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방송사 자체 검증…"방송에 연예인 기용이나 보도 협조 어려울 거라는 인식"

일본 연예기획사 '자니즈 사무소'(이하 자니즈) 창업자에 의한 연습생 성 착취 문제가 장기간 보도되지 않고 방치된 배경엔 '손타쿠'(忖度)가 있었다는 증언이 한 일본 방송사 자체 검증 조사에서 나왔다고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이 5일 보도했다.

'성착취' 日자니즈 보도 안된 배경엔 '손탁쿠'…알아서 기었다?
손타쿠는 사전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배려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의중을 살피며 속된 말로 '알아서 기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일본 사회의 부정적인 문화로 지적되곤 한다.

일본 연예계를 좌지우지하는 자니즈 눈치를 보느라고 주류 언론사들이 제때 충분히 이 문제를 보도하지 못했다는 반성인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주요 민영 방송사인 '니혼테레비'(닛테레)는 이 문제를 둘러싼 보도가 과거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지난 4일 저녁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자니즈 창업자인 고(故) 자니 기타가와의 성착취 문제가 주류 언론에서 장기간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채 방치돼온 배경으로 '매스미디어의 침묵'이 지목된 데 따라 이뤄졌다.

과거 20년 이상에 걸쳐 당시 보도국 담당 기자와 프로그램 담당자 등을 상대로 검증한 결과 이미 몇차례 쟁점화했어야 할 때조차 필요 이상으로 신중한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주간지인 '슈칸 분슌'(週刊文春)이 자니 기타가와의 성착취 문제를 보도한 1999년이나 이를 둘러싼 명예훼손 소송에서 주간지가 승소한 2003년, 대법원 확정판결 때인 2004년에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이에 대해 연예계 가십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는 증언도 나왔지만, 이사지 겐 현 보도국장은 "보도했어야 할 기회를 놓쳐 결과적으로 피해를 키운 것은 뼈아픈 일"이라고 인정했다.

이 방송사 간판 아나운서인 후지이 다카히코는 "20년 이전부터 (자니즈를) 기분 나쁘게 하면 (방송에) 연예인 기용이나 취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인식과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 보도국 간부는 "손타쿠인가라고 얘기한다면 손타쿠라고도 생각된다"라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영국 공영방송인 BBC가 올해 3월 이 문제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영했을 때조차 현장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보도 여부를 논의하는 것 자체를 주저하는 토양" 탓에 제대로 간부진과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자니 기타가와는 1962년 자니즈를 설립해 '스마프'와 '아라시' 등 유명 아이돌 그룹을 여럿 키워냈다.

2019년 사망한 그는 자신의 절대적인 권위를 이용해 다수의 동성 아이돌 지망생 등 수백명을 상대로 성폭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성폭력 문제는 이미 1999년 일본 주간지가 보도해 과거부터 공공연한 소문으로 떠돌았으나, 최근까지 큰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BBC의 올해 3월 다큐멘터리 방영 뒤 얼굴을 드러낸 피해자들 증언이 잇따르고서야 자니즈가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조사단을 꾸려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 사과했다.

한편, 자니즈가 사명 변경 등을 발표한 지난 2일 기자회견 때는 질의자로 지명하지 않을 기자들 명단이 사용됐다고 요미우리는 보도했다.

당시 기자회견 때 질문을 하겠다며 아무리 손을 들어도 지명되지 않은 기자들이 항의하면서 소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자니즈측은 기자회견 운영을 맡긴 홍보사 측에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