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전세사기' 임대인, 세입자들 만나 실랑이
600세대 넘는 가구에 피해가 미칠 것으로 알려진 '수원 전세사기 의혹' 사건의 임대인이 경찰 압수수색 현장에 나타난 가운데 임차인들이 이들을 붙잡고 피해 변제에 대해 추궁했다.

'수원 전세사기 의혹' 사건의 피의자인 정모 씨와 아내 김모 씨, 아들 정씨 등 3명이 17일 오후 3시께 경기 수원시 팔달구 동수원사거리 인근 도로 갓길에 정차한 택시에 탑승하자 건물 세입자들 10여 명이 택시 창문을 붙잡고 이들을 꺼내려 실랑이를 벌였다.

세입자들은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고 택시 문을 열고 안에 있는 사람의 다리를 붙잡아 끌어당기기도 했다. 사람들이 도로 위로 몰려 나오자 달리던 차들이 속도를 줄여 피하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사건 피의자인 이들은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한 정씨의 법인 사무실에서 집행된 경찰의 압수수색을 참관한 뒤 택시를 불러 현장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정씨의 사무실 건물에 사는 세입자들은 정씨를 만나기 위해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내내 사무실 문 앞을 지키다 정씨 일가가 밖으로 나오자 뒤를 쫓으며 변제 계획 등을 추궁했다.

정씨 일가는 마스크와 스카프,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로 세입자와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뛰어가듯 도롯가로 이동, 미리 불러 둔 택시에 탑승했다.

그러나 뒤따라온 세입자들이 택시를 붙잡고 출발하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아 빠져나가지 못했고, 그대로 20여 분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성난 세입자들은 정씨 일가에게 택시에서 내려 제대로 된 해명을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정씨는 한동안 "죄송하다"는 말 외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세입자가 정씨 일가의 신체를 잡아당기거나 욕설을 하기도 했다.

정씨는 세입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는 질문에 "보상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반드시 구제할 것을 약속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구체적 방법을 묻는 말에는 "차차 말씀드리겠다"며 답을 피했다.

소유 중인 양평 땅을 팔아서 변제하면 되지 않느냐는 추궁에는 "매각해서 변제할 계획이다. 땅이 그렇게 많진 않고 전원주택 한두 채가 있다"고 답했다.

왜 세입자들의 연락을 피한 건지에 대해선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불가항력으로 받지 못한 것"이라며 잠적할 의도가 아니었다고 했다.

건물이 곧 경매로 넘어갈 수 있는데도 전세 계약을 계속 맺는 등 사기의 고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선 "세입자가 재계약을 원했기 때문에 계약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 건물에 층수를 나눠 근저당을 설정한 것이 세입자에게 채무 규모를 속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은행이 안내하는 방법대로 근저당을 설정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출동한 경찰이 중재에 나선 뒤에야 세입자들과의 실랑이가 끝이 났다. 경찰은 보호조치를 위해 정씨 일가를 순찰차에 태워 지구대로 이동시켰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 세입자는 "피해자들이 뻔히 지켜보고 있는데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떠나려는 정씨를 보니 더더욱 용서되지 않는다"며 "세입자들은 죽건 살건 자기만 빠져나겠다는 심보"라고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씨 일가는 부동산 임대업 관련 법인 등 총 18개의 법인을 세워 대규모로 임대사업을 벌였고, 아들 정씨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며 해당 임대차 계약을 중개한 의혹을 받고 있다.

임차인들에 따르면 정씨 일가가 소유한 건물은 51개이다. 이 중 3개 건물은 경매가 예정돼 있고, 2개 건물은 압류에 들어간 상태이다.

피해가 예상되는 주택 세대수는 671세대이다. 예상 피해액(전세 보증금)이 확인된 세대는 394세대이며, 액수는 475억원 상당이다.

임차인들은 세대당 예상 피해액이 1억 2천만원 상당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피해액은 총 81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경찰은 정씨 일가를 상대로 한 고소장 148건(이날 낮 12시 기준)을 접수해 수사를 이어오다가 이날 처음으로 정씨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 수사에 들어갔다.

(사진=연합뉴스)


박근아기자 twilight1093@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