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지난 11일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안을 공개했지만 투자자가 실제 배상받기까지는 최소 수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사안별로 2~3개월이 걸리는 금융감독원의 공식적인 분쟁 조정 절차는 다음달에야 시행되고, 금융사의 ‘자율배상’도 배임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배상안을 따르더라도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큰 만큼 사례별로 은행과 투자자 사이에 ‘도미노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임 논란·줄소송 우려…ELS배상 험로 예고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배상이 이뤄지는 방식은 크게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금융권 자율배상 △소송 등 세 가지로 나뉜다. 투자자가 가장 빠르게 배상받는 경우는 분조위가 다루는 대표 분쟁조정 사례로 선정돼 배상 비율이 결정되는 것이다. 분조위 결정은 정부의 공식적인 판단인 만큼 배상 비율을 놓고 은행과 투자자 사이에 추가적인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문제는 분조위의 분쟁조정 절차도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다음달부터 홍콩H지수 ELS와 관련한 분쟁조정 절차를 개시할 예정인데, 일반적인 사안이면 2~3개월가량 걸린다.

금감원은 홍콩H지수 ELS의 조정 절차를 최대한 빠르게 밟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투자자의 나이, ELS 투자 횟수 등 개인적인 특성을 사례마다 일일이 따져봐야 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조정이 이뤄질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홍콩H지수 ELS 투자자는 39만6000명(중복 포함)에 달한다. 가입 은행에 따른 평균적인 배상 비율도 제각각일 것으로 전해졌다.

분조위의 공식적인 분쟁조정 사례가 충분히 쌓이면 은행들은 이를 참고해 자율배상에 나설 수 있다. 금융당국은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자율배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금융사에 과징금 등 제재 수위를 낮춰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자율배상이 실제로 이뤄지기 위해선 은행별 이사회 동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최소한 1개월 넘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배상 안건이 이사회에 상정되더라도 배상안에 동의하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도 빠른 배상이 힘든 요인으로 꼽힌다. 자율배상은 은행이 분조위나 법원의 공식적인 판단을 받기 이전에 은행 스스로가 과오를 인정하는 일인 데다 은행별로 많게는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정부가 배임으로 인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면 이사회를 설득하는 작업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금융사의 자율배상이 시작되더라도 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은행과 증권사가 자율배상 기준으로 삼을 금융당국 배상안도 배상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크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은행이 투자자에게 ‘설명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는지 여부에 대해 투자자와 은행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지식이 인정되는 자’는 배상 비율이 10%포인트 낮아지는 점도 주관적인 판단 영역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금융 지식이 인정되는 자의 예시로 ‘금융회사 임직원’을 제시했는데, 이외에도 다양한 직업군이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진/김보형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