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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광엽
    백광엽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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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광엽 칼럼] '우아한 몰락'으로부터의 탈출

    미국발 카오스(대혼란)다. 트럼프 상호관세를 미국 대법원이 전격 폐기했다. 미국은 바로 ‘대체 관세’를 꺼냈고 “장난치지 말라”는 살벌한 경고도 보탰다.트럼프는 미국은 왜 이리 좌충우돌하는 걸까. 얼마 전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 궁금증에 답하는 기념비적 연설을 했다. 유서 깊은 뮌헨안보회의에서 50여 개국 정상을 청중으로 고민과 해법을 진솔하게 풀어냈다.요약하면 이렇다. “서구 문명은 공산주의에 맞서 빛나는 승리를 거뒀지만 이후 어리석음과 망상에 빠져 감당하지 못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거대 복지국가에 매달리는 새 저들은 불공정한 보호주의를 방패로 산업화와 공급망 장악에 성공했다. 우리가 선택한 국제무역 시스템은 적에게 경제적 의존을 자초하는 위험한 결정이었다. 서구는 ‘우아한 몰락’(managed decline)으로 질주 중이다. 실수를 직시하고 함께 쇄신과 복원의 과업에 나서야 한다. 미국이 때로 직설적으로 상호주의를 요구하는 이유다. 유럽은 모차르트, 단테, 미켈란젤로, 비틀스의 천재성을 낳은 대륙이다. 두려움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마비된 동맹을 끝내야 한다.”내용적으로 보면 트럼프 주장의 반복에 불과하다. 루비오 장관은 국경 통제, 기후변화, 가자지구, 베네수엘라 같은 논쟁적 주제도 회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설 후 기립박수가 터졌다. 미국이 어디로 가는지, 세계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사적이고 웅장한 관점을 보여줘서다.연설 키워드는 ‘우아한 몰락’이다. 외형상 괜찮아 보이지만 유럽은 예정된 붕괴로 향하고 있다고 봤다. 쇠퇴 이유로 창의성·근면성을 훼손하는 EU의 관료적 규제 시스템을

    2026.02.24 17:43
  • [백광엽 칼럼] 5000 고지에서 보니 비로소 분명해지는 것

    높은 곳에 오르면 그제서야 시야가 넓어지고 맑아진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붐을 타고 ‘코스피 5000’이라는 차원이 다른 고지에서 내려다보니 모호했던 것들이 분명해진다. 성장이 어떤 경로로 달성되는지, 진보는 어떤 축적의 결과물인지 냉혹한 숫자로 감각된다.경제의 창(窓), 주식시장을 통해 알게 되는 성장과 번영의 비밀은 오랜 통념과 상당히 다르다. 아니 정반대에 가깝다. 비효율적·약탈적이라며 일각의 맹비난에 시달려온 ‘오너 경영’의 강력함에 우선 놀라게 된다. 기념비적 상승장을 이끈 ‘톱 6’를 꼽자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산에너빌리티, HD현대다. 하나같이 강력한 오너십이라는 K자본주의 특성을 내재화한 기업이다. 이들이 한국을 프리미엄 국가로 이끌 것이란 두근거림이 코스피를 미답의 경지로 이끌었다.코스피 5000은 한국이 AI 대전환의 중심부로 진입 중이라는 기분 좋은 방증이다. 반면 비슷한 제조강국이지만 오너십이 약한 독일, 일본은 주변부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오너 경영 폐해는 일벌백계해야 한다. 하지만 최악의 오너 경영과 최고의 전문경영인 사례를 비대칭적으로 비교해오지 않았는지 돌아볼 때다. 한강의 기적, IT 강국에 이어 AI 혁명까지 삼세번째 성공신화를 써내려간다면 일방적 오너 경영 폄하는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같은 맥락에서 편견, 선입견을 앞세운 재벌 악마화도 짚어볼 주제다. 한국 기업집단을 지속성장에 역행하는 ‘기형적 체제’로 싸잡는 관성이 적잖다. 그러나 코스피의 기록적 진군은 K거버넌스가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작동 중임을 웅변한다. ‘피지컬 AI·로봇 제국’

    2026.01.27 17:45
  • [천자칼럼] 금광도 두 손 든 금값

    ‘금’만큼 상징으로 가득 찬 재화는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 전부터 ‘부’와 ‘권력’의 징표다.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미다스 왕의 ‘황금손’ 얘기가 나오고, 성경에도 금에 대한 언급이 400여 차례다.금에 대한 갈망은 인류 역사를 바꿨다. 엘도라도(황금 도시)를 향한 집념이 ‘대항해 시대’로 이어져 서방의 팽창을 이끌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년)도 <동방견문록> 속 ‘황금의 땅, 지팡구’ 탐험이 핵심 동기다.1717년 영국의 금본위제 도입으로 금 보유량은 국력과 동의어가 됐다. 1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빚을 진 영국이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자 패권은 미국으로 이동했다. 1944년 출범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식 금본위제’ 선언이었다.미국이 ‘1온스=35달러’의 태환을 거부한 닉슨 쇼크(1971년)로 금은 존재론적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금방 ‘달러 대체재’라는 자격을 획득했다. 이후 금값은 달러가 강하면 내리고, 약하면 오르는 패턴을 반복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트로이온스당 1000달러,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서 2000달러를 처음 돌파한 이유다.그런데 최근 금값 상승은 이런 전형성으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가파르다. 작년 3월 3000달러, 10월 4000달러를 돌파하더니 엊그제는 5000달러라는 미답의 고지에 올랐다. 불과 1년 새 가치가 2배로 치솟았다. ‘금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실용성 없는 자산’이라던 워런 버핏 같은 비관론자들을 유구무언으로 만들어버렸다.생산량 정체에 따른 수급 불균형이 폭등 배경으로 거론된다. 기존 금광 채굴이 한계를 보이며 2020년 이후 금 생산은 전년 대비 줄거

    2026.01.26 17:37
  • [백광엽 칼럼] '민변式 세계관' 확산에 즈음하여

    요즘 한국 최고 파워집단은 소위 진보 변호사의 결사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다. 민변 변호사가 수장을 맡은 국가 기구만 11곳이다. 이 중 장관급 이상이 7곳이다. 법무부, 성평등가족부, 국가교육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유엔대표부에 이어 며칠 전 감사원과 중앙노동위원회에도 민변 출신이 입성했다. 행정부 서열 1·3위(감사원장)를 독식하는 진기록을 썼다.민변 수장 휘하의 차관급 기구도 금융감독원, 법제처, 방위사업청, 소청심사위원회 등 네 곳이다. 사법, 외교, 국방, 교육, 금융, 노동, 여성 등 국정 전반의 정책 방향타를 확보한 셈이다.입법부 장악력도 위협적이다. 16명이나 22대 국회에 입성했고 둘(박주민, 안호영)은 상임위원장이다. 특정 직군·성향의 소수가 이처럼 광범위한 영향력을 확보한 것은 이례적이다. 민변 회원은 1200여 명으로 전체 법조인(약 5만 명)의 2.4%에 불과하다. 우리법·인권법 연구회나 전교조 또는 이념적 대척점의 뉴라이트 쏠림이 부적절한 것처럼 민변 대약진은 그 자체로 불안감을 키운다.참여연대와 양대 노총이 진보 권력의 핵으로 자주 거론돼 왔지만 사실 민변이 좌파 진영 내 성골 지위에 오른 지 오래다. 진보 대통령 넷 중 DJ(김대중)를 제외한 셋(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을 배출했다. 주거니 받거니 20년째 ‘서울공화국’을 이끈 오세훈·박원순 서울시장도 민변 출신이다.노무현과 문재인은 민변을 정치적 고향처럼 대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법무장관 5명 중 2명(강금실, 천정배)을 민변 풀에서 발탁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더했다. 청와대에서 8명, 법무부에서 25명을 뽑아 검찰개혁 돌격대를 맡겼다. 검

