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인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이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영화 관람객은 국내 영화산업 발전 명목으로 입장권 가액의 3%를 부담금으로 내야 한다. 정부가 공익사업 재원 충당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시대에 뒤떨어진 부담금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1
추석 연휴인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이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영화 관람객은 국내 영화산업 발전 명목으로 입장권 가액의 3%를 부담금으로 내야 한다. 정부가 공익사업 재원 충당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시대에 뒤떨어진 부담금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1
추석 연휴를 맞아 유럽 여행을 준비하던 40대 직장인 A씨는 복수여권을 신청하고 수수료 5만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그러자 여권 수수료 3만5000원과 국제교류기여금 1만5000원이 결제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A씨 항의에 구청 공무원은 “법정부담금이기 때문에 무조건 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공항에서 항공권을 발급받은 뒤 1만1000원의 별도 부담금이 부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항공사에 문의하자 정부가 모든 출국자를 대상으로 관광진흥(1만원)과 국제질병 퇴치(1000원) 명목으로 출국납부금을 부과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부가 행정편의를 앞세워 국민과 기업에 준(準)조세인 부담금을 불필요한 분야까지 과다하게 징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마다 부담금 축소를 약속했지만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강제 기부’로 변질된 부담금

영화 관객에 발전기금 3% 걷어가고…출국할 땐 1.1만원 떼어가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2년 7조4000억원이던 법정부담금 징수액은 올해 21조8433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로 늘었다. 같은 기간 부담금 종류는 102개에서 90개로 줄었지만, 국민과 기업이 영위하는 각종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징수액이 늘어났다. 감사원과 산업계는 시대에 뒤떨어진 각종 부담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개발 시기 재정 여력이 부족해 공익사업 재원을 부담금에 의존한 1970~1980년대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부담금은 공익사업 재원 충당을 위해 해당 사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국민과 기업에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이 원칙을 위배하는 부담금이 적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부담금 제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목적 타당성이 부족한 부담금으로 △영화입장권부과금 △국제교류기여금 △출국납부금 등을 꼽았다. 영화입장권부과금은 국내 영화산업 발전 명목으로 영화 관람자에게 입장권 가액의 3%를 부과한다. 영화 제작자나 배급사가 아니라 관객이 낸 돈으로 영화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국제교류기여금은 국제문화·예술 교류 명목으로 여권 발급자에게 1만5000원(10년 유효 복수여권 기준)을 부과하는 부담금이다. 1991년 시행 당시 상대적으로 유복한 해외여행객에게서 기부금을 걷는 취지였지만 연간 해외여행객이 2000만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강제 기부’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국납부금은 모든 출국자에게 관광진흥과 국제질병 퇴치 목적으로 각각 1만원과 1000원을 부과한다. 부담금은 원인 부담 유발자에게 부과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 부과 근거대로라면 출국자를 국제질병 발생의 원인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부담금 구조조정은 지지부진

정부도 2002년 부담금관리 기본법을 제정한 뒤 무분별한 부담금 신설을 억제하고 있다. 매년 부과 타당성 등 운용 현황도 평가한다. 정부마다 부담금을 줄여 국민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기업이 2015년 한 해 납부한 준조세가 16조4000억원”이라며 “기업을 권력의 횡포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수십 년간 관행적으로 걷어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반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담금이 상대적으로 조세저항을 피할 수 있는 데다 국회 통제를 적게 받는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부담금은 일반회계 대신 기금 또는 특별회계에 귀속돼 사업비 확보가 쉽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