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중앙은행(BOJ·이하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종료에도 불구하고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긴급 회의를 여는 등 외환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 엔화 가치가 오를 것이란 전망에 국내에서 '엔 테크' 상품은 인기다.

28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엔·달러 환율은 151.97엔까지 치솟았다. 이는 1990년 7월 이후 약 34년 만에 최고치로 이른바 '버블 경제'로 불리던 시절의 수준까지 엔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엔·달러 환율이 치솟는다는 것은 달러화 대비 엔화가 약세를 나타낸다는 뜻이다.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한 뒤에도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일본은행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일본은행은 전날 일본 재무성 등과 긴급회의를 열고 "이는 기본정책(펀더멘털)과 맞지 않는다"며 "투기적인 움직임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과감한 조치에 나설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앞서 일본은행은 지난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 정책금리를 기존 -0.1%에서 0.1%p 올였다. 2016년 2월에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8년 만에 중단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엔·달러 환율 150엔대를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긴다. 엔화 가치가 너무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올라 일본 서민들의 가계부담이 늘어서다. 일본 재무성은 2022년 엔·달러 환율이 151.95엔을 기록했을 때 시장에 개입한 바 있다. 당시 일본은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9조2000억엔(약 82조원)을 투입했다.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금리 종료에도 불구하고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는 것에 대해 '일본은행이 이른 시일 내에 추가로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란 신호를 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금리인상은 표면적으로는 17년 만의 인상과 마이너스 금리 철회지만, 향후 추가적인 인상 조치가 매우 느리게 이뤄질 것이라는 뜻"이라며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국채 매입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한 것이 이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다만 올 상반기 이후 미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면 엔화 가치가 상승으로 방향을 틀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미 Fed 점도표 상에서 올해 최종금리를 상향 조정할 시 엔·달러 환율은 151엔에서 상향 돌파 시도가 나타날 것"이라며 "2분기까지 엔화 약세가 이어진 후 미 Fed 금리 인하와 함께 점진적인 강세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에선 엔화가 장기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에 엔화에 투자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거주자의 엔화예금 잔액은 98억6000만달러(약 13조2900억원)로 전월 대비로 4.6%, 전년 동월 대비로는 60.8% 급증했다.

엔화예금 통장은 엔화 가치가 하락했을 때 원화를 엔화로 바꿨다가 엔화 가치가 오를 때 되팔면 환차익을 얻는 방식으로 수익을 냈다. 때문에 엔화 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사람들이 단기간에 급증했다는 얘기다.

엔화 강세 시 이익을 낼 수 있는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AC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 상장지수펀드(ETF)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한 지난 19일 이후 순자산이 54.3% 급증했다. 이 ETF는 미국 30년 국채와 일본 엔화에 동시 투자하는 현물형 상품이다.

엔화로 미국 장기채를 사는 KBSTAR 미국채30년엔화노출(합성 H)도 이 기간 순자산이 21.9% 늘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린 19일 이후 일주일여 동안 600억원 가까이 자금이 몰렸다. 이 상품은 미국 30년물 국채에 엔화로 투자하는 ETF로 엔화 강세가 이어질 경우 환차익을 거둘 수 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