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없인, 꽃 없다"…랭킹 42위서 '윔블던 여왕'으로
“비 없이는 꽃도 없다(no rain, no flowers).”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24·체코)의 오른쪽 팔꿈치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실패 없이는 성공도 없다는 뜻이다. “실패하더라도 스스로를 믿고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 보상이 따를 것이란 믿음을 새긴 것”(영국 더선과의 인터뷰)이란다.

이 문구가 현실이 됐다. 장마가 끝나자 화려한 꽃이 피어났다. 본드로우쇼바는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6위 온스 자베르(29·튀니지)를 2-0(6-4, 6-4)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생애 첫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따내며 우승상금 235만파운드(약 35억1000만원)를 품었다.

본드로우쇼바는 이번 대회가 시작할 때만 해도 그다지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지난해 왼쪽 손목 수술 이후 조금씩 잊혀지는 ‘세계랭킹 42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드로우쇼바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여자 테니스 역사를 새로 썼다. 윔블던 여자 단식에서 세계랭킹 40위대 선수가 우승한 건 여자 테니스 세계랭킹을 매기기 시작한 1975년 이후 본드로우쇼바가 처음이다. 윔블던 여자단식 최초로 시드 없이 우승하는 기록도 세웠다.

2년 전만 해도 본드로우쇼바는 ‘라이징 스타’였다. 2019년 프랑스오픈에서 준우승한 데 이어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당시 일본 테니스의 간판 오사카 나오미(26)를 꺾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왼쪽 손목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두 번째 수술을 받고 6개월 동안 라켓을 잡지 못했다. 지난해 윔블던 대회 때는 손목에 깁스를 한 채 관중석에서 친구를 응원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상태에 대해 “뼈가 몸속에서 떠다녔다”고 말했다. 세계랭킹은 100위 밖으로 떨어졌고, 4년간 그를 후원했던 나이키는 계약을 끝냈다. 재기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본드로우쇼바는 보란 듯이 이겨냈다. 올 시즌 호주오픈에서 3차전, 프랑스오픈에서 2차전 탈락했지만 경기감을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100위 밖에 있던 세계랭킹도 40위대로 끌어올렸다.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였다.

후원사가 없어 브랜드 로고가 없는 옷을 입고 윔블던에 출전한 그는 7경기 가운데 시드를 받은 선수 5명을 차례차례 무너뜨렸다. 그의 장점은 단단한 멘털이다.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고, 상대가 실책을 저지르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승부를 뒤엎었다. 제시카 페굴라(4위·미국)와의 8강에선 불굴의 투지로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1세트를 내준 데 이어 2세트에서도 1-4로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었다.

결승전에선 지난해 준우승자 자베르를 만났다. 현장은 ‘사상 첫 아랍계 우승’을 따내려는 자베르를 응원하는 구호로 가득했다. 1세트와 2세트 모두 자베르가 본드로우쇼바의 서브게임을 따내며 앞서 나갔지만 실책에 무너졌다. 본드로우쇼바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본드로우쇼바는 마지막 공격을 네트 앞 발리로 마무리하며 1시간20분 만에 2-0 승리를 확정했다. 이날 본드로우쇼바의 공격 성공 횟수는 10회로 자베르(25회)에 크게 뒤졌지만, 실책은 13-31로 훨씬 적었다.

우승이 확정되자 본드로우쇼바는 필드에 누워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테니스는 미쳤다. 내가 여기서 우승컵을 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윔블던에서 우승하면 코치인 얀 메르틀과 문신을 새기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코치마저 예상하지 못한 우승이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