    2026.01.06 17:28
  • [천자칼럼] 중국의 자동차 굴기

    1886년 내연기관 등장 이후 자동차 강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했다. 롤스로이스·벤틀리·재규어의 영국이 20세기 전반을, GM·포드·크라이슬러의 미국이 후반을 지배했다. 패전국 독일과 일본이 폐허에서 세계 경제 중심부로 진입한 것도 자동차산업을 통해서였다.1949년 출범한 중화인민공화국(중국)도 자동차산업이 “산업 중의 산업”(피터 드러커)임을 잘 알고 있었다. 1953년 시작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부터 차 산업 육성에 매달렸다. 유일 문명 ‘중화’와 그 밖의 ‘이(夷)’로 구분하는 중화주의 세계관 중국의 승부 호흡이었을 것이다.특히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거대 시장을 미끼로 내연기관 기술 확보 총력전을 펼쳤다. 30년 넘게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폭스바겐 GM 현대차 등 글로벌 합작사들은 엔진, 트랜스미션 등 비장의 기술만은 꽁꽁 숨겼다.좌절 끝 중국의 선택은 ‘게임의 룰’ 변경이었다. 내연기관 집착을 버리고 전기차 같은 신에너지 차량으로 전환해 배터리·모터 개발 등에 세금과 보조금을 퍼부었다. 석유문명에 기반한 달러 기축통화에 균열을 내려는 원대한 구상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차선 바꾸기’ 전략이 불과 10여 년 만에 글로벌 자동차산업을 뒤흔들었다.토종기업 BYD가 테슬라마저 제치고 지난해 전기차 판매 1위에 등극했다. 20년 넘게 선두를 질주해 온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에도 올랐다. 내연기관 최강자인 독일 폭스바겐이 지난달 독일 내 공장을 88년 만에 처음 폐쇄했다는 소식과 맞물려 더 극적이다. 2003년 화평굴기 선언 후 회의론이 커졌지만 ‘자동차 굴기’

    2026.01.02 17:32
  • [백광엽 칼럼] 기업 유보금 80조 '증시 살포 유도법'

    승자 독식의 인공지능(AI)·반도체 패권 전쟁은 ‘쩐의 전쟁’으로 감각된다. 투자 단위 자체가 다르다. 수십조, 수백조는 기본이고 수천조원 베팅까지 거론된다. 맨 앞줄에 미국이 달린다. 오픈AI가 주도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만 450조원, 구글·메타 등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최소 7000조원(약 5조달러)이 투입된다. 정부 주도로 미래산업에 올인 중인 중국은 올 R&D 예산이 800조원이다. 대만 TSMC도 미 반도체 팹 건설에만 220조원을 들이붓는다.한국은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다. 150조원짜리 거대 ‘국민성장펀드’를 지난주 호기롭게 출범시켰지만 가슴 졸이는 올인 베팅에 가깝다. 산업은행이 무려 75조원의 첨단기금채권을 찍고 5대 은행이 10조원씩 갹출해야 겨우 자금이 충당된다. 투자 손실은 은행권이 우선 떠안는 구조여서 혹여 방향 착오가 생기면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쩐의 전쟁 와중에 자칫 민간 투자 재원을 말려버릴 자충수 입법이 초읽기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 얘기다. ‘소각만으로 코스피가 40%는 뛸 것’(강성부 KCGI 대표)이라는 설익은 ‘썰’이 등장한 지 2년여 만의 초고속 입법이다. 기세 오른 토종 행동주의와 포퓰리즘 정치의 잘못된 만남의 결과다.상장사 자사주는 어림잡아 80조원 규모다. 10곳 중 7곳꼴로 보유 중인 상황에서 소각 의무화는 기업 현금의 증시 공중 살포 명령과 다를 바 없다. 자사주 보유 상장사의 절대다수(89%)인 중소·중견기업엔 국가 폭력으로 감지될 것이다. 국민성장펀드에 배정된 50조원의 초저리대출을 타내려고 벌써 긴 줄이 늘어선 마당에 이런 역주행이 없다.감자 비율만큼

    2025.12.16 17:37
  • [백광엽 칼럼] 론스타 사태 22년, 돌아봐야 할 자화상

    ‘경제관료가 투기펀드의 먹튀를 도우며 국부 유출과 혈세 낭비를 부른 매국적 사건.’ 익숙한 론스타 서사다. 말하자면 ‘먹튀’와 ‘매국’이 론스타 사태를 상징하는 두 단어다.그런데 사건 디테일과 법적 판단은 통념과 상당히 다르다. 아니 거의 정반대다. 지난주 ISD 소송(중재) 완승만 봐도 그렇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손해배상할 게 없다고 결정했다. 론스타는 7조원 배상금을 청구해 한때 4000억원을 확보했지만 이번 완패로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단순히 ‘4000억원 대 0원’이라는 숫자 이상의 의미다. ‘엉터리 행정으로 혈세를 낭비했다’는 매국 프레임의 근거가 무너졌다. 한국 정부가 글로벌 규칙을 준수 중이라는 점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인증됐다. 악명 높은 론스타를 상대로 나라 위신을 세우고 정당성을 입증했다. ‘ISD=사법주권포기’라는 일각의 극단적 주장도 설 자리를 잃었다.‘먹튀 공모’ 프레임도 15년 전 사법부에 의해 부인된 상태다. 주범으로 기소된 변양호 국장은 1~3심 내리 무죄를 받았다. 최종심은 ‘진보법관의 아이콘’으로 불린 대법관(박시환)이 주심을 맡아 정치적 고려로 볼 여지도 없다. 당시 법원은 핵심 쟁점인 ‘외환은행 BIS비율 하향’과 ‘론스타 인수 적격성 부여’를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예정된 파국을 막을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을 고려한 정책적 결단으로 인정했다. 외환은행이 카드 사태, 현대그룹 위기, SK 분식회계라는 삼각 파고에 휘청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해피엔딩 모양새를 갖췄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악연 22

