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감원 제공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감원 제공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가 자율배상안을 통해 피해자들과 협의하면 제재와 과징금 등의 감경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다음주 홍콩 ELS 책임 분담 기준안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이 원장은 28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연구기관장들과 '2024 금융산업 새 트렌드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홍콩 ELS 사태와 관련해) 과거 잘못에 대해 금전 배상을 해준다고 해서 없던 일로 할 순 없겠지만, 이를 시정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소비자 및 이해관계자에 대한 조치를 한다면 제재, 과징금에서 감경요소로 삼는 게 당연하다"고 밝혔다.

다만 "기준을 만들어서 어떤 정도 제재하거나 과징금을 반영하는가 하는 것은 금융위원회가 기준을 만들고 금감원이 지원해야 하는 게 있다"며 "현재 금융회사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제재가) 유의미한 정도의 반영을 하는 게 제도 운영 차원에서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홍콩 ELS에 대한 금융권 현장점검을 끝내고 책임 분담 기준안에 대한 마무리 작업에 나선 상태다. 이 원장은 "초안이 마무리됐고 각 부서별 의견을 모아 점검 중"이라며 "다음 주말 전후를 넘기지 않은 시점에 저희 입장을 설명하고 은행에도 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분담안에 담길 내용에 대해서는 "과거 사모펀드나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서 배운 점을 감안하되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훨씬 더 다양한 이해관계나 다양한 요소들이 반영될 수 있는 형태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DLF사태 때는 불완전판매가 입증된 사례 별로 피해액의 40∼80%를 배상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ELS 배상 대상에서 재가입자와 증권사 창구를 통해 가입한 투자자들은 제외될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서는 "성급한 결론"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가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선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기준과 구체적 일정은 협의하고 있다"며 "주주 환원과 관련한 특정 지표를 만들고 이걸 충족하지 않으면 퇴출하는 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성장하지 못하거나 재무 지표가 나쁜 경우는 인수합병(M&A) 등이 10년 이상 중단되기도 한다"며 "그런 기업을 시장에 두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밸류업 프로그램을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했다. 이 원장은 "이번 발표 하나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일본은 짧게는 3년, 길게는 아베노믹스 때부터 10년 이상 여러 정책을 진행해 왔다"고 언급했다.

이 원장은 국내 증시 도약을 위해 상법 개정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기업 경영권 확보 차원이라기보단 적절한 승계 장치에 대한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전제로 한 상법이나 자본시장법 개정도 함께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법 행위를 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공적 사업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밸류업과 연계시키는 방안도 밝혔다. 이 원장은 "이해상충·고객자금 유용 등 위법이나 위규 사항이 발견된 금융투자사는 연기금 운영이나 공적 영역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등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조치를 고려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악화가 계속 있는 동안에는 우수 기업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어렵다"며 "성장 동력을 가진 스타트업 등에 돈이 갈 수 있도록 '옥석 가리기'가 명확하게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감원은 올해 금융권이 주목해야 할 트렌드로 △인구구조 변화 △기후금융 △사이버 보안 △인공지능(AI) 금융 △주주환원 정책 강화 등을 선정하고 선제적 대응과 함께 미래 성장동력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