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는 2019년 입주 후 등기까지 2년가량 걸렸다. 분양계약자들이 조합에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지난 9월 1심 재판에서 승소했다.  /한경DB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는 2019년 입주 후 등기까지 2년가량 걸렸다. 분양계약자들이 조합에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지난 9월 1심 재판에서 승소했다. /한경DB
아파트 매매나 전셋집을 찾다 보면 멀쩡한 새 아파트가 주변보다 상당히 저렴하게 나와 놀라는 경우가 있다. 준공 이후 소송 등 저간의 사정으로 등기까지 시간이 지연되고 있는 곳이다. 이른바 ‘미등기 아파트’다.

2015년 준공됐지만 8년째 등기가 나지 않고 있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 공덕자이가 대표적이다. 이 단지는 지난 9일 과거 현금청산자와 소송이 해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매매가와 전세가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입주 8년 공덕자이 “내년엔 등기”

아현4구역을 재개발한 공덕자이(1164가구)는 2015년 4월 입주했다. 길 하나를 두고 마주 본 마포래미안푸르지오와 함께 아현동 일대 대표 단지로 꼽힌다. 하지만 마포래미안푸르지오와 매매가 차이가 전용면적 84㎡ 기준 2억원가량 벌어진 거래가 적지 않다. 입주 8년차지만 부동산거래 내역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과 서울시 통계에서 찾기가 어렵다. 아직 등기되지 않아 입주권이나 분양권 거래로 분류되고 있어서다.

마포 공덕자이, 주변보다 가격 낮은 까닭은
2006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아현4구역은 2015년 공사를 마치고 준공 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분양 당시 현금 청산자가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면서 소송이 길어졌다. 마포구는 9일 아현4구역 재개발사업과 소송 중이던 구역 내 토지 등 소유자 2인이 소송을 취하하고 ‘공덕자이 미등기 해결을 위한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공덕자이는 아현4구역 조합총회, 이전고시 절차 등을 거쳐 1년 내 등기를 완료할 것으로 마포구는 전망했다.

미등기 아파트는 입주한 지 1년 미만인 곳이 대부분이다.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 동대문구 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 등 입주 1년이 안 된 아파트는 일반적으로 아직 등기가 돼 있지 않다. 하지만 공덕자이처럼 수년이 지난 곳도 적지 않다. 재개발·재건축 단지는 분담금 산정 등 행정 변수가 많아 길게는 수년 동안 등기가 지연되기도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총 167개 조합이 소송 진행(79개), 조합장 또는 청산인의 소재 불명(42개), 잔존업무 처리 등 정상 추진 중(36개)으로 청산이 지연된 것으로 집계됐다.

◆소송 많은 정비사업 등기 ‘하세월’

전문가들은 미등기 아파트를 매매하거나 임차할 때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일반적으로 주변 시세보다 전셋값이 낮아 ‘혹하기’ 쉽지만, 숨겨진 리스크가 많다.

전세로 계약할 때는 분양계약자와 임대인(집주인)이 동일한지, 분양 대금 납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가압류나 가처분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분양계약서 원본과 매도인의 재무 상태를 잘 따져봐야 한다. 엄정숙 법도 대표변호사는 “등기가 없으니 확실한 증거 자료와 소유권자라는 신뢰를 가지고 계약해야 한다”며 “계약서 특약사항에 ‘본등기가 예상한 기일보다 늦어질 경우 책임을 어떻게 한다’라는 식의 위약금 조항을 넣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매수자 입장에서도 대출 임차계약 납세 등과 관련해 재산권 행사에 큰 제약을 받는다. 우선 주택자금대출, 전세대출 등 주거 관련 대출이 불가능하다. 입주권이 아니라 일반분양으로 취득한 분양권은 대출 제약이 더 심하다. 노후 대비 상품으로 분류되는 주택연금 가입도 불가능하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