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소용없다, 두 눈 질끈 감고 웃을 수밖에
우화적인 그림으로 '체제 비판 작가' 대열에
엄혹한 세상과 잔혹한 역사에서 꽃피운 예술
시니컬 리얼리즘에서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탕컨템퍼러리서 신작 등 20여점 전시
“중국 사찰에 가보면 배를 내놓고 웃는 부처님 모습이 있지요. 그 부처님에게서 웃음을 따 왔습니다. 다만 그 웃음에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의미는 비판적일 수도, 우울할 수도, 기쁠 수도 있겠지요.”
▷언제까지 웃음을 그릴 생각입니까.
웨민쥔은 이 질문에 대답을 주저했다. 말을 아끼는 기색이 역력했다. 3개월 전 중국 인터넷에 “웨민쥔의 작품이 인민해방군을 모독한다”는 글이 올라온 뒤 네티즌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고, 이 영향으로 중국 내 주요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이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웨민쥔의 30년지기 친구이자 인터뷰에서 통역을 맡은 윤재갑 중국 하우아트뮤지엄 디렉터가 대신 나서서 대답했다. “이전에 웨민쥔이 ‘중국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더 포용적으로 변하는 날에는 웃음을 그만둘 수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끝나자 웨민쥔이 말했다. “팅부동(听不懂, 한국 말이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사람의 얼굴에 꽃이 핀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사태 이후 꽃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나는 원래 ‘시니컬 리얼리즘(냉소적 사실주의)’ 사조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새로운 현실을 맞아 환상적인 리얼리즘을 추구하기로 했습니다. 현실을 뒤집어 표현하는 반(反)리얼리즘이라고나 할까요.” 세상이 변하니 그에 맞춰 화풍도 바꿨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세계 미술계에서는 그의 꽃을 ‘마스크의 은유’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시각에 따르면 꽃은 ‘검열된 웃는 얼굴’이다.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 와서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까.
“한국은 미국이나 영국, 중국보다도 훨씬 더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큰 나라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는 긴밀하게 하나로 연결되는 추세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세계 여러 나라들이 보수화되고 고립주의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데, 왜 여러 나라들이 고립을 자처하려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웨민쥔을 ‘한 물 간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일찌감치 거장의 반열에 오른 그가 오랜 세월 ‘웃는 얼굴’을 반복해 그리고 있고, 작품값 역시 2007년께 경매에서 작가 최고가를 기록한 뒤 10년 넘게 답보상태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의 팬층은 전 세계에서 여전히 탄탄하다. 이번 전시 개막 전부터 수억원대 출품작이 팔려나간 게 이를 방증한다.
웨민쥔의 작품 세계가 또 한층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중국의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듯이, 최근 겪고 있는 고초를 계기로 그의 작품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엄혹한 현실에서 또다시 걸작이 꽃필 수 있을까. 웨민쥔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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