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관의 딜 막전막후] 단타 재료된 '한국형 행동주의'
개인 단타 투자자 사이에 ‘강따’라는 투자 기법이 유행했다. 일명 ‘강성부 따라잡기’다. 투자법은 간단하다.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행동주의펀드 KCGI가 저격하는 기업에 일단 따라 들어간다. KCGI가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거나, 주주서한을 보내는 등 이벤트가 있을 때 기사가 쏟아지고 주가가 뛰면 팔고 나오는 식이다.

실제 이 투자법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는 개인투자자가 적지 않다. KCGI가 2018년 11월 한진칼 지분을 9.0% 확보했다고 처음 공시한 뒤 추가로 지분을 늘릴 때마다 실제 주가는 요동쳤다. 경영권 분쟁이 심화하자 주가는 더 뛰었다.

KCGI의 주요 포트폴리오였던 오스템임플란트도 마찬가지다. KCGI가 지난해 말 지분 5% 이상 보유 신고를 하고 오너 퇴진을 압박하자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5% 공시 시점에 오스템임플란트를 사서 UCK파트너스·MBK파트너스 컨소시엄의 공개매수에 응했다면 한 달여 만에 40%가 넘는 수익률을 낼 수 있었다.

新가치 창출하는 전략 절실

강따 투자법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KCGI가 이끄는 ‘한국형 행동주의’가 사실상 단타 재료로 변질됐다는 방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KCGI는 지배구조 개선과 장기적 성장을 함께 도모한다는 투자 철학을 견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목표를 이뤄내지 못했다.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선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패배해 이사 자격 강화와 전자투표제 도입도 수포로 돌아갔다. 오스템임플란트 공개매수에도 별다른 대응 없이 순순히 응했다. 사모펀드 제1의 목표인 수익 극대화란 목표는 이뤘지만 행동주의펀드로서 목표를 달성했는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남는다.

한국형 행동주의는 시장에서 사실상 테마주 정도로 취급된다. 개인투자자는 행동주의펀드의 등장을 단기 호재 수준으로 본다.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경영권 분쟁에만 관심을 쏟는다. 싸움 구경하면서 주가가 뛰기만을 기다린다. 행동주의펀드가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단기 수익만 거두고 빠져나오는 사례가 반복된 결과다.

진짜 행동주의 보여줘야

[박종관의 딜 막전막후] 단타 재료된 '한국형 행동주의'
행동주의펀드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행동주의를 ‘시장에서 수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끌어올려 회사의 본질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본질 가치를 높여 창출한 새로운 수익을 주주와 나눠 가지면 된다.

행동주의펀드가 지배구조 개선을 단순 구호로 활용해 시장에서 수익을 얻으려고 한다면 선취매 후 시세를 조종하는 세력과 다름없다. 이런 행동주의는 소액주주의 응원도, 기관투자가의 지지도 받지 못한다. 강따 투자법이 점점 먹히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KCGI가 DB하이텍 지분 7.05%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한 지난 3월 30일(6만1100원) 이후 지금까지 KCGI 주가는 20%가량 떨어졌다. KCGI의 지분 확보 소식에 DB하이텍은 반짝 상승세를 보였지만 이내 주가가 흘러내렸다. KCGI가 지난달 주주서한을 보낸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 연기금의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지낸 인사는 “행동주의펀드는 한국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행동주의펀드를 지원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국내 행동주의펀드가 요구하는 안건이 단기 배당을 확대해달라는 수준에 그쳐 장기적 관점에서 지분을 들고 있는 연기금으로선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펀드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동주의펀드를 응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시세 차익이 아니라 본질에 집중하는 진짜 행동주의를 보여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