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도시'라는 수식어만으로는 싱가포르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5일간의 여행을 마친 소감이다. 지속가능성이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싱가포리안들의 삶은 이미 미래 어딘가에 닿아있는 듯 보였으니까. 플라스틱 대신 깜찍한 종이팩에 담긴 생수,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하는 냉방시설, 폐자재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는 재치까지.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지켜본 그들의 ‘실천’은 막연한 비전이나 의무감 대신 유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탄소 저감 효과가 높다는 채식이 대표적이다. 소박한 길거리 음식부터 호화로운 파인다이닝까지, 어렵지 않게 베지터리안 옵션을 찾아볼 수 있게 채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의 채식은 결코 ‘고기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제철 채소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새로운 미식의 세계에 가깝다. 채식 전문 셰프들의 창의력 넘치는 디쉬에 감탄하다 보면 고기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틈이 없기 때문. 이와 같이 싱가포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ESG 여행의 세 가지 즐거움을 소개한다.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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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독창적인 채식의 세계

아날로그 Analogue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기울이는 술 한 잔은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19세기에 지어진 성당에 자리해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날로그로 향해보자. 센토사의 인기 레스토랑인 네이티브 키친을 이끄는 비제이 무달리아르 대표가 새롭게 문을 연 바다. 식품업계의 지속가능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그는 안주는 물론이고 칵테일까지 모두 식물성 재료를 사용해 내놓는다. 이곳만의 독특한 디자인 테이블은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것이다.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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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임스 CHIJMES
차임스는 싱가포르 도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건축물 중 하나다. 1850년대에 싱가포르에 부임한 가톨릭 신부가 여학교와 고아원, 기숙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1904년 세워진 프렌치 고딕 양식 채플은 정교한 석고 세공, 프레스코식 벽화, 벨기에식 스테인드글라스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학교가 이전하면서 리모델링을 거쳐 고급스러운 식당가로 재탄생했다. 매일 저녁이면 라이브 뮤직바와 펍에서 맥주를 즐기는 청년들을 볼 수 있다.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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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핸들 Love Handle
‘무육(無肉) 정육점’이라는 재미있는 콘셉트의 공간. 정육점처럼 냉장 고에 생고기와 양념고기가 진열되어 있지만 100% 식물성 재료를 이용 한 대체육이다. 그러나 재현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곳에서 내놓는 프라이드 치킨, 햄버거, 스테이크에서는 고기의 육질은 물론 육즙까지 느껴진다. 버터와 에그마요 소스 등 음식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에는 유 제품이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버거 패티에서 먹음직스럽게 녹은 체다치즈의 정체는? 코코넛 오일로 만든 비건 치즈다.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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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Joie
유제품과 생선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완전 채식 레스토랑. 그러나 그릴에 구운 스테이크, 모둠회 등이 쓰인 메뉴만 봐서는 일반 레스토랑과 구별하기 어렵다.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6코스로 제공되는 디시가 나올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연어는 당근을, 심지어 ‘오이스터 리프’와 특제 소스를 함께 먹으면 특유의 질감과 향을 완벽히 재현한다. 원숭이브레인버섯 등 새로운 음식과 식재료의 탐험을 즐기는 미식가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메뉴가 많다.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비건 in 슈퍼마켓

싱가포르에서 채식은 보편적인 식문화이기 때문에 시중에서도 비건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슈퍼마켓에서도 옴니미트, 틴들 등 비건 전문 브랜드에서 내놓은 대체육 식품, 식물성 재료로 만든 치즈 등을 판매한다.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싱가포르 국민음료 콤부차
시큼하고 톡 쏘는 맛이 특징인 발효차. 몇 년 전부터 할리우드 셀럽들이 건강 음료로 즐겨 마시면서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싱가포르에서는 국민음료라고 할 정도로 콤부차를 즐겨 마신다. 마트에서도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비건 레스토랑이나 파인다이닝에서도 직접 수제로 만든 콤부차를 맛볼 수 있다. 시큼한 콤부차를 마시면서 싱가포르의 습기와 더위를 날려보자.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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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에도 단계가 있다?
채식주의는 일반적으로 식생활에서 육류를 배제하는 것이지만, 허용하는 음식에 따라 좀 더 단계를 나누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육류는 배제하되 생선과 해물은 섭취하면 ‘페스코’, 육류와 해산물은 먹지 않지만 달걀·유제품처럼 동물에게서 난 음식을 허용하는 단계는 ‘락토 오보’라고 한다. 유제품을 포함해 모든 동물성 음식을 배제하는 완전한 채식 단계는 ‘비건’이라고 부른다. 유제품까지 식물성 재료로 대체해서 사용하는 조이와 러브핸들은 비건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우거진녹음

천혜의 자연 그대로, 숭게이 부로 습지 보존지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야생 숲으로의 탐방을 꿈꾼다면 숭게이 부로 습지 보존지로 떠 나보자. 싱가포르 서북쪽 끝단의 숲은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다. 1986년 말레이자연학회 탐조객들이 처음 발견한 생태 습지로,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 야생의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87ha의 거대한 공원 안에는 멸종위기종인 큰부리도요를 비롯한 희귀 조류와 말뚝망둑어, 진흙가재 등 200여 종의 동식 물이 서식한다.

