주의가 무슨 매커시즘처럼 몰아닥치자 그 효과나 부작용에
대한 분석도 뒷전이다.

미국의 클린턴행정부처럼 규제완화조치에 앞서 "비용편익분석(B/C)"을
했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그저 마구잡이식으로 밀어붙이다가 사고가 터지면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자학과 자조 뿐이다.

새로운 제도 도입도 "그저 그냥" 하기는 마찬가지다. 꼼꼼이 잘
따지기로 이름난 재무관료들도 그렇다.

예컨대 선물거래제도를 도입할 경우 시장에 미치는 영향, 금융기관들의
준비상태등 아주 기본적인 사항도 따지지 않는다.

"일본이 주가지수선물제도를 도입하자 미국투자가들이 몰려들었다.
지도해 준다는 명목으로 단물만 빼 먹었다. 더이상 빼 먹을 게 없게되자
더 가르칠 게 없다며 빠져나갔다. 이익은 모두 미국인들에게 내준 채
일본의 선물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어 버렸다"(D증권 도쿄사무소장 K씨)
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이런 아마추어리즘에 대해 관료들 나름의 항변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국내외 연수등 소관분야의 전문지식을 쌓을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상공자원부 S과장)는 건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관원"이다.

민원을 제대로 풀려면 관원부터 해결해줘야 한다(환경처 P과장)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해결모델의 하나로 제시되는 게 일본의 "T자형" 관료조직이다.

일본 행정부는 제너럴리스트인 커리어(고시출신)관료와 스페셜리스트인
논커리어(비고시.특채출신)를 짝지워 전문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커리어들은 2년여마다 국.과를 바꿔줘 행정관리를 전담하는
제너럴리스트로 육성(-)하되, 대신 논커리어들은 수십년간 한 과에서
근무하는 전문가로 활용(|)한다.

상호보완(+)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셈이다. 직위분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관료들에게 전문성을 요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들을 전문가로
키우는 데는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든다. 민간에서 전문가를 수혈받을 수
있는 별정직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김신복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행정학)는 얘기다.

<정리=홍찬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