    2025.11.25 17:29
  • [천자칼럼] 금융계급제라는 오해

    주로 금융권에서 사용되지만 ‘신용’이라는 용어가 현대 경제시스템에서 갖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신용 없이는 거래는 물론 시장도 존재하기 어렵다. 경제를 돌리는 혈액 격인 화폐조차 국가 신용에 따라 가치가 좌우된다.신용은 경제 성장의 알파요 오메가이기도 하다. ‘신용 수준이 높아야 성장이 촉진된다’는 명제는 반박 불가다. 의미를 최대로 확장하면, 신용이야말로 현대 경제시스템을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다. 유발 하라리가 근대와 현대 경제시스템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신용에 대한 입장 차이’를 제시한 배경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용도는 성실성·책임감의 지표로 간주되며, 누군가의 신용은 곧 그의 정체성이다. ‘신용이 사라지면 당신도 사라집니다’라는 광고 문구에서도 잘 드러난다.이재명 대통령이 지난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신용등급을 ‘금융계급’에 비유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비싼 이자를 강요하는 현재 금융제도는 금융계급제”라고 질책하며 금융개혁을 강조했다.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이라던 두 달 전 언급에 이은 금융계급제 발언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신용등급 최하위 그룹의 대출금리가 차상위자 그룹보다 0.4%포인트까지 낮아졌다. 비상식적 ‘금리 역전’은 은행권 전반에서 목격된다.“한 해 수조원씩 버는 금융권이 금리 좀 깎아준다고 탈 나지 않는다”는 게 대통령 설명이다. 현대 경제시스템에서 신용이 갖는 무게감을 고려하면 당혹스럽다. 핵심 가치를 무너뜨리는 작은 날갯짓이 신용 실종이라는 거대한 태풍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계급&rsquo

    2025.11.16 18:15
  • [백광엽 칼럼] 그때 소버린과 엘리엇이 승리했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국 기업사를 새로 썼다. 지난주 ‘꿈의 10조원 클럽’에 동시 가입했다. 매출이 아니라 영업이익, 한 해가 아니라 한 분기 실적 기준이다. 내년엔 ‘분기 영업이익 20조원 시대’를 열 것이란 진단이 솔솔 나온다. 지난 9월 이후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증가분의 60% 이상을 두 회사가 합작했다. 주력산업 노쇠, 자유무역 종언으로 탈진지경인 산업 전반에 한 줄기 희망을 쐈다.지금 두 회사가 없다고 상상해보면 얼마나 막막한가. 이런 아찔한 상상은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SK그룹 지주사 SK㈜는 2003년 15% 지분을 확보한 헤지펀드 소버린과 건곤일척의 분쟁을 벌였다. 소버린은 2대 주주 자격으로 최태원 회장의 퇴진을 강력 요구했다.그때 소버린이 이겼다면 또 하나의 ‘K반도체 전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 회장은 힘겹게 승리한 뒤 회사 안팎의 거센 반대를 뒤로한 채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결행했다. 예민한 후각으로 ‘HBM 대박’까지 일궜다. 장기 적자 탓에 모든 인수 후보가 포기한 워크아웃 기업을 초일류로 변모시켰다.삼성전자 모회사 삼성물산도 2004년 헤르메스를 시작으로 20여 년간 해외 투기 세력에 시달리는 중이다. 특히 엘리엇은 10년에 가까운 파상공세로 기어이 이재용 회장을 법정에 세우는 집요함을 보였다. 지난한 법정 다툼 끝에 이 회장은 최종 무죄 판결로 지배력을 지켜냈다. 만약 졌다면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개, 깐부 결의, 인공지능(AI) 강국 서사는 힘들었을 것이다.투기 펀드와의 싸움을 버티며 경제 하방을 떠받치는 두 회사 앞에 더 강력한 적이 등장했다. 정체는 우리 내부의 주주 포퓰리즘이다. 두 차례의 상법 역주

    2025.11.04 17:51
  • [백광엽 칼럼] '코스피 새 역사' 위해 짚어볼 것

    코스피지수가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미국의 관세유예 조치(4월 9일) 발표 직후 대세 상승을 시작해 연일 사상 최고치 행진이다. 최근 6개월 상승률은 56%로 대만(57%)과 세계 1위를 다툰다.만성적인 저평가 탈출이 반갑지만 더 좋은 증시를 위해 짚어볼 대목도 많다. 증시 존재 이유는 저비용의 안정적 자금 조달과 사회 전체의 효율적 자원배분 지원이다. 이 과정이 순조로우면 투자자의 지갑도 자연히 두툼해진다.증시가 괄목상대 중이지만 기대와는 아직 괴리가 크다. 제도와 투자문화 공히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성장’보다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차익’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기업의 혁신적 시도와 비전이 ‘주가 떨어진다’는 상투적 반대에 밀려 고전하는 사례가 허다하다.인도법인을 어제 현지 증시에 상장시킨 LG전자도 그런 사례다. 2조원의 해외 자금 조달에 성공하며 한국 제조업의 현지화 모범 사례를 추가했지만 ‘알짜회사를 왜 떼내느냐’며 상장 중단 요구가 빗발쳤다. 기업의 동태적 성장 경로 구축에는 무관심한 채 ‘주주환원만이 정도경영’이라고 우기는 양상이다.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인도법인의 현지 증시 입성 때 똑같은 곤욕을 치렀다.자회사 동시 상장은 ‘더블 카운팅’ 조장 행위라는 비판도 증시가 뒤집어질 듯 거세다. 자회사 이익이 모회사에 중복 반영되면 주가 할인이 유발된다는 게 더블카운팅 논지지만 흔쾌히 동의하기 힘들다. 회계장부에 표기된 숫자가 수익성, 재무안정성 등 기업의 고유 가치를 바꿀 수는 없다. 사업지주회사는 주가 할인이 미미하다. 일본에선 자회사의 경영권 가치를 인정받아 프리미엄부로 거래되는 지주사가

    2025.10.14 17:30
  • [천자칼럼] 사회주의 지상낙원

    김정은이 그제 평양에서 열린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전야 행사에서 “풍요로운 낙원 건설”을 약속했다. ‘사회주의 지상낙원론’은 20대부터 북한 통치자로 자리 잡은 김정은의 핵심 영업비밀이다. “나라를 백화만발하는 지상낙원으로 만드는 것은 장군님(김정일)의 유훈”이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주민을 희망고문하고 세뇌한다.이번에는 여러 해외 귀빈이 선전선동에 동원됐다. 중국 권력서열 2위(리창 총리), 러시아 푸틴 최측근(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의장), 베트남 최고지도자(또럼 서기장)가 김정은 연설에 박수쳤다.지상낙원은 오래전 시효를 다한 케케묵은 언어다.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은 1950년대부터 지상낙원론을 앞세웠다. 1962년에는 ‘이밥(쌀밥)에 고기국을 먹는 것’으로 지상낙원을 구체화했다. 그즈음 대남 확성기선동을 시작하면서 내세운 주장이 ‘사회주의 지상낙원으로 오라’였다. 일본도 이 선전에 속아 재일동포 9만3000명을 1959~1984년 지상낙원으로 들여보냈다. 지상낙원론의 원작자는 마르크스와 트로츠키, 마오쩌둥과 카스트로다. 모두 지상낙원을 약속했지만 국민을 나락으로 몰았다.지상낙원론자들은 무오류론자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전야제에서 “조선노동당 80성상에 단 한 번의 착오나 오류도 없었다”고 자평했다. 당을 앞세웠지만 실은 당 총비서인 자신의 무오류성에 대한 강조다. 레닌이 사망하자 그를 ‘무오류의 혁명가’로 신격화하고 후계를 자처한 스탈린을 연상시킨다.사교 체제에서나 통할 법한 사고지만 여전히 강력히 작동한다는 게 문제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 주민들은 집이 없어 대출로 살아가지만 공짜로

