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고모집의 오랜 부채'와 술 권하는 사회
정말 오랜만에 후배를 대동하고 그 집에 갔다. 호기롭고 당당하게! 드디어 ‘오래 묵은 그 꿈’을 청산할 날이 다가온 것이다. 낡은 나무 탁자에 나무 의자, 너무나도 저렴한 가격, 북적이는 학생들까지. 그래 바로 이거지. 후배들 앞에서 주문을 한다. 호기롭고 당당하게! “이것저것 주세요”는 모양 빠진다. 메뉴에서 “여기부터 저기까지 주세요”가 정답이다. 폼 났다. 그렇게 몇 순배 돌아가며 분위기가 왁자해졌다. 한참이 흐르고 그 꿈의 방아쇠를 당긴다. “고모, 오랜만인데 오늘 이 집 술값은 내가 다 낼게요!” 순간의 정적. 학생들의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때 낯선 목소리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끼어든다. “어이, 거기 학형 몇 학번이요?” 대각선 건너편에 호기롭게 웃고 있는 넥타이. 흘끗 봐도 밀린다. 차가워진 공기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학번을 밝혔다. 그 넥타이, 호탕한 목소리로 “학형, 오늘은 선배에게 양보 좀 하소.” 그 넥타이, 끗발이 4개나 높았다. 그렇게 오래된 ‘꿈의 청산’은 날아갔고, “여기부터 저기까지”로 호기로웠던 내 술값마저 그가 냈다. 한껏 치켜세웠던 내 꼬리, 이미 내려가 있었다.

주인장을 고모라 불렀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생판 남이다. 그런데 50이 다 된 그 교수도, 19살 새내기도 죄다 고모라 불렀다. 그 학교의 수만 명이 전부 그녀의 조카인 셈이니 이런 개족보가 또 있을까? 그 낯선 넥타이도 결국 사촌이었다. 새내기 시절, 촌놈들이 나름의 꿈을 안고 낯선 서울이라는 곳으로 와 외롭고 불안한 마음을 기댈 곳이라곤 고향 친구와 학과 선후배들. 어차피 다들 지갑이 홀쭉하긴 마찬가지, 김치찌개 하나 놓고 막걸리라도 마시며 불안과 외로움을 달랠 수밖에. 막걸리 한 잔에 깍두기 두 개를 먹으려 들면 선배들의 지청구를 듣던 그 허름한 집에 왜 그리도 꽂혔을까?

언제부터인지 백기사들이 등장했다. 오래전에 같은 사정을 겪고 졸업하고 취업하고, 그러다 그 외로움과 불안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를 때 큰마음먹고 와서 “오늘 이 집 술값 다 낼게요!”를 시연하는 백기사. 그렇게 그 옛날 겪어냈던 외로움과 불안의 잔상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세례식 같은 것이다. 생판 남의 세례식 때문에 생각지 않았던 ‘봉변’을 당한 후배들은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선명한 꿈과 꼭 청산해야 할 빚도 생겼다. 그리고 훗날 연어처럼 돌아와 후배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외롭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학교, 촌놈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낯선 곳, 모두가 가난했고 외로웠으니 기댈 수 있는 고모 같은 존재가 간절했을 수도 있다.

그 집 단골이었던 교수가 있었다. 그의 수업시간에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를 다뤘는데 그땐 다들 거나한 예습을 한 후에 불콰한 얼굴로 강의실에 앉는 전통이 있었다. 가끔 과속한 친구가 열변하는 교수 앞에서 무얼 먹었는지 확인하는 만행도 시현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지금이 ‘술 권하는 사회’인데 또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냐는 항변이었다. 고모는 세상을 떠났고, 바통은 다른 고모에게 넘어갔고, 다시 넘어가 이젠 낯선 고모가 낡은 바통을 들고 그 집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이젠 술값 낸다고 소리쳐봐야 쳐다봐 줄 후배 손님조차 없다. 꼰대의 추억이라고? 꼰대는 번데기의 남도 사투리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번데기의 누추함을 거치지 않고 화려하게 비상하는 나비가 있을까? 그런데 왜 그렇게나 마셨을까? 모든 게 구토를 유발하던 사회였으니 도저히 맨정신이기가 어려웠었다. 미래는 불안하고 외롭지 않은 ‘술 권하지 않는 사회’이길 꿈꾸며 그렇게 아파한 시간이 있어서 오늘이 가능했겠지.

그날 내지 못한 술값, 결국 실리콘밸리에서 청산했다. 가장 앞서가지만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 한국의 인재들이 각자의 꿈을 안고 개발자로 또 창업자로 와 있었다. 허름한 한식당에 삼삼오오 모여 냉동삼겹살과 소주로 하루 분량의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모습. 거기 고모는 없지만 우리 청년들의 꿈은 여전히 흔들리며 성장하고 있었다. 부디 그 흔들림을 이겨내고 꼭 아름다운 나비가 되시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낯선 후배들 술값을 한 번쯤은 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