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경영인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는 이승환 에이스기계 실장이 경기 시화공장에서 ‘포장용 종이상자 자동접착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낙훈 한경글로벌강소기업연구원장
2세 경영인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는 이승환 에이스기계 실장이 경기 시화공장에서 ‘포장용 종이상자 자동접착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낙훈 한경글로벌강소기업연구원장
경기 시흥시에 있는 에이스기계(대표 이철·64)의 이승환 실장(33)은 올해 초 이스라엘을 찾았다. 하마스와의 전쟁이 터지기 전이다. 텔아비브 근처 O사의 초청으로 수출 상담을 벌이기 위해서다. O사는 이미 한국의 에이스기계를 잘 알고 있었다. O사로 전직해온 엔지니어들 가운데 에이스기계의 중고제품과 신제품 모두 사용해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에이스기계 제품은 중고품일지라도 외국산보다 성능이 훨씬 좋다”며 품질을 한껏 칭찬했다.

이 실장은 가자마자 1대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는 H사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스라엘에 온 김에 우리와도 상담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H사와도 1대 수출계약을 맺었다. 불과 닷새 만에 대당 40만~50만달러에 이르는 장비 2대에 대한 수출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美·英·獨 등 선진국 시장 개척, 1000만弗 수출탑 받은 에이스기계
에이스기계는 ‘포장용 종이상자 자동접착기’를 생산해 국내외에 파는 업체다. 종이상자를 고속으로 자동 접지, 접착하는 자동화설비다. 인쇄와 절단이 완료된 빳빳한 종이를 접착해 상자로 만들어준다. 실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택배 상자, 화장품 음료수 과자 등의 상자로 쓰인다.

이 회사는 지난 12월 5일 제60회 무역의 날에 ‘1000만불 수출의 탑’을 받았다. 지난해 700만불 수출의 탑을 받은 지 1년 만에 수출액이 50%가량 늘어난 것이다. 수출국은 이스라엘뿐이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주로 선진국이다. 이 실장은 “올해 수출의 탑을 받은 것은 대부분 선진국 수출에서 올린 실적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시화MTV(멀티테크노밸리)에 있는 에이스기계의 이철 대표는 운영과 기술개발을 총괄한다. 인력 확보, 제품 생산, 품질 관리, 마케팅, 수출 등도 도맡아 뛰어왔지만 수년 전부터 2세 경영인인 이승환 실장에게 업무를 하나씩 넘겨주고 있다. 이 실장 역시 수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과 전문성을 쌓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 개척에선 이 실장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 실장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인쇄화상학’을 전공(석사)하며 마지막 학기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이 회사의 경쟁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1993년 창업 이후 30년 동안 한우물을 파며 축적한 기술력이다. 창업자인 이 대표는 부산기계공고 졸업 후 직장생활 경력을 포함해 40년 가까이 현장을 누빈 기술자다. 창업 이후 오로지 이 분야의 신제품 개발, 성능 향상에 온 힘을 쏟아 왔다. 복잡한 기계의 설계도를 머릿속에 넣고 있을 정도로 전문성을 갖고 있다. 그는 대표이사인 동시에 기술자다. 현장에선 작업복을 입고 기름때 묻은 장갑을 끼고 일한다. 2010년엔 기업부설연구소를 인증받았다.

이 실장은 “우리 회사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약 5~7%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세계적인 ‘포천 500대 기업’의 3.6%보다 높고 독일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의 6%와 비슷한 것이다.

둘째, 뛰어난 성능이다. 대표적인 제품은 ‘시그니처 엘리트(SIGNATURE ELITE)’ 자동접착기다. 길이가 14~35m에 이른다. 가장 큰 장비는 ‘그랜저 하이브리드자동차’ 7대를 연결해 놓은 것과 길이가 비슷하다. 여기엔 모터 컨트롤러 등 부품 수만 개가 들어간다. 자동차보다 부품이 많이 들어간다. 시간당 생산능력이 최대 10만 장에 달한다. 초당 약 28장에 이르는 속도다. 눈에 안 보일 정도의 고속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이 회사는 ‘포장용 종이상자의 고속 자동 생산을 위한 패스트 폴딩’과 ‘종이상자 접착기 인라인 적용 점자인쇄기술’로 두 번 신기술(NET) 인증을 받았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점자의 경우 작년 미국에서 자동접착기와 함께 ‘인라인 점자각인장치’를 수주했고 올해 이를 수출했다. 12월 초 이 회사 직원 3명이 현지로 떠나 테스트와 교육도 끝마쳤다. 이 실장은 “고객사가 아주 만족해했다”며 “미국과 유럽에선 의약품 종이상자에 점자 표기가 의무화된 곳이 많고, 한국 역시 내년부터 의약품 점자 표기를 법제화할 예정이라 점자 장비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회사는 정밀기계 분야 최강자인 독일 스위스 업체들과 국제무대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 실장은 “우리 제품의 속도가 더 빠르고 성능도 낫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수출국이 40여 개국에 이른다. 그는 “가격대가 낮은 편은 아니지만 성능이 좋다 보니 주로 선진국에서 수입해간다”고 덧붙였다.

셋째, 적극적인 해외시장 공략이다. 이 회사는 내년 5월 세계 최대 인쇄산업전시회인 독일 ‘드루파(Drupa)’에 시그니처 엘리트와 여기 앞뒤에 붙는 자동화 장비들을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이 전시회는 세계 100여 개국의 바이어가 찾는 전시회다. 에이스기계는 전시장의 35개 부스를 예약했다. 중소기업으로선 작지 않은 규모다. 2016년에도 이 전시회에 참가했다. 또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 에이전트를 두고 현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내수시장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인력 양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장비는 메카트로닉스 제품이다. 기계 전기 전자 제어 소프트웨어 모터 컨베이어 기어 등 수많은 요소·부품 기술이 접목돼야 한다. 이런 지식을 두루 갖춘 인력을 구하긴 쉽지 않다. 그는 인근에 있는 신안산대에 ‘스마트패키징과’를 개설하기 위해 5년간 노력했다. 2억원어치가 넘는 장비와 교재를 이 대학에 기증했다. 마침내 지난해 학과가 개설됐다. 올해 2학년이 된 학생이 20명, 1학년이 23명이다. 그는 매주 화요일 신안산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왔다. 2년째다. 작년엔 ‘성공학’과 ‘패키징개론’을 강의했고 올해는 주 4시간 스마트패키징 실습을 맡고 있다. 해당 학과 졸업 예정인 학생 중 2명이 에이스기계에서 일하고 있다.

인력 양성은 어찌 보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그가 땀 흘리며 이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쓸만한 인력’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패키징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는데 배출되는 인력은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인력과 커다란 미스매칭이 생기고 있다.

이 대표의 꿈은 에이스기계를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이 실장이 세계를 다니며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가업승계 과정에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지만 이 실장 역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뛰고 있다. 마침 이 회사에 합류하기 시작한 꿈나무들이 큰 원군이 되고 있다.

김낙훈 한경글로벌강소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