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입구. 뉴스1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입구. 뉴스1
전국공무원노조가 강원 원주시청 노조와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집단탈퇴 관련 소송전에서 발을 빼기로 했다. 1·2심에서 연거푸 패소해 승소 가능성이 극히 낮은 상황에서 소송전을 지속할 경우 자칫 다른 노조의 집단탈퇴를 허용하는 대법원 판례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1,2심 법원 "원주시노조 탈퇴 문제 없다"

14일 노동계에 따르면 전공노는 지난 12일 상임집행위원회를 열어 원주시노조와의 총회결의 무효확인 소송 상고 여부를 검토한 끝에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아 상고 실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서 원주시노조는 전공노 소속 원주시지부이던 2021년 8월 24일 임시총회를 열어 조합원 전체 찬반 투표를 통해 민주노총 및 전공노 탈퇴를 결의했다. 2030세대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사드 배치 반대’ ‘이석기 석방’ 등 민노총·전공노가 외치는 정치구호에 대한 반감이 커진 점이 탈퇴의 동력이 됐다.

그러자 전공노는 탈퇴를 주도한 지부 임원들의 권한을 정지하고 제명한 뒤 탈퇴를 무효로 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전공노 측은 “(원주시노조는) 일개 지부에 불과하므로 탈퇴 등 조직 형태 변경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은 지난해 12월 15일 “산별노조와 독립해 의사를 결정할 능력을 갖춘 지부는 자주적·민주적 결의를 거쳐 목적 및 조직을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전공노는 곧바로 항소했다. 2심 진행 과정에선 노조법 18조 4항을 내세워 투표 당시 원주시지부가 정식으로 설립 신고가 안 된 ‘법외노조’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 춘천2민사부는 지난 1일 항소를 기각하면서 “(원주시지부는) 기업별 노조와 비슷한 근로자단체로 일정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며 “설립 신고 여부만 놓고 달리 판단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집단탈퇴 허용 대법원 판례 형성 부담"

2심 판결에서 패소한 전공노는 대법원 상고를 공언했다. 전공노는 지난 11일 상고장을 제출하면서 “1, 2심 모두 절차적 하자가 있다면서도 총회결의를 인정하는 모순된 판단을 내린 것은 산별노조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집단탈퇴 금지 관련 규약을 철폐하라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입건된 전호일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뉴스1
집단탈퇴 금지 관련 규약을 철폐하라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입건된 전호일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뉴스1
그런데 막상 전공노 내부 법률검토에서는 정반대 의견이 나왔다. 전공노를 대리해 소송을 수행했던 담당 변호사는 전공노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총회 결의 과정에 여러 가지 절차적 하자 관련한 쟁점이 존재하는 점에서 그 하자가 중대하여 총회결의가 무효라는 주장을 하면서 다투어 볼 여지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변호사는 이어 “다만 조직형태 변경 의결 정족수를 충족하고 노동청의 총회 소집권자 지명절차를 거친 사례이고, 상고심이 사실심리가 아닌 법률심인 점에서 승소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보인다”며 “상고심을 진행할 경우 소속 지부, 지회 등 산하기관에 대해 조직형태 변경이 허용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고심 제기의 부담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변호인 의견에 대해 상임집행위원회는 “변호사의 의견대로 대법원의 상고심은 사실심리가 아닌 법률심리로 진행돼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음에 상고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전공노는 상집에서 상고 포기로 의견이 모아짐에 따라 오는 19일 열리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이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원주시노조 "상고 포기한다니 아쉽다"

노동계에서는 전공노가 상고를 포기한 건 “자칫 대법원에서 패소할 경우 판례가 돼 민노총 집단탈퇴를 추진하는 다른 노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봤다.

앞서 경북 안동시노조는 지난달 29일 조합원 투표를 거쳐 민노총 및 전공노를 탈퇴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포스코지회가 금속노조를, 올해 5월엔 롯데케미칼 대산지회가 화섬노조 탈퇴를 결정했다.
강원 원주시 공무원노조가 지난달 29일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한 경북 안동시 공무원노조를 방문해 격려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 원공노 제공
강원 원주시 공무원노조가 지난달 29일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한 경북 안동시 공무원노조를 방문해 격려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 원공노 제공
고용노동부는 집단탈퇴를 금지하는 전공노의 규약을 불법으로 판단, 철폐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전호일 전공노 위원장을 7월 말 입건했다.

문성호 원주시노조 사무국장은 “전공노가 대법원 판례로 집단탈퇴가 허용될까 두려워 상고를 포기한다니 너무 아쉬운 마음”이라며 “저희는 산별노조에서 집단탈퇴한 노조를 거대 기득권 노조가 괴롭히는 무의미한 소송이 더 이상 안 나오게 할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