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배터리 광물 中 조달 허용해달라"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전기차·배터리 회사가 흑연 등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중국산 광물을 써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흑연,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의 중국 비중이 너무 높아 이를 쓰지 않고선 전기차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21일(현지시간) 미국 관보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제조 때 특정 광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으면 외국우려단체(FEOC) 규정에서 예외를 두는 ‘최소 허용 기준’을 현재 2%에서 10%로 높여달라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했다.

“비중 작은 광물 원산지 증명 제외”

지난달 미국 정부는 올해부터 FEOC와 연관이 있는 곳에서 생산한 배터리 부품을 사용하면 IRA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내년부터는 FEOC와 연관이 있는 곳에서 생산된 광물로 만든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도 보조금을 제외하기로 했다. IRA 보조금 지급 조건을 기존보다 강화한 것이다.

기업에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2026년까지 마련하라는 주문도 했다. 다만 배터리 가격의 2% 미만인 광물에 대해선 원산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정부에 낸 의견서는 미국에서 팔 전기차들이 IRA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IRA 세부 규정에서 원산지 증명 조건을 완화해달라는 게 핵심이다. 현대차그룹이 요구한 배터리 광물에 대한 FEOC 규정에서 예외를 두는 ‘최소 허용 기준’이 10%로 높아지면, 중국 기업과 합작한 회사가 생산한 광물·부품을 사용해도 IRA 보조금 대상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현대차그룹은 또 FEOC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배터리 소재 명단을 신속하고 구체적으로 발표하고 여기에 흑연도 포함해 달라고 건의했다. 흑연은 음극재 제조에 필수적인 광물이다. SK온도 제출한 의견서에 “중국산 흑연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배터리 소재를 개발하려면 연구개발부터 대량 생산까지 최소 42개월 이상 걸린다”고 적었다.

日·테슬라 “광물 리스트 만들어달라”

미국의 ‘자동차 혁신을 위한 동맹’도 배터리 가격의 2% 미만으로 규정된 FEOC 예외 비중을 5% 미만으로 조정해달라는 요청서를 미국 정부에 전달했다. 동맹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비롯해 포드, 스텔란티스, 현대차그룹, LG, 메르세데스벤츠, 닛산, 폭스바겐 등 미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거의 모든 자동차 연관 회사가 소속돼 있다.

일본자동차협회는 “일본 회사들이 미국 내 배터리 생산량을 늘리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지만 생산 능력 확장엔 시간이 걸린다”며 “안정적인 전기차 공급망을 위해선 광물 비중 적용 시기를 2027년 이후로 늦추고 FEOC 규정 절차를 명확히 해달라”고 건의했다.

테슬라도 의견서에서 “원산지를 증명해야 하는 배터리 소재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명단을 제공해달라”고 했다. 이 회사는 현대차그룹의 요구와 같은 ‘배터리 전체 가치의 최소 비율’ 제도 도입도 검토해달라고 했다.

국내 전기차업계는 미국 정부가 세부 규정을 보완하기 위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미국 회사를 포함해 거의 모든 회사가 비슷한 요구를 한 만큼 일부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의견을 반영해 최종 안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후/김진원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