    2025.10.10 17:30
  • [백광엽 칼럼] 부자를 우대하는 '잔인한 금융'에 관하여

    지난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이 금융가를 흔들었다. 저소득층에 고금리, 고소득층에 저금리를 물리는 “지금의 금융구조는 역설적”이라고 했다. 말인즉슨 빚 갚을 능력이 부족한 서민일수록 저금리로 대출해 상환율을 높이는 게 은행 경영 관점에서도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진지한 반박이 필요할까 싶을 만큼 비상식적인 견해다. 그런 대출 구조라면 누구나 상환을 기피하며 신용 강등에 매진하지 않겠나. 현대 신용사회 붕괴에 다름 아니다.그의 돌출 발언은 대통령 뜻을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 보름 전 이재명 대통령은 ‘15%대 고금리 대출 확대를 서민 대책이라고 보고하느냐’며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를 질책했다. 그러면서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하지만 금융학 개론을 전복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경제논리에 따라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를 적용하는 게 맞긴 하다”고 분명하게 전제한 뒤 내린 지시였다.대통령은 ‘복지적 대출’이라고 작명한 해법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서민에게 저리 대출한 뒤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실은 재정으로 메우는 방식이다. 경기지사 시절 연 1% 초저금리의 ‘극저신용 대출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의식과 실행력은 그 자체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고금리 늪에서 허우적대는 서민의 팍팍한 삶에 경제원론만을 들이민다면 결코 좋은 정치라고 하기 어렵다. 다만 제도적 해법을 모색할 때는 세심한 설계가 필수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그 어떤 제도도 악이기 때문이다.‘서민 저금리’보다 더 걱정되는 김 원내대표 발언은 “고소득 계층만 낮은 금리를 누린다”는 대목이다. 부자만 특

    2025.09.23 17:39
  • [백광엽 칼럼] 이단이 정설이 되는 전복의 시대

    거대한 전환의 시대다. 지구에 부와 문명을 폭발시킨 국제 분업과 자유무역 질서가 80여 년 만에 종말이다. WTO 체제는 터무니없이 잘못 설계됐다는 게 룰 메이커 미국의 신념이다. 국유기업, 보조금, 환율조작 같은 불공정무역으로 중국이 최대 수혜자가 됐고, 미국 산업과 고용은 피폐해졌다는 시각이다.트럼프 행정부는 새 질서 구축을 선언하고 ‘턴베리 체제’라 작명했다. 우선 목표는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 최종 목표는 달러패권 유지다. 목표가 적대적이다 보니 실현 수단도 공격적이다. 합리적 정책도구로 인정받지 못하던 관세를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며 조자룡 헌 칼 쓰듯 남발 중이다.턴베리 방식은 도발적이다. 유럽, 일본, 한국에서 도합 1조5000억달러 투자금을 뜯어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일본 부흥을 위한 마셜·도지 플랜 지원액(146억달러·현재 가치 약 1500억달러)의 10배다. 우방의 기둥뿌리를 빼내는 백지청구서라니, 적응하기 힘들다.한계도 없어 보인다. 인텔 지분 9.9%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사실상 국유화다. 엔비디아, AMD에서도 중국 수출 허용 대가로 매출의 15%를 받는다. 듣도보도 못한 ‘수출세’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비난하더니 ‘미국 특색 국가자본주의’냐는 비아냥이 불가피하다.턴베리는 가치전복적이다. 국제 분업 대신 자급자족을 말한다. 미 재무장관은 “핵심 산업에서 자급자족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반도체를 넘어 조선 방산, 여차하면 전략산업 보호라며 철강·에너지·통신·금융사에까지 개입할 태세다. ‘쌀’ 대신 ‘철’과 ‘칩’을 자급자족

    2025.09.02 17:34
  • [천자칼럼] 불침항모(不沈航母)

    항공모함은 국가의 힘과 의지의 상징이다. 폭격기 전투기 정찰기 공중급유기 등과 함께 움직이는 항모 한 척의 전투력은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에 필적한다. 최초의 항공모함 보유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순양함으로 건조하던 HMS퓨리어스의 설계를 바꿔 첫 항모를 선보였다. 설계부터 항공모함으로 시작해 첫 실전 배치까지 완료한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추축국 핵심 일본이다. 미국의 초강대국 부상도 미드웨이 해전 대일 항모전에서 승리하며 태평양전쟁 판도를 결정적으로 바꾼 게 계기가 됐다.항공모함의 위력은 ‘가라앉지 않는 항모’라는 뜻의 불침항모 개념으로 이어졌다.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는 섬이나 육지를 최강 항모에 비유한 용어다. 2차 대전 당시 미국 맥아더 장군이 대만을 태평양 패권 유지를 위한 ‘대중국 불침항모’로 칭한 게 시초다.불침항모론은 논란을 부를 때가 적잖다.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는 “일본 열도는 미국의 불침항모”라고 말했다. 소련에 함께 저항하는 동맹임을 강조하는 차원이었지만 국가 위신 평가절하라는 비판이 컸다.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기지화 중인 요즘 중국의 도발에는 ‘신 불침항모론’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한국도 불침항모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석 달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을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고정된(fixed) 항공모함과 같다’고 했다. 중국 코앞의 지정학적·전략적 가치와 유연성을 강조한 표현이겠지만, 우리 영토를 기지로 보는 달갑잖은 시각이다.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그제 의원 워크숍에서 &lsqu

    2025.08.29 17:26
  • [천자칼럼] 히로시마 80주년

    계획적인 도시 폭격의 원조는 아돌프 히틀러다. 1937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나치의 게르니카 공습에 한적한 소도시 주민 4분의 1이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개발한 전투기와 폭탄 위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였다. 분노한 피카소는 대작 ‘게르니카’로 전쟁과 인간의 광기를 고발했다.제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 공습은 전쟁의 일상이 됐다. 나치의 로테르담 공습에 4만 명, 런던 대공습에 6만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연합군도 가만있지 않았다. 전쟁이 막판으로 치닫던 1945년 2월 독일의 드레스덴을 이틀간 폭격해 시가지 90% 이상을 파괴했다.드레스덴 대폭격 한 달 뒤 미국은 도쿄 대공습을 전개했다. 수도를 초토화했는데도 버티자 결정적 카드를 꺼내 들었다. 80년 전 어제(8월 6일), 히로시마 상공 580m 지점에서 인류 최초의 실전용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터졌다. 건물 70%와 인구 30%(7만~8만 명)가 일시에 사라졌다. 그 사흘 뒤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 ‘팻맨’이 투하됐다.종전을 앞두고 굳이 도시를 날려야 했느냐는 비난이 적잖다. 일리가 없지 않지만 군국주의 일본의 무지와 광기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승패가 완연해진 1945년 4월 1일 미국은 일본 본토 점령의 전초기지인 오키나와에 18만 명의 병력을 상륙시켰다. 승리했지만 과정은 악몽과도 같았다. 일본 대본영이 하달한 ‘1억 옥쇄 작전’ 때문이었다. ‘조국을 위해 벚꽃처럼 산화하라’는 주문에 수많은 소년병·민간인이 자폭 공격을 감행했다. 무고한 국민 생명을 수없이 갈아 넣는 비이성적인 최후 발악은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원폭 결단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히로시마를 폭격한 직후 ‘원

