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반(反) 서방 세력 규합에 나선 중국·러시아와 비동맹 노선을 강조한 인도·브라질이 부딪혔다.

신흥 경제 5개국 협의체인 브릭스 정상회의가 22일(현지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샌튼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했다. 이날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미국을 겨냥해 "어떤 나라는 패권적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신흥시장국과 개발도상국을 압박하고 있다"며 "중국은 여러 나라와 협력해 공동으로 도전에 대응하고 모든 국가 인민의 복지를 증진하기를 희망한다"며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화상 연설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를 비난하며 "안정적이고 중단 없는 에너지 및 식량 자원 공급을 위한 브릭스 내에서의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자"며 "우리 경제의 객관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탈달러화 역시 탄력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SNS를 통해 "브릭스는 주요 7개국(G7)이나 주요 20개국(G20)의 대항마가 아니다"라며 "미국과의 경쟁 체제를 구축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밝힌 데 이어 이날 연설에서도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한 이후 미국,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회복했다"며 서방과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인도는 한술 더 떠서 중국의 뒤통수를 노렸다. 인도는 중국과 국경분쟁을 겪는 등 관계가 좋지 않고, 서방의 공급망 탈중국 정책으로 인한 수혜 국가로 꼽힌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더 나아가 제조업 공급망에서 중국의 몫을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모디 총리는 "튼튼한(resilient) 공급망을 위해선 투명성이 중요하다"며 "서로 협력해 전세계, 특히 글로벌 사우스(개발도상국)의 발전에 기여하자"고 강조했다.

더타임스오브인디아 등 인도 언론은 "모디 총리가 언급한 '튼튼한 공급망'은 미국 일본 호주 등이 주도하고 인도가 참여한 공급망 전략을 의미한다"며 "제조업 중국 의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모디 총리는 이어 "인도가 수년 안에 세계의 성장엔진이 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조만간 인도는 5조달러 규모의 경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날 정상회의에는 의장국인 남아공의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과 룰라 브라질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러시아를 제외한 4개국 정상이 모두 직접 참석했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 때문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회의에 대신 참석했다.

정상들은 이날 저녁 비격식 회의인 브릭스 리더스 리트리트에 참석해 회원국 확대, 현지화 사용 확대 등의 이슈를 폭넓게 논의했다. '브릭스와 아프리카: 상호 가속화된 성장, 지속 가능한 발전, 포용적 다자주의를 위한 동반자 관계'를 주제로 한 이번 정상회의는 오는 24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회의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네시아 등의 브릭스 가입을 둘러싼 이견이 좁혀질지도 주목된다. 시진핑 주석은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대독한 비즈니스 포럼 연설에서 "어떤 저항이 있더라도 브릭스는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우리는 브릭스 플러스 모델을 확장해 회원국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와 브라질이 회원국 확대 문제에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