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최혁 기자
사진=최혁 기자
정부가 조선업, 자동차 부품제조, 석유 화학업 분야를 중심으로 직무급제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호봉제가 주를 이루고 있는 현행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노동개혁의 핵심 열쇠라는 인식에서다.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 영역에서도 직무급제 확대에 시동을 걸면서 다소 침체된 ‘노동개혁’의 불씨가 되살아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14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 업종별 임금체계 개편 컨설팅 사업 운영기관 모집 공고를 냈다. 컨설팅은 조선업, 자동차부품, 석유화학업 세 분야별로 중소·중견기업 20곳 이상을 선정해 실시할 계획이다. 전체 예산은 분야별로 20억원씩 총 60억원이 책정됐다.

컨설팅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이후 결과물을 토대로 연말까지 업종별 ‘범용 직무급제 모델’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정부의 임금체계 컨설팅은 과거에도 몇차례 수행됐지만 업종별로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개별 기업 단위로 수행하던 기존 컨설팅 모델은 전체 산업 차원으로 확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해당 분야 다른 기업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모델을 마련해 업종별 확산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산이다.

고용부는 전문가와 업종별 협회·단체 관계자들로 구성된 ‘임금체계 개선위원회’도 구성해 사업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임금체계 개편을 통한 직무급제 도입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최우선 과제다. 연공이 쌓일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호봉제와 달리 직무급제는 각자의 직무·성과에 따라 임금 수준을 다르게 책정하는 임금체계다. 정부는 그간 호봉제로 근로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에 임금 등 근로조건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직무급제 확산이 선결 조건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직무급제와 연결된 또 다른 주요 고용 현안은 정년 연장(계속 고용)이다. 인구 감소로 인한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서면서 정년 연장이 화두지만 호봉제를 방치한 채 법정 정년만 연장할 경우 기업의 임금 부담만 가중되고 생산성은 되레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청년 채용이 더뎌지면서 세대 갈등도 우려된다. 공공기관의 과도한 인건비 등 방만 경영 문제에도 호봉제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꼽힌다.

하지만 여전히 대기업들은 호봉제를 즐겨 운용 중이다. 고용부 임금직무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 중 호봉제를 운용하는 곳은 59.9%에 달한다. 1000인 이상 사업장으로 좁히면 67.9%다. 직무급제 도입 없이 노동개혁은 언감생심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체계 개편은 논의만 수년째”라며 “더이상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