    2025.08.06 17:38
  • [백광엽 칼럼] 허위 또는 악의의 종말, 그 첫걸음

    밀집한 현대사회에선 사실이 아닌데도 많은 이가 사실로 믿는 솔깃한 이야기들이 흐른다. 도시전설로 통칭된다. 일정 근거나 호소력을 갖췄지만 본질은 ‘카더라’요, 서브컬처다. 자본시장에도 그럴싸한 ‘증시전설’이 명멸한다.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이 모양’이라는 오해가 그런 부류다. 최근 각광받는 증시전설은 ‘대주주가 불법과 전횡으로 개미를 약탈 중’이라는 스토리다.기업인·대주주를 빌런으로 보는 인식에 두 개의 사건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2020년 LG화학 배터리사업 분사다. 두 이벤트를 거치며 ‘갈취하는 대주주 대 핍박받는 소액주주’ 서사가 빈틈없이 완성됐다. 세계 최강의 경영 규제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입법된 배경이다.그런데 엊그제 대법원이 증시전설의 원점이자 상징을 폭파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제기된 합병 비율 조작, 시세조종, 회계분식 등 어마어마한 혐의에 대해 전부 ‘근거 없다’고 판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14명에게 씌워진 총 123개 혐의는 1·2·3심을 통틀어 단 하나도 인정되지 않았다.허위와 악의로 버무려진 기소였기에 예정된 결과다. 검찰의 무모함과 별개로 ‘가짜 진실’ 제작에 앞장선 시민사회의 행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2016년 이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게 사태의 출발이다. 이후 집요한 여론전으로 진보 정치권까지 합세시켰다. 그 과정에서 데이터나 정황을 왜곡·오판하는 일이 다반사였다.LG화학 사태도 생각해 볼 대목이 많다. 유망한 사업을 떼내는 바람에 소액주주가 피해를 봤다는 프레

    2025.07.22 17:47
  • [천자칼럼] 중국의 전승절 정치

    ‘전쟁은 정치의 연장’(클라우제비츠)이다. 그렇기에 종전 이후에도 끝없이 정치적으로 재해석된다. 유리한 사실만으로 집단기억을 조작하는 정치적 악용도 다반사다.6·25 전쟁을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승리’로 자축하는 북한이 그렇다.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미 제국주의자들을 저지하고 인류 평화를 수호했노라’고 주장한다.프로파간다에 올인하는 사회주의권에서 전승절 의미는 남다르다. 첨단 무기를 대거 동원한 화려한 열병식 등으로 체제 선전에 몰두한다. 무명용사 묘지 헌화 등으로 조촐히 치르는 자유진영과 판이하다. 두 달 전 러시아의 ‘제 2차 대전 종전 80주년’ 행사도 그랬다. 27개국 정상을 불러 세를 과시했다. 중국은 시진핑이 직접 참석하고 인민해방군 의장대도 보냈다.‘전승절 정치’의 바통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오는 9월 초 사상 최대 규모 행사를 기획하고 이재명 대통령을 초대했다. 2015년에 이은 10년 만의 한국 대통령 초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자유진영 국가로는 유일하게 열병식까지 참관했다. 톈안먼 망루에 올라 시진핑, 푸틴과 나란히 선 사진이 전 세계로 타전돼 후폭풍을 불렀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 문제에 대한 협조를 얻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후 중국은 친북 행보를 더 강화했다. 불과 몇 달 뒤 사드 배치와 한한령을 주고받으며 한·중 관계는 더 냉랭해졌다. 명분도, 실익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전승절은 ‘이 시대 전선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누가 참여해 악수하고 눈빛을 교환하는지 세계가 주목한다. 한국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의도하든 않든 시진핑의 중국몽을 함

    2025.07.02 18:03
  • [백광엽 칼럼] B급 민간화폐, 200년 만의 재등장

    초기자본주의 시절 수많은 은행이 제각각 ‘은행권’을 찍었다. ‘중앙은행권’은 없었다. 19세기 한때 미국에선 35개 주에 3089개 은행권이 유통됐다. ‘자유은행 시대’로 명명돼 있다. 요즘 한국으로 치면 서울은행권, 춘천은행권, 울릉도은행권 등이 한국은행권을 대신한 격이다.은행권은 말하자면 ‘B급 민간화폐’다. ‘A급 공공화폐’ 중앙은행권보다 기능과 가치에서 열등하다. 발행 은행의 존속이 전제돼야 해서다. 그 시절 모든 은행권은 액면가 이하로 할인거래됐다.좋은 화폐제도의 최소 요건은 ‘단일성’(singleness)이다. 여러 화폐가 공존할 순 있지만 모두 액면을 유지해야 한다. 액면이 무너지는 화폐로는 안전한 계약이 어렵고 경제 혼란은 필연이다.자유은행 시대에 뱅크런이 무한 반복된 주요 이유다. 그 숙명을 탈피하려 고안한 금융안전망이 중앙은행 제도다. 국가 보증 화폐를 무제한 공급하는 최종 대부자의 등장에 뱅크런은 확 줄었다. 예금자보호 제도도 같은 맥락이다.근자의 스테이블코인 열풍은 여러 측면에서 두 세기 전 자유은행 시대의 은행권을 연상시킨다. 블록체인이라는 낯선 외양이지만 본질과 속성이 유사해서다. ‘1코인=1달러’로 설계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대부분 미국 국채로 준비자산을 쌓는다. 미국 민간은행권이 주정부 채권을 담보로 발행된 것처럼.‘불안정한 민간화폐’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안정적인 코인’을 표방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기실 ‘불안정한 통화’다. 그 불완전성은 지급결제 기능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지급과 결제는 한 묶음으로 취급되지만 엄연히 구분된다. 지급은 거래를

    2025.07.01 17:44
  • [천자칼럼] 송미령 장관의 선택

    역대 최장수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이다. 1971년부터 1978년까지 7년6개월이나 자리를 지켰다. 대덕연구단지 설립 등 성과도 많아 두고두고 명장관으로 회자된다. 재직 기간과 업적 못지않게 놀라운 건 소신 행정이다. 저명한 금속공학자인 그는 대통령이 무리한 지시를 내릴 때면 꼬박꼬박 반박하고 설득했다. 박 대통령의 허망한 서거에 “나도 너무했지. 대통령 말을 5%는 따를 걸…”이라며 회한을 토로했을 정도다.청사에 이름을 남긴 관료의 공통점은 ‘소신’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선 조치, 후 보고’를 강조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비타협적 안보관으로 ‘참 군인’으로 회자된다. 경제 분야에선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소신이 손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재정 건전성을 소홀히 하지 않은 덕분이다.이재명 정부 첫 조각의 최대 화제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유임된 사례는 김영삼·김대중 정부 교체기의 이기호 노동부 장관 이후 약 30년 만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이재명 민주당’에 그 누구보다 각을 세운 인물이라 더 이례적이다. 윤 정부 시절 그는 양곡법 등 민주당이 밀어붙인 ‘농업 4법’을 ‘농망 4법’이라며 누구보다 선명한 논리와 태도로 반대했다. 하지만 장관 지명 직후엔 “새 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며 말을 바꿨다.그럼에도 아직 진의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장관직을 수락했을까. 장관직을 더 하고 싶은 욕심에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26년 농업전문가로서 사명감의 발로로 해석해 줄 여

