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으면 명물 벗으면 보물…뭘해도 폼나는 스니커즈
패션의 정점은 슈즈다. 사람을 만났을 때 시선이 가장 늦게 닿는 곳이지만, 단숨에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발끝을 보면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되지 않던가.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는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아찔한 하이힐과 단정하게 끈을 묶은 드레스 슈즈는 그래서 한 세기를 통과하는 ‘어떤 상징’이 됐다.

2000년대 이후 하이힐과 드레스 슈즈의 자리를 박차고 들어온 게 있다. 스니커즈다. 오랜 시간 하위문화의 상징이자 청소년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스니커즈. 그런 스니커즈는 지금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주력으로 삼는 아이템이자 소장용 ‘작품’으로 진화했다.

스니커즈를 즐기는 데 성별도, 나이도 없다. 남녀 구분이 명확했던 신발의 세계는 스니커즈 하나로 ‘젠더리스 패션’의 중심이 됐다. 잘 차려입은 슈트에도, 차르르 흘러내리는 원피스와 스커트에도 이제 어색하지 않게 됐으니 말이다. 그래서 스니커즈를 신는다는 건 어쩌면 이유 없이 강요당했던 전통, 누군가가 만들어낸 고정관념과의 이별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드레스 코드’가 지겨울 땐 스니커즈 하나로 반전을 꾀할 수 있다.

스니커즈의 역사는 1985년 ‘조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포스트 조던’ 시대가 되며 ‘그깟 운동화’는 욕망의 대상이 됐다. 첨단기술의 전쟁터이자 예술품에 맞먹는 소장품으로 변화했다.

명품 브랜드와 유명 인사들이 초고가 한정판을 내놓으며 투자 상품이 된 지도 오래. 그러니까 요즘 스니커즈는 사는 게 아니라 구하는, ‘헌팅 게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신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 소장의 목적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서울 한복판 세종문화회관에선 지금 100년의 스니커즈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스니커즈 언박스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나이키는 23일 ‘조던 월드 오브 플라이트’의 세계 세 번째 매장을 23일 홍대 앞에 열었다. 전설이 된 스니커즈는 물론 앞으로 전설이 될 작품들까지 만날 기회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