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자아를 집에 두고 출근한다면 그들은 과연 뭘 하고 지낼까요"
‘누추한 일터에 귀한 자아까지 데리고 다닐 필요는 없다.’

소설가 박지영(사진)의 머릿속에 불현듯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지난해 도서관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다 소설을 청탁받은 뒤였다.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일에 치여 소설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었고, 마음만 복잡해졌다.

뇌리를 스친 문장은 단편 소설 ‘테레사의 오리무중’의 뼈대가 됐다. 소설은 자신의 자아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여성 테레사를 다룬다. 테레사는 자신의 자아를 펫캠(반려동물 관찰용 카메라)으로 지켜본다. 자아는 테레사의 기대처럼 위대한 일을 해내는 대신에 유튜브나 보고 앉아 있어 테레사에겐 한숨을, 독자에겐 웃음을 자아낸다. 이후 잠적한 자아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테레사는 직장 상사 ‘주경’과 예상치 못한 우정을 쌓는다.

박지영 "자아를 집에 두고 출근한다면 그들은 과연 뭘 하고 지낼까요"
기발함과 다정함이 공존하는 소설을 쓰는 박지영 작가의 신간 소설집 <테레사의 오리무중>이 최근 출간됐다. 등장인물을 공유하는 세 편의 연작소설을 담은 소설집이다. 최근 서울 청파로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때면 글 쓰는 자아에 대해 설명 잘하는 자아를 소환하고 싶다”며 웃었다.

박 작가는 요즘도 주말에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는 자아와 평일에 글 쓰는 자아를 오가며 지내는 중이다. 2010년 등단한 그는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을 출간한 이후 9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한동안 청탁이 없었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며 쓰고 싶은 이야기를 쌓아갔다. 최근 들어 <고독사 워크숍>(2022) <이달의 이웃비>(2023) <테레사의 오리무중>(2024)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2022년 김유정문학상을 받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 현대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전작 <이달의 이웃비>까지만 해도 저 스스로가 문학이 고용한 단기계약직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책부터는 ‘어떻게든 계속 소설을 쓸 수 있겠다. 무기계약직 전환을 약속받은 기간제 소설가 상태는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의 소설은 결국 <고독사 워크숍>의 변주라는 말처럼 박지영 소설의 특징은 ‘고독사가 예정된 것 같은’ 외로운 인물들이 이웃을 만나며 소소한 다정함을 나누게 된다는 것. 박 작가는 “저는 해피엔딩이 아닌 걸 참을 수 있는데 애써 낙관과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쪽”이라고 말했다. 그의 소설 대부분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요구하는 일인칭 대신에 삼인칭 화자를 택한다. 그는 “누가 봐도 정이 가는 인물보다는 ‘왜 저래?’ 싶은 주인공을 점차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박 작가는 내년께 장편과 경장편 소설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사이에 쓸 단편도 한창 준비 중이다. 그는 “앞으로 1년에 한 권씩은 꾸준히 책을 내고 싶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