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뒤로 물러설 때 우리는 뛰어들었다.”

지난달 초 대런 우즈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주요 주주를 회의실에 모아놓고 “지속적으로 석유 투자를 늘린 덕택에 작년 560억달러의 순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즈는 회의 참석자들을 둘러보며 “당신들 중 일부는 (2021년) 엔진1과의 위임장 대결에서 엔진1 편을 들었지만, 석유 시장에 관한 인사이트는 내가 옳았다”고 강조했다. 그날 회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엑슨모빌은 미국 최대 셰일오일업체 파이오니어를 595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모두 脫석유 외칠때 과감한 셰일 M&A…결국 숫자로 증명한 '집념의 오일맨'

예상 적중한 ‘반전’

그는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1992년 엑슨모빌에 입사한 그는 2017년 CEO로 취임한 직후 줄곧 “셰일업체를 물색하고 있다”며 인수합병(M&A)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로 석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유가 붕괴라는 대형 악재에 맞닥뜨렸다. 그해 네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더니 ‘224억달러 순손실’이라는 사상 최악의 연간 성적표를 내놨다. 뉴욕증시의 간판인 다우존스지수에서 100년 만에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 무렵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열풍이 불며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압박하는 여론이 거세졌다. 경쟁사들이 화석연료 투자를 축소하기 시작하는데도 요지부동인 엑슨모빌을 겨냥해 행동주의 펀드까지 등장했다. 엔진1은 엑슨모빌과 위임장 대결을 벌인 끝에 이사회 12석 가운데 3석을 확보해 기후보호론자들을 앉혔다. 내부에 적(敵)을 두게 된 우즈 CEO는 “저탄소 사업을 위해 5년간 170억달러를 투입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석유사업은 엑슨모빌의 본질’이라는 신념을 굽힐 수 없었다. 인구 증가세를 토대로 아무리 계산해 봐도 20년 뒤 석유 수요는 지금보다 20% 늘어난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즈 CEO는 엔진1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은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이런 관점을 설명하는 친절함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판단했다. 꾸준한 외부 미팅을 통해 이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그는 “현재 석유업계가 코로나19 봉쇄가 풀리면서 다시 늘어날 수요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나는 릴레이 경주 중”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게 증명됐다. 코로나19로 막혔던 경제 활동이 재개되고, 작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터졌다. 에너지 위기로 유가는 연일 치솟았다. ‘탄소중립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안보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엑슨모빌이 승승장구하는 반면 코로나19 당시 탈(脫)석유에 베팅한 경쟁사들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며 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이 석유 감산 계획을 백지화하거나 저탄소 사업부를 축소한 사례를 들었다. 최근 이사회 내부의 적들마저 공공연하게 “우즈 CEO가 경기 사이클에 역행하는 투자를 추진한 게 회사의 성공 열쇠”라며 그의 경영 전략을 추켜세우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이사회에서 파이오니어 인수를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우즈 CEO는 지난달 맥킨지와의 인터뷰에서 “전 인류는 하루에만 석유가스를 1억7000만 배럴 소비하고 있다”며 “이것을 바꾸려면 수십 년에 걸쳐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리더의 역할은 도전과제를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있다”며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전환과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계산이나 해보고 수치를 설명하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행보에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해 우즈 CEO를 ‘미국 최고의 기후악당’으로 꼽았다. 그가 친환경 에너지 투자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화석연료에서 서둘러 벗어나는 것보다 친환경 기술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즈 CEO는 “화석연료를 친환경적으로 태우는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 탄소포집저장(CCS), 수소·바이오연료 생산 등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엑슨모빌이 석유라는 ‘고갈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탈석유의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과거 CEO 취임 직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CEO는 릴레이 경주 주자와 같다. 내가 할 일은 후임자를 위해 최대한 멀리 달려 앞서 나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