    2025.06.24 17:41
  • [백광엽 칼럼] 우리 시대의 '주요 모순'에 대하여

    사회는 모순을 극복하며 발전한다. 이상적 상태와 불만스러운 현실 사이의 대립을 통해 진보가 달성된다. 헤겔이 시동 걸고 마오쩌둥이 심화시킨 세계관이다.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의 학살자로 기억되지만 ‘모순론’이라는 새 창(窓)을 제공한 사상가로서 면모가 공존한다.마오쩌둥 모순론의 차별성은 ‘주요 모순’과 ‘부차적 모순’의 구별에 있다. 주요 모순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처럼 본질적이고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상대적으로 미약한 그 외 모든 갈등은 부차적 모순이다. 주요 모순이 해결되면 부차적 모순도 같이 해소된다는 게 마오쩌둥의 핵심 주장이다.마오쩌둥은 모순론을 혁명에 적용해 대륙을 장악했다. 부동의 주요 모순이던 ‘계급 갈등’을 부차적 모순으로 격하한 발상의 전환이 주효했다. 그 대신 제국주의와 반식민지(중국) 간 대립을 주요 모순으로 제시한 뒤 국공합작에 나서 일제를 축출했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힘으로 국공내전까지 최종 승리했다.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도 적확한 주요 모순 변경 덕분이다. 덩샤오핑은 1957년 이후 ‘자산계급 대 무산계급의 대립’이던 주요 모순을 1981년 ‘부에 대한 인민의 갈망 대 낙후된 생산력’으로 전환했다. 이후 개혁개방으로 내달리자 생산력이 폭증해 불과 한 세대 만에 주요 2개국(G2)에 올랐다.시대를 정확하게 읽고 대처하는 능력이야말로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랬다. 이승만은 신생 독립국의 발목을 잡는 주요 모순이 공산 세력과 자유 세력 간 건곤일척의 대립임을 꿰뚫고 쉼 없이 투쟁했다. 선악·피아 구분조차 쉽지 않은 세계사적 혼란기에 &ls

    2025.06.10 17:52
  • 韓 통화주권 위협하는 트럼프 '스테이블 코인'

    스테이블 코인을 둘러싼 관심과 논쟁이 뜨겁다. 올해 1분기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의 스테이블 코인 거래액은 60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7배 급증했다. 대선판에서도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해외 분위기도 비슷하다. 1위 스테이블 코인 테더의 하루 거래량이 코인시장 황제 비트코인의 두 배 이상인 날이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달러 스테이블 코인 활성화 및 국제결제 수단화’를 추진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비트코인 전략 자산화’와 함께 달러 코인으로 위협받는 달러 패권을 지켜낸다는 게 트럼프의 구상이다. 금을 비트코인, 달러를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으로 대체하려는 혁명적 시도다. 관세 폭주와 비슷한 맥락의 트럼프식 해법이다.지금은 인공지능(AI) 혁명기인 동시에 통화 혁명기다. 스테이블 코인이 그 중심에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 혁신적인 이유는 ‘화폐’여서다. 안전한 준비자산을 기초로 ‘1코인=1달러’가 보장된다. 초강대국 미국의 그랜드 플랜은 세계에 메가톤급 후폭풍을 부를 수밖에 없다. 한국은 원화 주권 약화라는 체제적 위험에 직면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서학개미 급증과 함께 이미 환율·통화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역의 10%가 달러 스테이블 코인으로 이뤄진다는 믿기 힘든 설까지 난무한다.달러 코인의 공습은 거세지만 대응은 너무 더디다. 마땅히 규율할 법령, 적용할 규정이 모호한 규제 공백 상태다. 정치권이 970만 가상자산 투자자를 의식해 원화 코인 입법에 발 벗고 나서는 등 ‘코인 포퓰리즘’도 뚜렷하다.백광엽 수석논설위원

    2025.05.25 18:00
  • 美, 달러패권 지키려 '달러코인' 강행…'약소 통화국' 韓무역·결제시스템 초비상

    “달러는 우리 돈이지만 당신들의 문제다.” 요즘 국내외 통화·금융 시장의 변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닉슨 미국 대통령 시절 존 코널리 재무장관의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기회로 폭발 중인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한국인의 삶은 물론이고 원화 주권 약화라는 본질적 위험을 부르고 있어서다. 미국은 숙명처럼 ‘트리핀 딜레마’를 겪는다지만 그 딜레마를 감내하면서 홍역을 앓는 쪽은 언제나 힘없는 약소 통화국이다. 지금은 인공지능(AI) 혁명기인 동시에 통화 혁명기다. 스테이블 코인이 그 중심에 등장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코인’ 아닌 ‘화폐’스테이블 코인의 가장 간략한 정의는 ‘블록체인상 법정화폐’다. ‘1코인=1달러’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블록체인은 분산 컴퓨팅 기반의 데이터 위변조 방지 기술로 탈중앙화, 불변성, 보안성, 투명성이 특징이다. 블록체인의 첫 구현체가 비트코인이다.스테이블 코인 대장주 테더는 코인시장 비중이 4.1%다. 비트코인(54.0%) 이더리움(11.9%)에 이어 3위지만 무게감은 남다르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지만 스테이블 코인은 ‘디지털 통화’, 다시 말해 화폐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어서다. 미국에선 스테이블 코인을 중앙은행(Fed) 연방예금보험공사(FIDC)와 함께 미 통화감독청(OCC)이 감독하는 입법이 마무리 단계다. 그 밖의 코인은 기본적으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관할이다. 이 같은 ‘통화성’ 때문에 스테이블 코인을 여타 가상자산과 분리해 감독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저비용·신속 결제 앞세워 통화시스템 위협전 세계 스테이블 코

