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LPGA 제공
사진=KLPGA 제공
새 모자를 쓰고 나선 시즌 첫 대회. 자칫 중압감에 눌릴 수 있는 무대이지만 김재희(23)는 4라운드 내내 펄펄 날아다녔다. 모자에 박힌 SK텔레콤의 '행복 날개'가 힘을 내는 듯 했다. 그리고 생애 첫 승을 거두며 자신을 3년간 따라다닌 '기대주' 이름표를 떼어내고 '대세'로 거듭났다.

김재희가 10일 싱가포르의 타나메라C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개막전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여자오픈(총상금 110만 싱가포르달러·약11억원)에서 우승했다. 이날 하루 보기 없이 버디만 6개 잡아내며 최종합계 17언더파 271타를 기록한 김재희는 방신실(20)을 1타 차로 제치고 생애 첫 승을 차지했다. 이날은 김재희의 23번째 생일이기도 해 기쁨을 더했다.
사진=KLPGA 제공
사진=KLPGA 제공

◆데뷔 4년차에 거둔 첫 승

김재희는 정규투어 데뷔 전부터 큰 기대를 받았다. 아이돌 스타같은 외모에 170cm의 큰 키, 공격적인 플레이를 장착해 일찌감치 스타재목으로 꼽혔다. 국가대표를 지내고 2020년 드림투어(2부)에서 3승에 상금왕까지 거머쥐며 화려하게 정규투어에 진출했다. 하지만 첫 승을 좀처럼 잡지 못하며 '기대주'에 머물러야 했다.

반전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상반기 수차례 커트탈락의 아픔을 삼키며 절치부심한 김재희는 지난해 9월 대보하우스디오픈 준우승에 이어 곧바로 이어진 메이저대회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6위에 오르며 상승세를 만들어냈다.

11월 S-OIL 챔피언십은 김재희의 골프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됐다. 최종라운드에서 선두까지 올라섰지만 폭우로 경기가 취소돼 첫 승 기회를 허무하게 날렸다. 눈 앞에서 우승을 날렸지만 김재희는 오히려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첫 우승은 시간문제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아쉬움은 동계훈련에서 치열한 훈련으로 달랬다. 자신의 약점이던 퍼트를 강화하기 위해 퍼트 연습에 집중했다. 지난해부터 연마한 페이드 구질도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페이드 구질은 공에 스핀이 더 많이 걸려 더 정확한 샷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새 스폰서도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번 시즌부터 김재희는 SK텔레콤 모자를 쓰고 대회에 나선다. 골프업계에 따르면 SK텔렠콤은 우승이 없는 선수 가운데 최고 대우를 하며 4년간 후원계약을 체결했다. '골프전설' 최경주를 비롯해 최나연, 이보미 등 최고의 스타들을 후원한 SK텔레콤은 현재 김한별, 이승민을 후원하고 있다. 김재희를 '제2의 최나연·이보미'로 평가했다는 얘기다.
사진=KLPGA 제공
사진=KLPGA 제공

◆"23번째 생일에 값진 선물"

이날 김재희는 '아마추어 돌풍'을 일으킨 오수민(16)에 3타 차 공동2위로 경기를 시작했다. 첫 세개 홀에서 파 행진으로 숨고르기를 마친 김재희는 4번홀(파3)에서 핀 바로 옆에 공을 붙이는 환상적인 아이언 샷을 선보이며 버디 사냥을 시작했다. 3개 홀 내리 버디를 잡아내며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후반들어 방신실과 오수민이 버디를 낚으며 추격에 속도를 냈지만 김재희는 13·14번홀 연속버디로 달아났다. 18번홀(파5)에서 3번째 샷이 그린 프린지에 걸려 위기를 맞았지만 침착하게 파를 지켜내 우승을 확정지었다. 김재희는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제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010310인데 23번째 생일에 값진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이어 "시즌 개막전에서 고대하던 우승을 해 지난 동계훈련 보상을 받은 것 같다. 첫 우승이 올해 목표였는데 이제는 대상과 상금왕으로 바꿔야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2승을 올렸던 방신실은 이날 보기 없이 5타를 줄였지만 우승에는 1타 모자랐다. 2008년생 아마추어 오수민은 역대 4번째 최연소 우승을 노렸지만 단독 3위(15언더파 273타)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날 18번홀 두번째 샷에서 드라이버를 잡는 패기를 보이며 한국 여자골프에 대형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