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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 '심해 주권' 도발에…중·러 "링 위에 올라오고 말해라"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미국과 중국의 광물자원 확보 경쟁의 장이 심해로 확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작년 말 '연장 대륙붕(ECS·Extended Continental Shelf)'을 대폭 늘린다고 선언했다.

이에 유엔 산하의 해저 자원 관련 기구에서 요직을 점령한 중국은 "유엔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미국의 일방적 선언은 무효"라고 맞선 것이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서 필수적인 광물 자원 확보, 해저 케이블 설치 등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美 '연장 대륙붕' 선언에 심기 불편한 중·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현지시간) "미국이 국제 해역의 자원 접근을 규율하는 국제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빈틈을 노려 중국과 러시아가 광물이 풍부한 해저에 대한 미국의 영유권 주장을 일축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지난주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 국제해저기구(ISA) 회의에 참석한 세 명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 측 대표들은 "1982년 체결된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을 아직 비준하지 않은 미국의 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해저의 확장된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유권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연장 대륙붕 지도. 자료=미국 국무부
미국의 연장 대륙붕 지도. 자료=미국 국무부
중국 주도의 제동은 작년 12월 미국 정부가 연장 대륙붕을 발표했을 때 이미 예견됐다. 당시 미국 국무부는 북극, 대서양, 베링해, 태평양, 마리아나제도, 멕시코만 2곳 등 7개 지역에 걸쳐 99만㎢에 달하는 해저 공간을 자국의 연장 대륙붕으로 선언했다. 미 지질조사국(USGS) 조사에 따르면 북극권에는 약 900억배럴의 석유와 1670㎥의 가스, 전력화 기술에 필수적인 광물 상당량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륙붕은 연안국의 바다 아래에 있는 땅으로 영토와 마찬가지로 탐사와 천연자원 개발 등 주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달리 해저면 위의 바다는 포함하지 않는다.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은 연안국의 대륙붕 권리를 연안 기준선에서 200해리(약 370㎞)까지 인정하고 있다.

다만 대륙붕이 그 너머까지 자연스럽게 연장된다는 것을 입증할 경우 350해리까지를 연장 대륙붕으로 설정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아직 UNCLOS를 비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미국 대표단은 169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국제해저기구(ISA)에도 정식 회원국이 아닌 옵저버 자격으로만 참관하고 있다.
수중드론 해저탐사 모습. 사진=포스코이앤씨
수중드론 해저탐사 모습. 사진=포스코이앤씨
이로 인해 미국은 연장 대륙붕을 선언하면서도 UNCLOS 산하에서 대륙붕 경계 문제에 대해 권고하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 절차를 밟지 않았다. 미 국무부는 UNCLOS 규정과 CLCS 과학기술지침에 반영된 국제관습법을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미국이 더 많은 해저 자원 탐사권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법상 절차를 무시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는데, 결국 중국과 러시아가 공식석상에서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육상 자원전에서도 밀렸는데"뒤늦게 고삐 죄는 美

이는 최근 미국 상원에 UNCLOS 비준을 서둘러야 한다는 촉구 공문이 전달된 배경이기도 하다. 서한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공화당의 존 네그로폰테 전 국무부 부장관, 전 국가정보국장이자 퇴역 제독인 데니스 블레어 등이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국제해저기구가 내년쯤이면 심해저 광물 탐사에 관한 규정의 최종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미국이 그 전에 UNCLOS를 비준해야 정식으로 자국 민간 기업들의 해저 자원 탐사·시추권을 '지원'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은 이미 국영기업 3곳에 심해 광물 탐사를 허용했다.
사진=AP
사진=AP
하지만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UNCLOS 비준이 완전히 물건너갈 것이란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그가 재임 시절 각종 국제 기구를 탈퇴하는 행보를 거듭한 '글로벌 이단아'라는 점에서다. 조약 비준을 위해선 상원의원 100명 중 3분의 2이나 지지해야 한다는 점도 난관이다.

미국 하원은 심해 자원 확보전에서 중국의 선전에 뒤늦게 경각심을 갖고 올초 조 바이든 행정부에 새로운 분석을 담은 펜타곤 문서를 내놓을 것을 요청한 상태다. S&P글로벌은 "심해 채굴에 관한 국제 조약을 비준하지 않았던 미국은 중국이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네그로폰테 전 부장관은 "최근 몇 년 동안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광범위하고 불법적인 영유권 주장을 압박하려면 UNCLOS 비준이 더욱 절실하다"며 "중국은 이미 국제해저기구에 광물이 풍부한 해양 사이트 5곳을 등록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미 UNCLOS 협상에서 미국에 지정된 4개 광구 중 2개 광구에 대한 권한을 잃었다"며 "해당 광구들은 그 가치가 1조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구리, 니켈, 코발트, 망간, 희토류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들이었다"고 강조했다.
S&P글로벌
S&P글로벌
호세 페르난데스 미국 국무부 경제성장·에너지·환경담당 차관은 지난달 FT에 "중국이 육상 자원 확보전에서 성공했던 전력을 해저 채굴에서도 반복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미래를 위한 중요 광물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미국안보센터의 조슬린 트레이너 연구원은 "미국의 국가 안보 정책 입안자들로서는 현재 미개척 분야(심해)의 광물이 중국 주도의 개척지가 되고 있는 상황이 우려스러울 것"이라며 "미국이 핵심 광물 자원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기회가 하나 줄어든 셈"이라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