    2025.05.25 17:14
  • 국가의 통화발행·주조차익 권한…민간 코인회사들과 나누는 꼴

    스테이블 코인을 둘러싼 논쟁은 통화 주권만이 아니다. 디지털 통화창출권 및 화폐주조차익(시뇨리지)의 귀속 문제는 더 근본적이고 거대하다. 스테이블 코인 허용이 국가가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행사하는 통화창출 특권을 민간사업자와 나누는 것이나 다름없어서다.코인 발행사가 스테이블 코인을 찍으면 그 발행액만큼 통화량 증가효과가 생긴다. 코인을 내주고 확보한 현금으로 국채 등 준비자산을 살 때 통화량이 불어나는 구조다. 담보로 잡은 국채가 연 4%대 금리일 경우 이자 수익을 통화발행 시뇨리지로 볼 수 있다. 국가와 사회에 귀속돼야 할 시뇨리지를 민간사업자가 챙긴 셈이다.이런 구조라면 코인 사업자는 무한정 코인을 발행해 무위험 수익을 극대화할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통화량은 급증하고 경제 전반에 과도한 부채 축적이 불가피하다. 편리함을 택하는 대가로 통화·금융 시스템 위협이 증가하는 셈이다. 편의성이 압도적이라면 선택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현재로선 스테이블 코인의 용도는 지하경제용이 대부분이어서 용인하기 쉽지 않다.‘미국은 적극적이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달러 패권 유지·강화 차원의 거대한 베팅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달러는 공급이 늘어도 바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의 유일한 통화다. 엊그제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졌지만 미국 달러 수요는 더 늘어난 데서 ‘달러 예외주의’의 위상이 재확인된다. 기축통화와 소규모 개방경제하의 원화는 애초부터 비교 불가다.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급증하고 대중의 수용성이 높아져 화폐처럼 쓰이면 문제는 더 커진다. 코인 발행사는 자금 유입이 없이도

    2025.05.25 17:12
  • [백광엽 칼럼] '지대 추구 제도화'로 치닫는 상법 논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상법 개정 거부권 행사를 “이기적인 소수의 저항”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더 센 상법’을 꼭 통과시켜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주식 투자자 1500만 명을 의식한 강공이겠지만 전형적 편 가르기다. 상법학자들에게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물어보면 반대가 압도적이다. 못해도 3명 중 2명은 ‘말이 안 되는 입법’이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여러 복잡한 법리를 떠나 상식적이지 않다. 단기적으로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주주는 단기 차익, 회사는 지속 성장이 궁극적 목표여서다. 이사는 회사를 위해 일하는 존재여야 한다. 회사에 좋은 일이 궁극적으로 투자자에게도 좋은 일임은 당연지사다. 세계 주요국에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입법 사례가 없는 이유다.소액 주주 차별을 막기 위해 상법 개정이 절실하다는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1주=1표’ 대원칙에 따라 소액 주주는 이미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 차별 시에는 언제든 손해배상청구소송 길이 열려 있다.상법 개정론자의 요구와 갈망은 ‘동등한 대우’가 아니라 ‘특별한 우대’다. 상법 개정 운동의 핵심 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지난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비난 성명이 그 증좌다. 앞서 한화는 사상 최대 규모(3조6000억원)의 유증을 성공시키기 위해 소액 주주에게 상대적 특혜를 제안했다. 소액 주주보다 15% 높은 가격(시가)에 오너 측이 증자 참여를 결정한 것이다.이런 양보안에도 포럼은 맹비난을 이어가고 있

    2025.04.28 17:44
  • [천자칼럼] 콘클라베의 시간

    보통 사람들에게 교황은 미스터리하면서 이중적이다.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 권위를 간직한 귀한 존재다. 트럼프가 미국 모든 공공건물에 조기 게양을 명령한 데서 정치·외교·문화적 영향력이 감지된다. 12억 명의 신도를 대표하는 가톨릭의 최고 목자라는 후광 덕분일 것이다. 교황은 특정 종교를 넘어 인류의 영적 스승으로 불리기도 한다.그림자도 있다. 교황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 몸을 낮추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오류의 절대적 존재로 간주된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그 가르침에 오류가 없다니 정서적 반감이 불가피하다. 교황청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바티칸 은행이 연루된 부패사건 등 스캔들의 주인공이 될 때가 적잖다.‘빈자의 성자’로 불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 소수자·약자에게 입맞추던 평화·겸손의 아이콘이었다. 세계의 관심이 콘클라베로 향한다. 전 세계 추기경이 로마교황청 시스티나성당에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는 절차다. 3분의 2의 찬성표를 받는 후보가 나와야 끝나는 콘클라베는 비밀주의가 특징이다. 추기경들은 외부 소통이 단절된 채 매일 두 번 비공개 투표한다.경건함으로 포장되는 이런 비밀주의야말로 교황청 불투명성의 출발이라는 지적이 적잖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 선출 과정의 타락상을 스크린에 담았다. 신의 뜻을 묻는 여정에 참여한 추기경들은 진홍빛 수단을 입고 짐짓 엄숙함을 가장하지만 상상 밖의 이전투구를 벌인다. 폭로와 공작, 혐오와 편가르기가 판친다. 수녀와의 부적절한 관계, 성직 매매 등 비리로 유력 주자들이 차례차례 낙마한다. 그러자 ‘나는 자격이 없다&rsq

    2025.04.22 17:42
  • [천자칼럼] 부총리의 美 국채 투자 논란

    국가가 발행하는 국채는 안전자산의 대명사다. 원금 회수와 이자 수입이 거의 100% 보장된다. 미국 국채는 안전자산의 최고봉이다. 신용이 내리면 가격이 하락하는 절대 법칙마저 거스르는 거의 유일한 상품이어서다. 미국 국채는 ‘재정 절벽’ 이슈로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2011년 외려 가격이 오르며 남다른 위용을 확인시켰다.성장률, 물가, 재정건전성 등 수많은 경제 변수의 예술적 총합이 국채 금리다. 국채 가격과 경제 상황이 어긋나면 시장의 복수가 시작된다. 이른바 채권 자경단이다. 국채 공매도로 영국 중앙은행을 굴복시킨 조지 소로스의 전설이 글로벌 자경단의 시초다. 3년 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역시 자경단발 국채 가격 폭락에 44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증시 폭락에도 눈 하나 깜짝 않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직진을 중단시킨 것도 국채 시장이다. 무리한 통상정책이 절대 안전자산이라던 미국 국채 가격까지 뒤흔들자 손을 들고 말았다.최상목 부총리가 미국 국채에 투자 중인 일로 국회에서 매국노로 비난받았다. 야당은 ‘최상목 방지법’ 입법을 거론하며 공세 중이지만 글로벌 벤치마크 투자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민간인 시절 외화예금에 들었다가 공직을 맡은 뒤 미국 국채를 추천받았다는 부총리의 해명은 일리 있다. 미국 국채는 최 부총리 말처럼 가장 소극적 포트폴리오이자 방어적 투자 자산이다. 투기나 이해상충 논란에서 가장 자유롭다.원화 약세에 베팅했다는 주장도 공감하기 어렵다. 환율은 최고 전문가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다. 관리가 가능하다면 환율 걱정으로 밤을 지새울 사람도 없을 것이다. 미 국채 보유액(약 2억원)보다 더 많은

    2025.04.17 17:40
  • [백광엽 칼럼] 수명 다해가는 '플랫폼 USA'