1989년부터는 싱가포르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일반인에 게도 공개하고 있다. 가이드의 안내와 함께 습지를 탐방하다 보 면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만 봤던 야생의 생명체들과 마주칠 수 있 다. 경고! 늪지에서 살고 있는 악어와 마주칠 수도 있으니 함부로 탐방로를 벗어나지 말 것.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도심 속 정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관광객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르는 싱가포르의 명물, 슈퍼트리 그로브가 있는 곳. 25~50m 높이의 슈퍼트리가 자리한 수직 정원은 해가 지면 색색의 조명이 켜지고, 음악에 따라 빛깔을 바꾸는 ‘가든 랩소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생동감 넘치는 전 세계의 식물을 만나고 싶다면 실내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101ha의 드넓은 공간은 저마다 다른 테마를 가진 온실로 구성되어 있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플로럴 판타지는 인스타그램 인증샷 명소. 예술작품울 방불케 하는 꽃 동굴과 조각들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유리 온실로 이름을 올린 플라워돔에는 1000년 넘은 올리브나무를 비롯해 5개 대륙의 다채로운 꽃과 식물을 만날 수 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정원의 슈퍼트리.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정원의 슈퍼트리.
가든 랩소디 퍼포먼스 두 배로 즐기는 꿀팁
하늘까지 뻗은 거대한 슈퍼트리가 음악에 맞춰 조명쇼를 선보이는 가든 랩소디는 매일 오후 7시 45분, 8시 45분 두 차례 진행된다. 쇼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바로 ‘눕기’다. 쇼가 시작되기 15분 전 슈퍼트리가 잘 보이는 자리를 선점하고 당당하게 눕자. 처음에는 조금 민망할지 모르지만 쇼가 시작되면 알게 된다. 앉아서 보는 것과는 천지차이의 광경이 펼쳐진다는 것!
온실 곳곳에 설치된 영화<아바타> 속 캐릭터.
온실 곳곳에 설치된 영화<아바타> 속 캐릭터.
35m 높이에서 떨어지는 실내 폭포.
35m 높이에서 떨어지는 실내 폭포.
영화 <아바타> 판도라 속으로!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관람객으로 북적이는 공간에서 싱가포르에서 가장 핫한 곳으로 등극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영화 <아바타: 더 익스피리언스> 콘셉트의 몰입형 공간으로 태어났기 때문. 35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 ‘클라우드 마운틴’으로 시작되는 공간은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생생하게 장면을 구현했다.

온실 속 식물은 영화 속에서처럼 초현실적인 빛깔을 띠고, 곳곳에서는 나비족과 판도라 행성 속의 신비한 생명체를 만나볼 수 있다. 나비족과 닿으면 신비한 빛을 뿜는 생명의 나무와 직접 교감해볼 수도 있다. 이 밖에도 ‘토르크 막토’에 도전해보는 가상현실(VR), 자신만의 아바타 캐릭터를 만들어보는 코너 등 다채로운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랜드마크에서도 친환경은 놓칠 수 없지

싱가포르 플라이어
아시아에서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관람차. 정상에 도달하면 지상 165m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건물 42층에 올라있는 것과 같은 높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관람차의 크기는 폭 4m, 길이 7m로 버스 한 대와 비슷해 안정감이 느껴진다. 관람차가 서서히 올라가면서 마리나 베이, 멀라이언 파크,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비롯한 싱가포르의 명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길을 끄는 것은 녹지의 비중. 도시 곳곳에 우거진 숲과 공원을 보면 싱가포르에 왜 ‘정원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센토사
싱가포르 도심과 육로로 연결되어 있는 섬으로, 이국적인 해변을 갖춘 휴양지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세계적인 재활용 예술가 토마스 담보가 이곳을 찾아 색다른 볼거리를 남겼다. 그는 현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버려진 목재와 쓰레기를 활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섬 곳곳에 설치된 네 개의 초대형 조각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 센토사에 방문했다면 매일 저녁 탁 트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워터쇼 ‘윙스 오브 타임’도 놓치지 말 것. 화염 등 특수효과와 레이저가 어우러지는 블록버스터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주얼 창이
싱가포르에서 공항은 또 하나의 목적지다. 공항과 연결되어 있는 멋진 건축물 주얼 창이가 있기 때문. 가장 큰 볼거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폭포인 레인 보텍스. 40m 높이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줄기를 2000여 그루의 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거대한 숲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천장에는 채광창과 반사판 패널을 통해 자연광으로 건물을 채워서 에너지를 절약한다.
사진=김은아, 협조=싱가포르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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