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원주시 공무원노조가 8월 29일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한 경북 안동시 공무원노조를 지지 방문해 손을 맞잡은 모습. 원공노 제공
강원 원주시 공무원노조가 8월 29일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한 경북 안동시 공무원노조를 지지 방문해 손을 맞잡은 모습. 원공노 제공
“노동조합으로서의 실체를 가진 단체들 사이에서 단지 설립 신고 여부에 따라 노동조합법 제18조 4항의 적용 여부를 달리 판단하고 차등을 둘 이유가 없다.”

서울고등법원 춘천2민사부는 지난 1일 전국공무원노조가 강원 원주시청 공무원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총회결의 무효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앞서 원주시노조는 전공노 소속 원주시지부이던 2021년 8월 24일 임시총회를 열어 조합원 전체 찬반 투표를 통해 민주노총 및 전공노 탈퇴를 결의했다. 2030세대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사드 배치 반대’ ‘이석기 석방’ 등 민노총·전공노가 외치는 정치구호에 대한 반감이 커진 점이 탈퇴의 동력이 됐다.

전공노는 탈퇴를 주도한 지부 임원들의 권한을 정지하고 제명한 뒤 무효확인·가처분 등 소송을 제기하며 압박하고 나섰다. 원주시지부는 단일노조이자 산별노조인 전공노의 일개 지부에 불과하므로 탈퇴 등 조직 형태 변경 권한이 없다는 것이 전공노의 논리였다.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은 지난해 12월 15일 1심 판결을 통해 원주시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산별노조와 독립해 의사를 결정할 능력을 갖춘 지회 등은 자주적·민주적 결의를 거쳐 목적 및 조직을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다”는 2016년 발레오전장지회의 금속노조 탈퇴를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따른 것이다.

1심에서 패한 전공노는 2심 재판에서는 탈퇴 투표 당시 원주시지부가 아직 정식으로 설립 신고가 되지 않은 ‘법외노조’라는 점을 새로이 근거로 내세웠다. 탈퇴 투표를 위한 총회 개최 당시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청 원주지청장은 노조법 18조 4항에 따라 총회 소집권자로 우해승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지명했다.

노조법 18조 4항은 ‘노조에 총회 또는 대의원회 소집권자가 없는 경우 조합원 또는 대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회의에 부의할 사항을 제시하고 소집권자의 지명을 요구한 때에는 15일 이내에 회의의 소집권자를 지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공노는 “18조 4항은 설립신고를 한 이른바 ‘법내노조’에 한해 적용된다”며 “피고(원주시지부)는 설령 노조로서 실질적 요건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설립 신고와 같은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른바 ‘법외노조’라 노조법 18조 4항을 적용해 소집권자 지명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원공노는 총회에서 전공노 탈퇴가 결정된 다음날인 2021년 8월 25일 기업볍 노조 설립을 신고했다.

그러면서 “원주지청장이 노조법 18조 4항을 적용해 우해승을 총회 소집권자로 지명한 것은 위법하다”고 덧붙였다.
집단탈퇴 금지 관련 규약을 철폐하라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입건된 전호일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뉴스1
집단탈퇴 금지 관련 규약을 철폐하라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입건된 전호일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뉴스1
재판부는 “당사자 사이에 피고가 2021년 8월경 노조 설립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에 관해서는 특별한 다툼이 없다”면서도 “당시 피고는 노조법 18조 4항의 적용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반박했다.

이같이 판단한 근거로 재판부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실질적 요건’을 강조했다. 당시 원주시지부가 기업별 노조와 유사한 근로자단체로 일정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설립 신고 여부에 따라 노조법 18조 4항 적용여부를 달리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노조의 하부단체인 분회나 지부가 독자적 규약 및 집행기관을 갖고 독립된 조직체로서 활동을 하는 경우 당해 조직이나 그 조합원에 고유한 사항에 대하여는 독자적으로 단체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며 “이는 그 분회나 지부가 설립 신고를 하였는지 여부에 영향받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원공노는 2심 판결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면서 전공노를 향해 “더 이상의 무의미한 소송을 멈추고 정상 노조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원공노는 이번 판결을 포함해 지금까지 전공노와 맞붙은 네 차례 소송전에서 모두 승소했다.

원공노는 “전공노는 2심 판결이 나기도 전 언론을 통해 ‘법적 조치를 그만두면 받아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끝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대법원까지 갈 것을 예고했다”며 “판결을 거칠수록 전공노에 불리한 내용이 판결문에 작성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전공노의 무리한 소송전은 탈퇴 조합 괴롭힘 내지 무분별한 조합비 사용으로 읽힐 뿐”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이 설립 신고가 안 된 지부·지회라도 기업별 노조로서 실질적 요건을 갖춘 경우 탈퇴가 가능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민노총 탈퇴를 추진 중인 다른 노조·지부들의 움직임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금속노조 탈퇴를 결의한 포스코지회에 이어 올해 5월엔 롯데케미칼 대산지회가 화섬노조 탈퇴를 결정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전공노 소속 경북 안동시청 노조가 조합원 투표를 거쳐 민노총 및 전공노를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 설립신고를 했다. 경북에서는 전공노 초대 소방본부장을 지낸 박해근 소방관 등 800여명이 개별적으로 민노총을 탈퇴하는 등 공직사회에서 민노총 탈퇴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문성호 원공노 사무국장은 “소수 노동계 이권 카르텔이 전체 조합원을 대표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며 “전공노는 자신이 있으면 조합비를 써가며 이렇게 소송을 남발하지 말고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민노총 잔류 찬반 투표’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