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정형행동을 하는 호랑이의 모습. /영상=김영리 기자
전시장에서 정형행동을 하는 호랑이의 모습. /영상=김영리 기자
"저 호랑이는 올 때마다 저렇게 유리 벽에 코를 박고 왔다 갔다 하기만 하더라고…"

6일 오전 경기 부천시 소재 실내동물원에 아이와 함께 찾은 부모는 "맹수가 좁은 곳에 갇혀있는 게 안타깝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리 벽에 갇힌 커다란 백호랑이 '티거'는 수십분간 좌우로 움직이고 벽 모서리에 머리를 박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모습을 동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무의미한 반복하는 전형적 '정형행동'으로 규정한다.

이곳은 지난 1월 한 유튜버가 올린 '너무 충격적인 실내 동물원 동물 감옥'이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알려지며 여러 시민의 공분을 산 곳이다. 해당 유튜버는 "핫플이래서 왔다가 충격받았다"며 "필사적으로 문을 긁는 동물들이 잊히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이후 이 동물원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고, 경기도민청 공식 홈페이지에 청원 글까지 올라와 1만여명이 한목소리를 냈다.

'동물원법' 개정에도…맹수는 여전히 '실내 감옥'

허공을 바라보는 사자. /사진=김영리 기자
허공을 바라보는 사자. /사진=김영리 기자
정부가 지난해 말 동물복지와 야생동물 관리 강화를 위해 동물원수족관법·야생생물법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열악한 여건에 놓인 야생동물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 운영하는 업체에 한정해 2027년까지 유예기간을 줬기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으로 인정받으려면 보유 동물과 시설을 일정 규모 이상으로 갖춰야 하며, 본래 서식지와 유사하고 습성을 고려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등 내용이 담겼다.

대전 소재의 한 아쿠아리움은 매일 3~4회에 걸친 악어 쇼를 '교육 목적'으로 바꿔 시의 승인을 받아 지금까지도 진행하고 있다. 울산 소재의 한 실내 동물원은 관람객이 직접 동물을 만질 수 있는 데다 최근 털이 뭉텅이째 빠진 라마에게 입마개를 씌운 채 전시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부천의 실내동물원은 지속 민원과 함께 폐쇄 관련 항의가 제기된 곳 중 하나다. 2018년 문을 연 이 동물원에는 1600여평 규모의 사육 공간에 180여종의 동물이 살고 있다. 곰과 호랑이, 사자 등 맹수들이 사는 사육장은 40∼50평 남짓이다. 야생동물의 활동량에 비해 좁은 공간이라, 실내에서 사육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이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그런데도 사업장 추산 기준 지난 한 해 약 20만명이 방문하는 등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미동 없는 사자. /영상=김세린 기자
미동 없는 사자. /영상=김세린 기자
맹수 전시장 앞에 붙은 안내문. /사진=김영리 기자
맹수 전시장 앞에 붙은 안내문. /사진=김영리 기자
이날 방문한 동물원 '정글존'에서 마주한 백사자는 축 늘어진 상태로 수초간 허공을 바라보며 움직이질 않았다. 30초~1분간 눈을 한번 깜빡이지 않고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있기도 했다. 사육사가 지나갈 때 간신히 고개를 돌리는 정도였다. 호저(산미치광이)와 돼지, 사막여우도 먹이 주기 체험을 위해 뚫려있는 구멍에 반복해서 코와 입을 대거나 불안한 몸짓으로 움직이는 것을 반복했다.

다만 정형행동을 보여 방문객들의 안타까움을 산 하이에나 '댕댕이'는 다른 지역에 야외 방사장이 있는 동물원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여러 동물단체와 시민단체의 항의가 이어지자, 동물원 측은 "동물이 지내는 전시장 면적은 야생동물법 기준·학회 권장 기준보다 넓고, 식량을 보장받고 있어 평균 수명이 길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새로 붙였다.

이곳 사육사는 "정형행동을 보이는 동물을 위해 행동 풍부화 교육을 진행하는 등, 최대한 나머지 동물의 안정된 상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현재에는 법적 위반 소지 없이 운영하고 있고, 먹이 체험의 경우 계속 진행한다기보다 개체들마다 상태를 보고 한정되게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동물들의 습성을 고려했을 때 항온·항습 시설을 갖춘 실내 공간에서 기르는 것이 더 적합한 동물도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전시장 모서리 양 끝을 반복적으로 바라보는 호저. /영상=김영리 기자
전시장 모서리 양 끝을 반복적으로 바라보는 호저. /영상=김영리 기자
(좌측부터) 먹이 체험 매대와 전시장 앞 먹이 투입구. /사진=김영리 기자
(좌측부터) 먹이 체험 매대와 전시장 앞 먹이 투입구. /사진=김영리 기자
부천 실내동물원 관계자는 "일부 동물들이 정형행동을 보인 것에 대해 인정한다"며 "암사자, 곰, 호랑이 등 대형 육식성 포유류는 전부 방출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기도 내 대형 테마파크에서도 직접 와서 동물들을 보고 갔고 관심을 보였다"며 "동물들이 있는 실내 면적은 최적의 상태로 개선했으나, 옮길 거처를 찾는 것을 협의하는 게 쉽지 않다. 최대한 빨리 방사할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부연했다.

경기도민청도 야외방사장을 보유한 국내 모든 동물원과 직접 협의해 실내 동물들이 속히 전원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동물원 측의 동물 서식 환경 적정성을 지속해서 점검·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부천 실내동물원의 개선을 요구한 시민의 청원 글에 "좁은 공간에 갇혀 고통받고 있는 호랑이, 곰, 사자, 하이에나 등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청원 내용에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국제멸종위기종인 사자·호랑이·반달가슴곰의 경우, 수용 여력이 있는 동물원이 부족해 적합한 동물원을 찾고 전원하는 행정절차를 거치는 데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김세린·김영리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