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만원짜리 '에어 조던'에 사람 피 담긴 신발까지 ... 신발장으로 변한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안쪽에 자리잡은 세종미술관은 지금 운동화로 가득차 있다. 무려 800켤레. 별 생각 없이 미술관 문을 연 사람은 여기가 신발 가게인지, 전시장인지 헷갈릴 터다.

서울 성수동에서나 만날 수 있는 특이한 전시가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열리고 있다. 운동화를 주제로 한 전시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이다.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대형 스니커즈 전시다. 스니커즈의 역사, 디자인, 그리고 사회와의 상호작용까지 한 번에 훑어볼 수 있다.

이 전시는 영국 런던 디자인 뮤지엄의 월드투어전의 일환이다. 2021년 런던에서 시작해 네덜란드 덴보쉬, 대만 타이페이를 거쳐 네 번째 도시로 서울을 찾았다. 첫 전시부터 총괄한 큐레이터 리가야 살라자르도 함께 방한했다. 세종문화회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세종미술관 1관과 2관을 '대형 신발장'으로 꾸몄다.
8000만원짜리 '에어 조던'에 사람 피 담긴 신발까지 ... 신발장으로 변한 세종문화회관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은 이 많은 운동화 중 똑같은 모델이 하나도 없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1920년대에 디자인한 '운동화의 원형'에서부터 지금 유행하는 모델까지 100년을 넘나드는 각양각색의 운동화들이 나왔다.

오랜 기간 스니커즈는 '하위 문화' 취급을 받았다. 패션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신발로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 따라 유행도 변했다. 이제 스니커즈는 젊은이부터 중장년까지 모두가 사랑하는 아이템이 됐다. 스니커즈 판매액이 연간 수조원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니, 말 다했다.

나이키를 빼고 운동화 얘기를 할 수 없다. 이번 전시도 그렇다. 살라자르 큐레이터는 나이키 운동화를 메인으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스니커즈를 하나의 문화로 만든 브랜드인데다 끊임 없이 신상품을 내놓으면서 유행을 선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8000만원짜리 '에어 조던'에 사람 피 담긴 신발까지 ... 신발장으로 변한 세종문화회관
대표작은 ‘에어 조던’ 컬렉션. 에어 조던 시리즈는 1985년 첫 발매 이후 수많은 이들을 열광시키며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 이번 전시에는 전 세계에 단 12켤레만 있는 모델도 전시됐다. 나이키가 일반인이 아닌 자사 운동화 디자이너 12명에만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이 신발의 리셀가는 8000만원이다. 이 운동화를 전시장에 들여놓기 위해 런던 디자인 뮤지엄은 소유자 12명을 하나하나 접촉했다. 그 중 한명이 전시 의도를 듣고 흔쾌히 자신의 신발을 대여해주기로 결정했다,

뉴욕에서 '스니커즈 폭동'을 일으킨 주범도 한국을 찾았다. 회색 나이키 운동화에 비둘기가 그려져 있어 ‘피죤 덩크’로 불렸던 스니커즈다. 이 모델은 2005년 미국 유명 디자이너인 제프 스테이플과 나이키가 손잡고 단 150켤레만 제작했다. 당시 일반인들을 상대로 30켤레를 한정 판매하자, 사려는 사람들이 매장 앞에서 다툼을 벌여 경찰이 출동했다.
 디자인 그룹 '미스치프'가 유명 래퍼 릴 나스 엑스와 함께 만든 스니커즈 '사탄'과 '지저스' ©구본숙
디자인 그룹 '미스치프'가 유명 래퍼 릴 나스 엑스와 함께 만든 스니커즈 '사탄'과 '지저스' ©구본숙
법적인 분쟁에까지 휘말리며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운동화도 국내에게 처음으로 공개됐다. 모델명은 '사탄'. 이름부터 섬뜩하다. 이 스니커즈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디자인 그룹 '미스치프'가 유명 래퍼 릴 나스 엑스와 함께 만들었다.

제작 과정부터 공포스럽다. 나이키의 '에어맥스 97' 모델의 밑창을 뜯어 실제 사람의 혈액을 집어넣어 봉합했다. 이에 분노한 나이키는 미스치프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등으로 소송을 내며 대응했다. 결국 '사탄' 스니커즈는 판매를 중단했다.

이들은 이 사건을 겪으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그렇게 만든 운동화가 '지저스'다. 이번엔 피 대신 요르단강에서 끌어온 성수를 밑창에 집어넣어 제작했다. 선과 악을 주제로 한 사탄과 지저스 세트도 '한국 나들이길'에 올랐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은 이번 전시를 위해 아예 작은 전시관 하나를 통째로 제작했다. 한국의 스니커즈 문화를 담아낸 '서울' 섹션이다. 지드래곤 등 한국 아티스트들이 디자인한 제품들을 이곳에 걸었다. 이를 국내 스니커즈 컬렉터들에 직접 연락해 신발을 빌렸다. 노랗게 칠한 벽을 국내 컬렉터들이 모은 운동화로 빼곡히 채운 '아워 월'은 서울 섹션의 핵심 작품이다.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 <서울> 섹션에 마련된 작품 '아워 월'  ©구본숙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 <서울> 섹션에 마련된 작품 '아워 월' ©구본숙
이 벽에 걸린 운동화는 총 364족. 그리고 옆에 거울을 설치해 관람객의 신발을 비춘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신발을 포함하면 모두 365개의 스니커즈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신발이 주제란 점에서 '부담감 제로' 전시다. 미리 공부할 필요도 없고, 관람 후 복습할 필요도 없다. 그냥 느끼면 된다. 쉽게 볼 수 없는 희귀 신발을 볼 수 있다는 점, 스니커즈의 역사와 기능도 덤으로 배울 수 있는 점도 매력포인트다.

딱 그 정도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왜 이 신발이 하필 이 자리에 놓였는 지 알 도리가 없다. '인스타그램 인증샷 전시'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유료 전시인데, 전시작품중 상당수는 일반 신발가게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신발들이다. 입장료는 2만원. 진지한 관람객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