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김명수 대법관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법원행정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김명수 대법관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법원행정처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이 공무원들과의 차별적 처우를 시정해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무기계약직'이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인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고, 공무원과 동일한 근로자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합은 이날 무기계약직 근로자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결정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전합은 대법관 13명 중 7명의 다수 의견으로 이같이 선고했다.

원고들은 국토교통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 소속 국도관리원들이다. 국도관리원은 도로의 유지·보수와 과적 차량 단속 업무를 맡는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공무원들이 받는 수당과 출장 여비 등을 받지 않는다. 원고들은 자신들이 운전직 및 과적단속 공무원들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공무원이 받는 수당 등을 지급받지 못하는 게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며 정부에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1심은 "원고들과 운전직 및 과적단속직 공무원들은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하지 않으므로 처우를 달리한 데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의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지위는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선고 이후 원고 패소로 결정한 원심 판단과 무관하게 무기계약직을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한 부분에 대해선 논란이 일었다. 그동안 하급심에선 무기계약직을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는 올해 5월 고용노동부 등에 근무하는 약 1000명의 무기계약직 근로자가 "수당을 덜 지급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무기계약직은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차별금지사유로 정하고 있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다"고 했다.

작년 12월에도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는 국립대, 정부 부처 등 9개 기관 소속 공무직 근로자 387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하면서 "무기계약직은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 사건 원심에서 사회적 신분에 대해 엇갈린 판단이 나오면서 법조계에선 무기계약직의 차별 대우를 둘러싼 소송 리스크가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전합 판결로 '사회적 신분'에 대한 쟁점이 정리된 셈이다. 다수의견을 낸 전합 대법관 7명은 "개별 근로계약에 따른 고용상 지위는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근로기준법 제6조가 정한 차별적 처우 사유인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의 또 다른 쟁점은 공무원이 국도 관리원의 '비교대상 근로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근로자 차별에 관한 소송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원고들이 지목하는 비교대상 근로자가 원고들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해야만 차별을 인정해왔다.

다수의견을 낸 전합 대법관 7명은 "공무원은 동일한 근로자 집단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워 비교대상 집단이 될 수 없다"고 봤다. 공무원 지위의 특수성과 근무조건의 결정방식, 보수의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원고들과 공무원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데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취지다.

별개의견을 제시한 권영준 대법관은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지위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고, 공무원을 비교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피고가 원고들에게 각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으므로 손해배상책임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민유숙, 김선수, 노정희, 이흥구, 오경미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피고가 원고들에게 가족수당과 성과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는 합리적 이유가 없으므로 피고는 위 각 수당에 상당하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가족수당은 공무원의 종류, 직급, 업무의 내용과 관계없이 오로지 부양가족의 존재와 수에 따라 일률적으로 지급되므로 원고들에게만 지급하지 않은 것은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성과상여금은 근무성적, 실적 등이 우수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급여 항목인데, 원고들에게 업무실적과 성과에 따른 보상을 받을 기회를 전혀 부여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가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무기계약직 근로자가 공무원을 비교대상자로 하여 근로기준법 제6조에 따른 차별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판단한 첫 대법원 사례"라고 밝혔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