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공인중개사의 배신
1983년 부동산중개업법 제정으로 복덕방이란 명칭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중개사들이 중개업을 비하하는 용어라며 거세게 반발해서다. 하지만 복덕방이란 용어 안엔 고객들의 신뢰와 믿음이 깔려 있다. 아직까지 중개 수수료를 복비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일을 대접받은 데 따른 수고비란 의미다.
사실 일반인이 주택 등을 매매할 때 비빌 언덕은 중개사뿐이다. 용도·취향에 맞춰 집을 찾아주고, 가격을 맞추고, 글자 빽빽한 서류들을 막힘 없이 처리해주는 중개사는 그 순간만큼 가히 최고의 전문가다.
그런데 최근 국토교통부가 놀라운 자료를 내놨다.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전세 사기로 의심되는 거래를 살펴보니 전체 970건 중 414건에 중개사·중개보조원이 연루돼 있다는 내용이다. 전체의 42.7%로 전세 사기 10건 중 4건에 중개사나 주변 인물이 얽혀 있다는 얘기다. ‘건축왕’ ‘빌라왕’ 등의 전세 사기에 국민이 더 분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성과 안전 거래를 믿고 고마운 마음에 복비까지 줬는데 사기라니. 고객에게 복을 줘야 할 중개사가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범죄에 가담했다니 상도의가 땅에 떨어졌다. 복덕방을 낀 전세 사기에 피해자들이 쉽게 당한 것도 어찌 보면 중개사에 대한 암묵적인 믿음 때문이었지 않겠나.
중개사들은 매매나 전·월세 계약 때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는다. 지난해 이후 부동산시장이 침체하면서 거래가 확 줄고 수수료 수입도 급감했다. 자고 일어나면 중개사무소가 수십 개씩 문 닫을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 적잖은 중개사들이 돈 몇 푼 벌자고 사기꾼이 짜놓은 판에 덜컥 뛰어들었다. 그 피해는 전국에서 활동 중인 11만9000명의 중개사에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진짜 피눈물 나는 사람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사람들이다.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범법 중개사들을 엄단해야 한다.
김은정 건설부동산부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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