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후견주의'라는 국가 자살 바이러스
100년 전 아르헨티나는 세계 7위 부국이었다. 지금은 중간도 벅차다. 왜 몰락했을까. 정치적 후견주의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후견주의는 정치적 지지와 재화의 교환 메커니즘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표’와 ‘특혜’의 맞바꿈이다.

아르헨티나를 망친 페로니즘의 본질이 바로 후견주의다. 후안 페론은 1946년 대통령 첫 출마 때부터 후견주의로 내달렸다. 한 달 치 급여를 ‘13번째 월급’(아기날도)으로 연말에 지급하는 입법으로 노동자들의 몰표를 받았다. 1952년의 재선 때도 그랬다. 극심한 경기 부진이 덮쳐 고전이 예상됐지만 ‘연금 대폭 증액’ 공약으로 대선 사상 최고 지지(63.4%)를 얻었다.

페론은 그렇게 성공했지만 나라는 초토화됐다. 1958년을 시작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22차례나 받았다. 3년에 한 번꼴이다. 그래도 ‘페론당’은 지금까지 13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무려 10번을 이겼다.

후견주의는 라틴아메리카의 특질이 됐다.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아기날도를 닮은 ‘더블 보너스제’로 14년을 집권했다.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룰라의 브라질에서도 후견주의 정치는 고질적 병폐다. 후견주의는 예외 없이 파국을 부른다. 국고가 바닥나 발권력이 동원되고 초인플레이션과 경제 파탄으로 치닫는 수순도 동일하다.

새만금 잼버리는 한국도 후견주의 바이러스 오염지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파행 원인으로 지방·중앙정부의 부패와 무능, 컨트롤타워 부재가 거론된다. 진짜 이유는 권력에 눈먼 정치꾼과 값싼 유권자 간 부적절한 담합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새만금으로 대회 장소가 정해진 것부터 정치적 흥정의 산물이다. 정치적 결속력을 앞세운 전북의 ‘새만금 올인 베팅’과 여야 표 계산이 맞물리자 고성, 무주 등 유력 후보지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물 안 빠지는 땡볕 농지가 야영지로 선정된 코미디도 후견주의의 결과다. 새만금 지원 약속으로 표를 얻은 문재인 정부가 대선 지지에 보답하기 위해 농지관리기금을 특혜 지원한 게 발목을 잡았다. 중앙정부는 ‘나쁜 정치’의 위세를 등에 업고 지역 잇속만 챙기려는 지방정부에 끌려다녔다. 지자체의 무리수 행정이 유발한 혼란을 더 많은 예산을 퍼부으며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잼버리는 끝났지만 후견주의발 쓰나미는 이제 시작이다. 경제성이 바닥임에도 잼버리를 핑계로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받은 ‘세금 블랙홀’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이 본격화됐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군산공항에서 불과 1.5㎞ 거리다. 말이 안 되는 배치지만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지역 공약으로 제시한 뒤 일사천리다.

새만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자투성이인 전국 14개 지방 공항의 사정도 새만금과 비슷하다. 경제평가 낙제점을 받았던 부산 가덕도 신공항은 특별법까지 만들어져 불가역적 국책사업이 됐다. 그러자 특유의 지역정서를 앞세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도 급물살이다. 2년 전 부산시장 선거 당시 여야의 노골적인 가덕도 신공항 매표 장사가 부른 어처구니없는 결과다.

망국적 후견주의의 진앙은 거대 야당이다. 민주당이 주도한 한전공대법, 쌀의무매입법, 노란봉투법 등은 하나같이 특정 지역·집단에 특혜를 몰아준다. 여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병사 월급 200만원, 기초연금 인상 등 매표 혐의 짙은 정책이 수두룩하다. 말로는 야당 포퓰리즘을 비판하면서 막상 표 앞에선 똑같은 행태다. 후견주의가 초래한 중남미의 비극은 ‘국가의 자살’로 불린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는 치명적 자살 바이러스에 한국도 오염됐다는 방증이자 경고다. 국가 자살을 막아낼 국민적 각성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