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5일 충북 청주시 문화제조창에서 진행된 육아맘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의 아기를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5일 충북 청주시 문화제조창에서 진행된 육아맘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의 아기를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얼굴 패권주의', '증세없는 안구복지', '민주당 F4'…

외모가 준수한 정치인을 '비주얼'로 띄우면서 '셀럽 정치화'하는 모습은 과거에 주로 야권에서 많이 쓰던 전략이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커피를 들고 산책하는 사진 연출에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SNS엔 '커피 CF 같다' '드라마 속 한 장면 같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반면 국민의힘으로 이어진 보수정당은 그동안 이른바 '비주얼 정치'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국민의힘 의원 이미지를 물어보면 많은 이들은 '영남 사투리를 쓰는 50대 이상 중년 남성'을 떠올렸다. 실제 당 주류 '간판 정치인'들이 그렇기도 하다 보니, '영남 꼰대당'이란 말이 고착화될 정도였다.

그러나 4·10 총선을 앞두고는 국민의힘이 "후보자 마스크에 의도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다"는 평가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언론 주목도가 높은 서울·수도권 등 전략적 요충지에는 이른바 '수려한 외모이거나 젊은, 산뜻하고 세련된, 엘리트 이미지를 가진' 인물들을 집중 배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수가 비주얼에 눈을 떴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강남엔 앵커 셋 투입…이준석 대항마론 한정민

사진 왼쪽부터 배현진 의원, 박정훈 전 TV조선 앵커, 신동욱 전 TV조선 앵커  /각 후보 페이스북
사진 왼쪽부터 배현진 의원, 박정훈 전 TV조선 앵커, 신동욱 전 TV조선 앵커 /각 후보 페이스북
서울 '강남 벨트'가 대표적이다. 최근 국민의힘은 강남병과 서초을에서 현역 유경준·박성중 의원을 '컷오프'하고, 그 자리에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신동욱 전 TV조선 앵커를 투입했다. 또 현역 의원이 불출마하는 송파갑에는 박정훈 전 TV조선 앵커를 단수 공천했다. 송파을 현역인 배현진 의원(전 MBC 앵커)까지 하면 강남 3구에 앵커 출신만 세 명을 배치한 것이다.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깔끔한 엘리트 강남 보수의 이미지가 극대화됐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출마해 주목되는 경기 화성을에는 한정민 전 삼성전자 연구원을 전략 공천했다. 올해 40세인 한 전 연구원은 이 대표와 1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SNS에서는 188cm가 넘는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 때문에 '동탄 훈남'으로 화제가 됐다.
경기 화성을에 출마하는 한정민 후보(완쪽)과 배우 정준호 씨  /한정민 캠프
경기 화성을에 출마하는 한정민 후보(완쪽)과 배우 정준호 씨 /한정민 캠프
중도층과 3040 표심이 중요한 수도권 격전지 공천에는 특히 후보자 '스펙' 못지않게 '인상'도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 용인갑의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수원병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수원정 이수정 경기대 교수, 오산 김효은(레이나) 전 EBS 강사 등 전략·단수 공천된 후보들은 대중적으로 호감형이거나 깔끔한 엘리트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모두 정치는 신인이라 신선함도 갖췄다는 평가다. 서울에선 동작을의 나경원 전 의원을 비롯해 동작갑 장진영 변호사, 강서을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 마포갑 조정훈 의원 등이 외모 호감도가 높은 편으로 꼽힌다. 부산의 강남으로 통하는 해운대갑에 주진우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을 배치한 것도 마찬가지다.

서울 수도권 험지에선 젊은 후보들을 대거 내세웠다. 구자룡(양천갑), 김병민(광진갑), 김재섭(도봉갑), 이재영(강동을), 이승환(중랑을), 김준호(노원을), 이형섭(경기 의정부을), 곽관용(경기 남양주을), 박진호(경기 김포갑) 후보 등이 대표적이다.

'황교안 삭발' 때 '비주얼 정치' 재미…한동훈에 발현

보수가 비주얼 정치에 처음 눈을 뜬 것을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때로 꼽는 이들도 있다.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황 전 대표가 대정부 투쟁 수단으로 삭발을 감행했는데, 이때 지지자들 사이에선 '쾌남' 이미지로 합성한 각종 사진이 인터넷에 돌았다. 황 전 대표 얼굴에 수염을 붙이고 가죽재킷을 입혀 영화 '터미네이터'를 패러디하거나, 영화배우 최민식씨 사진에 황 대표 얼굴을 합성한 모습 등이었다. "얌전한 샌님 이미지가 강했던 황 전 대표에게 의외의 비주얼을 봤다" "'야성'을 기대하던 지지층을 만족시켰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당시 자유한국당 지지율도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삭발했을 당시 인터넷에 돌던 합성 사진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삭발했을 당시 인터넷에 돌던 합성 사진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힘에 본격 등판한 뒤로는 보수의 비주얼 정치가 본격 발현했다.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에도 이미 패션으로 높은 관심을 끌었다. <73년생 한동훈>의 저자 심규진 스페인 IE대 교수는 "올드하고 촌스러운 느낌의 보수 이미지를 세련된 엘리트 느낌의 뉴보수로 바꿨다"고 해석했다. 심 교수는 국민의힘 공천을 두고는 "보스톤컨설팅에서 파견 나온 구조조정 전문가가 회사 인력을 정리한 느낌"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총선 현수막이나 명함에서 드러나는 후보들의 인상도 부동층이나 중도층엔 영향을 크게 줄 수밖에 없다"며 "그런 면에서 국민의힘이 상당히 치밀하게 심리적인 특성까지 고려해 공천 전략을 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