    “어쩌면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수교로 중국의 정상국가화를 도모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죽음을 앞둔 1994년 측근에게 던진 말이다. 불길한 예감은 늘 현실이 된다. 글로벌 경제체제로 편입시키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동화될 것이라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덩치를 키운 중국은 경제 스파이 행각, 글로벌 공급망 위협 등으로 세계의 골칫거리가 됐다.트럼프 대통령의 극적 귀환도 ‘룰 파괴자’ 중국을 제어할 적임자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출범 두 달여 만에 세계는 미국마저 프랑켄슈타인을 닮아간다는 공포와 맞닥뜨렸다. 상호관세 폭주는 원조 괴물 중국도 울고 갈 폭압적 전개다.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된다’더니 딱 그 짝이다.트럼프 상호관세는 국제분업으로 작동하는 자유무역체제에 대한 무지이자 모독이다. 상대국의 관세·비관세 장벽에 대한 정밀 분석 없이 대미 무역흑자 규모만으로 세율을 매겼다. ‘단골 식료품점이 늘 내 돈을 가져가니 세금 부과로 균형을 맞추겠다는 억지’(펠릭스 틴텔노트 듀크대 교수)에 불과하다.한·미 FTA로 대미 관세율은 사실상 0%다. 그럼에도 미국은 25% 상호관세를 매겼다. 아무 근거 없이 ‘50%’를 한국의 대미 관세율로 제시한 뒤 그 절반을 때렸다. 그러고선 ‘미국은 관대하다’고 생색냈다. ‘70년 혈맹’을 들먹이고 싶지도 않다. 한국은 작년, 재작년 2년 연속 미국의 최대 그린필드(생산시설·법인 설립) 투자국이다. 이쯤 되면 최소한의 상도의마저 실종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이처럼 부적절한 관세를 맞았다.대혼란 수습

    2025.04.08 17:47
  • [백광엽 칼럼] 사실·논리보다 선동·분노가 먹히는 K증시

    테슬라는 설립 18년 만인 2020년에야 흑자 전환했다. 긴 고난의 시기를 버티는 데 유상증자가 한몫했다. 2010년 나스닥 입성 후 수없이 많은 증자로 부족 자금을 충당했다. 7조원 유증 3개월 만에 다시 7조원 유증에 나선 적도 있다.기업 상장의 최대 목적은 자금 조달이고, 그 대표적 수법이 유상증자다. 만국 공통의 증시 작동 방식이다. 한국에선 꽤나 다르다. 유상증자 때마다 ‘주주 돈 공짜로 빼먹느냐’는 비난에 시달린다.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며 유증 자체를 범죄시하는 분위기도 적잖다.엊그제 2조원(16.8%) 유상증자를 발표한 삼성SDI가 사정권에 들었다. ‘주주 알기를 개뼉다구로 안다’는 정도는 양반이다. ‘주주 이익에 철저히 반하는 악질적 배임’이라며 금융당국 신고와 국민신문고 고발 움직임이 본격화했다.격한 반응에 놀란 금융감독원은 증자 당위성, 이사회 논의, 주주 소통 계획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겠다고 선언했다. 여차하면 유상증자 신고서를 반려할 태세다. ‘배터리 캐즘’을 돌파하기 위한 사활적 경영 판단을 배임으로 몰아가는 데 정부가 앞장서는 모양새다.개미들은 주가 약세가 ‘주주 가치 훼손 증거’라며 분노하지만 과잉 반응이다. 유상증자 후 일시적 주가 하락은 다반사다. 확보한 자금의 효율적 사용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재무 개선·투자 확대 기대가 확산하며 오래지 않아 낙폭을 만회하는 사례가 많다.갑작스러운 일방적 증자에 뒤통수 맞았다는 주장도 찬찬히 짚어봐야 한다. 두어 달 전부터 유상증자설이 꾸준했다. 글로벌 치킨게임이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 삼성SDI는 ‘안정’ 대신 ‘성장’이라는 승부수를 던졌

    2025.03.18 17:31
  • [천자칼럼] 중앙은행장 리더십

    물가안정이 핵심 목표인 중앙은행장에게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폴 볼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인플레에 대응해 하루 만에 기준금리를 4%포인트(11.5%→15.5%) 올린 사례는 지금껏 회자된다.철통같던 물가안정이라는 목표는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고용 확대에 자리를 내주는 모습이다. 미국 등 적잖은 나라 중앙은행은 물가안정과 함께 최대 고용을 목표로 적시한다.중앙은행은 이후 ‘크라이시스(crisis) 파이터’로 변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사태 등 경제가 아수라장이 되면 모두의 시선이 중앙은행으로 쏠린다. 발권력이라도 동원해달라는 요구가 밀물처럼 들어온다.이슈 파이터로의 이행도 뚜렷하다. 유럽중앙은행(ECB), 영국은행, 일본은행 등은 기후위기 파이터를 자처한다. 아르헨티나는 아예 ‘사회적 평등’을 설립 목적에 넣었다.중앙은행과 중앙은행장의 정치적 공간 확대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만모한 싱은 중앙은행 총재 경력을 바탕으로 인도 총리에 올라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시장경제로 전환시켰다. 요즘 각광받은 중앙은행장 출신 정치인은 ECB 총재 시절 유로존 붕괴 위기를 막아낸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다. 독일 차기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는 ‘유럽 대륙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선언으로 전후 유럽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호평받았다. ‘유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whatever it takes) 하겠다’던 드라기의 결단에 대한 오마주다.캐나다와 영국 두 나라의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오늘 취임한다. 미국 하버드대와 영국 옥스퍼드

    2025.03.13 17:38
  • [백광엽 칼럼] 트럼프는 왜 중상주의적 관세에 목매나

    관세는 19세기 중상주의 시대의 수법이다. 당시엔 수입품에 관세를 매겨 국내 산업을 무조건 장려해야 국부가 축적된다고 믿었다. 농업·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물린 영국 곡물법이 대표적이다. 유럽은 오랜 논쟁 끝에 곡물법을 폐기하고 자유무역협정(상업협정)을 체결한 뒤 생산성 폭발을 경험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신랄한 중상주의 비판서에 다름아니다.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는 내용 면에서 두 세기 전 중상주의와 크게 다르다. 중국 등 반칙 세력이 존재하기에 정당성도 적잖다. 하지만 물가 상승, 생산 감소 등 여러 부작용은 어쩔 수 없다. 트럼프는 왜 동맹도 이웃국도 무시한 채 관세 전쟁에 올인하는 것일까.감당하기 어려워진 눈덩이 부채 해결을 위한 야심 찬 새판 짜기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나홀로 호황’을 구가 중인듯 보이지만 미국 경제는 ‘부채 의존 성장’이라는 깊은 속병을 앓고 있다. 1970년부터 55년(1998~2001년만 흑자)째 재정적자에 시달린다. 그 결과 나랏빚이 5경원(약 36조달러)을 돌파했다.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19%로 OECD 평균(75%)보다 훨씬 높다. 재정적자비율도 6.4%로 2차 세계대전 때와 심각한 경기침체기를 빼면 최고 수준이다. 작년에는 국채이자비용이 처음으로 국방예산을 넘어섰다.숨넘어가는 진단이 잇따른다. ‘안면몰수하고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는 도발적 주장이 대두된 지 오래다. 글로벌 금융위기 예측으로 유명한 레이 달리오는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더 내는 ‘죽음의 소용돌이’를 경고했다. 당장 올 상반기에 최악 상황이 닥칠 수 있다고도 했다. 파월 미국 중앙은행 의장마저 보름 전 의회에 출석

    2025.02.2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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