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협상 중인 현대자동차 노사가 공장 간 생산 차종 재배치를 놓고 ‘노노 갈등’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현대차 노조가 지난달 울산공장에서 쟁의대책위원회 구성을 결의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 제공
임금협상 중인 현대자동차 노사가 공장 간 생산 차종 재배치를 놓고 ‘노노 갈등’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현대차 노조가 지난달 울산공장에서 쟁의대책위원회 구성을 결의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 제공
현대자동차 울산 4공장 노동조합이 공장노조 대표를 대상으로 탄핵을 추진한다. 4공장에서 생산하던 팰리세이드를 5공장에서도 공동 생산하기로 노사가 합의하자 ‘4공장 물량을 강탈당했다’며 공장노조 대표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물량 배분’ 문제로 개별 공장노조 대표를 탄핵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자동차 시장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로 급격히 재편되면서 ‘공장 이기주의’로 인한 노노 간 갈등이 심화할 전망이다.

○시장 재편에 노노 갈등 본격화

7일 업계에 따르면 4공장 노조는 지난 5일부터 공장노조 대표 탄핵을 위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4공장 노조는 “물량 나누기에 동조한 대표는 더 이상 조합원 대표 자격이 없다”며 불신임 서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노사는 지난달 29일 고용안정위원회를 열어 공장 간 생산 물량 나누기에 합의했다. 4공장에서 생산 중인 팰리세이드 북미 수출 물량 중 약 3만 대를 내년 3월부터 5공장에서도 공동 생산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이달 추석 연휴 기간 라인 공사를 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팰리세이드 등 SUV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반면 고급 세단 수요는 줄면서 공장 간 물량 불균형이 발생한 데 따른 조치다. 팰리세이드 등 SUV를 주력으로 생산해 일감이 넘치는 4공장과 제네시스 G80 등 세단만 조립하는 탓에 일감이 줄어든 5공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다.

그러나 4공장 노조원 상당수는 공동 생산에 줄곧 반대해왔다. 신형 싼타페가 출시되면 팰리세이드 인기가 떨어져 4공장 물량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4공장 노조원 3200명 가운데 1700명가량이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그럼에도 4공장 노조 대표 등이 포함된 노조 집행부가 회사와 공동 생산에 합의하자 탄핵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안현호 노조 지부장은 긴급 성명을 통해 “4공장 노조 대표 탄핵 운동을 즉각 중단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팰리세이드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북미법인이 캐나다 공장 신설을 추진했다”며 “물량이 해외 공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 국내 공장 간 물량 나누기에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지부장은 “과거 4공장이 물량 부족으로 힘들었을 때 다른 공장이 과감하게 물량을 나눴다”며 4공장 노조를 질책하는 발언도 내놨다. 그러면서 “노노 간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를 중단해달라”고 했다.

○노사 임금교섭에도 악영향

자동차 시장이 SUV, 전기차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가운데 물량 배분을 놓고 노노 간 이기주의가 극심해질 전망이다. 같은 노조원이라도 어떤 차종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일감과 고용 안정이 갈리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생산 차종 재배치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생산 유연성을 높여야 노사가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가 올해 현대차 노사 교섭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집행부가 ‘노조원 눈치 보기’로 쉽게 합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조는 이날 사측이 제시한 역대 최고 수준의 임금 인상안(기본급 월 10만6000원 인상, 성과급 350%+850만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업 위기는 다른 완성차 업체로도 번지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파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측이 제시한 임금 인상안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계 노사 교섭이 빨리 마무리되지 않으면 하반기 실적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일규/배성수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