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이 불법 건축물이라고?"…세입자는 날벼락
“전국 다세대·연립주택에 거주하는 임차 가구의 6.0~28.8%가 불법 건축물에 살고 있다. 낮은 단속률을 고려하면 이 비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펴낸 ‘불법건축물의 주거용 임대 실태와 세입자 취약성 대응방안’ 보고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불법 증축이나 무단 용도변경 등으로 ‘불법 딱지’가 붙은 건축물은 이처럼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불법인지 모르고 전·월세로 거주하거나 건물을 매수해 피해를 입는 세입자와 집주인이 적지 않은 만큼,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잘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생빌라, 방 쪼개기 등 다양

불법 건축물 유형. 국토연구원 제공
불법 건축물 유형. 국토연구원 제공
불법 건축물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비주거 용도로 허가받은 건물을 주거 목적으로 사용하는 무단 용도변경 사례가 있다. 근린생활시설을 주거용으로 임대하는 ‘근생빌라’가 대표적이다. 베란다나 옥상을 불법으로 증축하는 불법 증축 유형도 적지 않다. ‘방 쪼개기’ 같은 불법 내부구조 변경이나 취사시설이 금지된 다중주택에 가스레인지 등을 설치해 세를 놓는 불법 내부설비 변경도 비교적 흔한 편이다.

임대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욕심’ 때문에 불법 건축물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는 게 국토연구원의 설명이다. 2층 이상에 있는 근린생활시설은 임대 수요가 낮은 편이다. 이를 주거용으로 바꾸면 세입자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방을 쪼개 가구 수를 늘리면 기대 임대수익도 커진다. 국토연구원 측은 “불법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매수·매도 과정에 제약이 없고 오히려 투자 수익률이 높은 상품으로 인식된다”고 밝혔다.

실효성 없는 제재조치도 불법 건축물 양산에 한몫하고 있다. 정기 점검이나 항공사진을 활용한 단속 등이 이뤄지고 있지만, 인력이나 전문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정부가 건물 내부에 접근해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불법 건축물 소유주에게 이행강제금을 매길 수 있다. 하지만 불법행위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이행강제금보다 큰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작·평택 등서 불법 건물 많아

불법 건축물은 얼마나 많을까. 국토연구원이 위반건축물 대장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의 임대차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다세대·연립 주택에 살고 있는 임차가구 중 5만7000~27만4000가구가 위반 건축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6.0~28.8% 수준이다. 다세대주택은 6.6~27.8%가, 연립주택은 2.5~34.8%가 불법 건축물일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 건축물에 살고 있는 임차가구 비중은 다세대주택의 경우 서울 동작구(20.3%), 광진구(18.8%), 중랑구(18.1%), 강동구(18.1%), 송파구(14.4%) 순서로 많았다. 연립주택은 경기 평택시(33.7%), 서울 중구(19.6%), 동작구(14.7%), 강동구(10.7%), 동대문구(9.7%) 등에서 불법 가구 수치가 높았다.

세입자한테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고 보증보험 가입이 제한되는 게 대표적이다. 주거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국토연구원은 “전입신고나 확정일자 발급은 대체로 가능하지만 미등기 또는 중첩 전입신고로 인한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차난이나 화재 위험 등 생활 환경 측면에서도 불리한 점이 있다. 불법 건축물 단속 및 제재조치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세입자 보호방안을 수립해야 된다는 게 국토연구원의 주장이다.

“집주인 중에서도 피해자 많아”

업계에선 불법 건축물 소유주 중에서도 피해자가 적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국특정건축물총연맹에 따르면 불법 건축물인 줄 모르고 해당 건물을 매수해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서울 광진구의 한 80대 불법건축물 집주인은 “2012년 수리를 할 때 건축업자가 ‘다른 집도 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베란다 확장을 했는데 3년 후 25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내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전국특정건축물총연맹이 대통령실 앞에서 불법 건축물 양성화를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전국특정건축물총연맹이 대통령실 앞에서 불법 건축물 양성화를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경기 성남의 박모씨는 2011년 근생빌라인 줄 모르고 해당 건물을 실거주 목적으로 분양받았다고 했다. 박씨는 “분양 당시 주거용 주택으로 안내받았고 위법 사실에 대해 들은 바 없었다”며 “관할구청의 원상복구 명령서에는 바닥과 보일러, 싱크대, 살림살이 등을 철거하라고 돼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눈앞이 캄캄하다”고 전했다. 전세대출이나 보증이 불가해 후임 세입자를 구하는데 애를 먹는 사례도 여럿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국토교통위는 최근 불법 건축물과 관련해 이행강제금 부과 감경률을 현행 50%에서 75%로 완화하는 내용의 건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전국특정건축물총연맹은 일정 조건을 충족한 위반건축물에 한해 합법적으로 사용승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시적으로 열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