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약체 군대' 넷플릭스가 콘텐츠 패권 쥘 때 적들은 뭐했나 [책마을]
콘텐츠 폭식의 시대다. 언제 어디서나 무제한으로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이런 시대를 연 선두 주자는 단연 넷플릭스다. 디즈니를 비롯한 콘텐츠 왕국과 애플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스트리밍 이후의 세계’는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역사를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계의 막전막후를 전한다. 공동 저자인 데이드 헤이스와 돈 흐미엘레프스키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베테랑 기자들이다.
'최약체 군대' 넷플릭스가 콘텐츠 패권 쥘 때 적들은 뭐했나 [책마을]
2010년 당시 타임워너 최고경영자(CEO)였던 제프 뷰커스는 넷플릭스를 두고 “알바니아 군대”라고 했다. 기존 미디어·콘텐츠 기업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의 조롱이었다.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넷플릭스는 고작 영화 DVD를 봉투에 담아 배달해 주던 기업 아니었던가. 이렇듯 한때 업계를 쥐락펴락했던 사람들의 예상이 어떻게 빗나갔는지, 그들은 왜 넷플릭스라는 다크호스가 자기들을 추월해 저만치 앞서가는 것을 뜬눈으로 지켜봐야 했는지 두 기자가 다년간의 취재 내용을 깨알같이 풀어놓는다.

사실 디즈니도 타임워너도 NBC유니버설도 넷플릭스가 시도한 콘텐츠 스트리밍이 대세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단지 그런 변화를 시도하기에는 기존의 사업 모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너무 컸을 뿐이다.

이런 딜레마는 오프라인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비슷하게 안고 있는 고민이다. “당장 별로 돈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현재 사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는 밥 아이거 디즈니 CEO의 말이 이런 딜레마를 잘 설명해 준다.

웬만한 소설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거대 미디어·콘텐츠 기업들의 CEO와 그들의 참모, 콘텐츠 제작자들이 스트리밍이라는 시대 변화 앞에서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는지가 한 편의 논픽션 소설처럼 펼쳐진다. 이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이 있을 수가 없다. 넷플릭스는 ‘현재 1위’일 뿐이다. 디즈니플러스는 지난 3분기까지 가입자 1억5000만 명을 넘기며 2억4000만 명의 넷플릭스를 맹추격하고 있다.

기자들의 취재기를 바탕으로 한 만큼 상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돋보이지만, 전체적으로 ‘TMI(투 머치 인포페이션)’가 많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 있는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한때 마크트웨인 유람선을 제작했다는 사실은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굳이 필요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 유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