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굳은 표정으로 법원을 나서고 있다. 그는 이번 판결로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9년째 이어진 ‘사법 리스크’ 부담을 덜었다.   최혁 기자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 굳은 표정으로 법원을 나서고 있다. 그는 이번 판결로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9년째 이어진 ‘사법 리스크’ 부담을 덜었다. 최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 사건 관련 1심 재판에서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20년 9월 기소된 후 3년5개월 동안 106회 재판을 거친 끝에 나온 재판부의 첫 판단이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관련자 13명도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그룹 총수가 수사와 재판에 묶인 동안 삼성그룹은 대외 이미지 훼손은 물론 글로벌 경영에 큰 제약을 받았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입증하기 어렵다”며 ‘불기소’ 처분을 권고했음에도 기소를 밀어붙인 검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셀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5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이 사건 공소 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한 조직적 위법 행위라고 봤지만, 법원은 경영상 필요에 따른 합리적 결정이었다는 이 회장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목적만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사업적 목적도 인정된다”며 “두 회사 간 합병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서 대법원이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도움을 받으려고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 측에 말 3필 등 뇌물을 건넨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고 하더라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검찰이 대주주 이익을 위한 약탈적 불법 승계 계획안이라고 주장한 ‘프로젝트-G’ 문건과 관련해서도 ‘실무적인 보고서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구체적인 이 회장의 혐의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에 유리한 방향으로 제일모직 주가는 올리고, 삼성물산 주가를 낮춰 주식 시세를 조종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에게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는 손해를 끼쳤으며,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부정에 관여한 혐의도 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19개 혐의와 관련된 공소 사실을 모두 ‘증거 없음’으로 판단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도 “분식회계의 고의를 인정하기 힘들고, 회계 기준을 위반했다고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1심 선고 직후 검찰은 항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대한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기소 3개월 전인 2020년 6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의결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장이던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이 이끈 수사팀은 그해 9월 이 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 배임 등 19개 혐의로 기소했다.

삼성 측 변호를 맡은 김유진 김앤장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준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허란/민경진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