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윤석열 대통령/사진=AFP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윤석열 대통령/사진=AFP
“While the wind keeps blowing, My feet stand upon a rock(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21일(현지시간) 저녁 런던 버킹엄궁. 찰스 3세 영국 국왕 주최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국빈 환영 만찬서 갑자기 윤동주의 시 ‘바람이 불어’ 한 구절이 영어로 울려 퍼졌다. 시를 읊은 이는 바로 찰스 3세였다.

찰스 3세는 만찬사에서 “한국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그 와중에도 자아감을 보존하고 있음은 한국의 해방 직전에 불행히도 작고하신 시인 윤동주가 예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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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였던 1992년 한국을 방문한 찰스 3세는 “저 자신의 일생 동안 귀국(貴國)이 이룩한 화려한 여정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저의 어린 시절 전후의 참담한 상황을 딛고 일어난 대한민국 국민들은 기적을 이뤘다”고 술회했다.

이날 찰스 3세는 K팝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소프트파워’에 대한 존중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에 대니 보일이 있다면 한국에는 봉준호가 있고, 제임즈 본드에는 오징어 게임이 있으며, 비틀즈의 ‘Let It Be’에는 BTS의 ‘Dynamite’가 있다”는 말도 했다.

윤 대통령 역시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비틀즈와 퀸, 그리고 엘튼 존에 열광했다”고 화답했다. BTS와 영국 콜드플레이가 함께 부른 ‘My Universe’는 양국 문화교류의 한 예로 꼽혔다.

윤 대통령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영면한 영국군 한국전 참전용인 윌리엄 스피크먼 병장과 제임스 로건 일병을 언급하면서 “한국과 영국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를 나눈 혈맹의 동지”라고 강조했다.

건배 제의는 서로 상대방의 언어로 했다. 찰스 3세는 “한·영 양국의 다음 140년간의 돈독한 관계를 위하여 자랑스럽고 기쁘게 건배를 제안하는 바”라며 한국어로 “위하여”라고 외쳤다. 윤 대통령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정형시)를 인용하며 영어로 “To me, fair friend, the United Kingdom, you never can be old(나의 벗 영국, 그대는 영원히 늙지 않으리라)”고 건배를 제의했다.

만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기업인과 한·영 관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참석했다. 영국 측에서는 윌리엄 왕세자 등 왕실 인사와 리시 수낵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외교장관(전 총리) 등이 자리했다.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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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블랙핑크 멤버인 지수·제니·로제·리사는 깜짝 참석으로 눈길을 끌었다. 소속사와 재계약을 협의 중인 블랙핑크가 공식 행사에 ‘완전체’로 등장한 것은 지난 8월 서울 콘서트 이후 3개월 만이다. 패션잡지 보그는 “왕실 행사에 걸그룹이 등장한 것은 1997년 ‘스파이스 걸스’ 이후 이번이 처음”이라고 짚었다.

찰스 3세는 만찬사에서 “유엔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의 옹호인으로 활약하며 전 세계인들에게 환경적 지속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한 블랙핑크의 멤버들인 제니, 지수, 리사, 로제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런던=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