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마침내 왕관 썼지만…국제금융 중심 런던 위상은 추락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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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후 英 시련
장기간 경기침체
2030년까지
6% 위축 전망도
英연방 국가 탈퇴
가속화되며 힘 잃어
비슷한 국가 간 결합
무역창출효과 등
모두에게 이득
장기간 경기침체
2030년까지
6% 위축 전망도
英연방 국가 탈퇴
가속화되며 힘 잃어
비슷한 국가 간 결합
무역창출효과 등
모두에게 이득
영국 국왕 대관식은 영연방 국가들의 충성 의무를 재확인하는 축제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찰스 3세 대관식 직전에 영연방의 상징인 호주가 대반란을 일으켰다. 자국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5호주달러에 찰스 3세 문양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영연방 형태로 남은 대영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영연방의 태동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갈 조짐을 보이자 자유사상가에 의해 ‘하나의 유럽’ 구상이 나왔지만, 출발부터 시련이 닥쳤다. 선민의식을 지닌 앵글로색슨족과 이를 반대하는 게르만족 간 역사적 앙금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임과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옛 영화를 되찾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1931년 영연방이 태동했다. 다른 지역 블록과 달리 느슨한 형태의 영연방은 현재 참가국 52개국, 인구 25억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지역협의체다. 국제기구와 비교하면 G20(주요 20개국)와 비슷한 규모다.
영연방은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전성기를 누리다가 미국 주도의 팍스아메리카나 시대가 전개되면서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가장 빨리 쇠퇴한 곳은 경제 분야다. 2차 대전 이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국제통화기금(IMF)을 양대 축으로 한 세계 경제질서가 정착하면서 일부 영연방 국가의 탈퇴 조짐까지 일기 시작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영국은 1973년 뒤늦게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두 차례 대전으로 구체화하지 못하던 하나의 유럽 구상은 1957년 로마조약을 계기로 EU로 재출범한 이후 순조롭게 성장했다. 미국 주도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으로 흔들려 영국으로서는 EU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출범 이후 EU는 두 갈래 길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을 늘리는 ‘확대’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8개국으로 늘어났다가 영국의 탈퇴로 27개국으로 줄었다. 다른 하나는 회원국 간 관계를 끌어올리는 ‘심화’ 단계다. 유로화로 상징되는 유럽경제통합(EEU)에 이어 유럽정치통합(EPU), 유럽사회통합(ESU)까지 달성해 나간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문제는 영국이 가입할 당시 독일이 EU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EU 가입을 ‘굴욕’으로 본 자국민의 비판과 일부 영연방 국가의 반기로 영국은 처음부터 소극적이었다. 영국이 파운드화 주권을 포기하는 유로화 구상에는 참여하지 않은 데 이어 2016년 아예 EU를 떠난 것(브렉시트)도 이 때문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시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기 침체 국면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로 2030년까지 자국 경제가 6%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EU에 잔류했을 때와 비교해 2030년에는 5%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금융시장 중심지이던 런던의 위상은 변방으로 전락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주식시장은 프랑스 파리와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으로, 채권시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빠르게 이동하는 추세다.
브렉시트 이후 프랑크푸르트가 국제금융 중심지로 가장 빨리 부상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독일 경제가 코로나19 사태 등과 같은 외부 충격을 잘 흡수하면서 유럽재정위기에서 입증됐듯이 유럽 통합이 흔들릴 때마다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홍콩 반환과 함께 리보(Libor·런던 시중은행 간 금리)는 2021년 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국제기채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금리로 리보를 사용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단기물은 미국 재무부 3개월 만기 증권(TB) 금리, 장기물은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사용한다.
유럽처럼 경제 발전 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 창출 효과가 무역 전환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 이득이 된다. 어떤 형태로든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찰스 3세를 맞은 대영제국의 앞날이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과 영연방 국가의 탈퇴가 가속화하면서 밝아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개방에 역행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갈라파고스 함정’은 고통이다.
영연방의 태동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갈 조짐을 보이자 자유사상가에 의해 ‘하나의 유럽’ 구상이 나왔지만, 출발부터 시련이 닥쳤다. 선민의식을 지닌 앵글로색슨족과 이를 반대하는 게르만족 간 역사적 앙금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임과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옛 영화를 되찾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1931년 영연방이 태동했다. 다른 지역 블록과 달리 느슨한 형태의 영연방은 현재 참가국 52개국, 인구 25억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지역협의체다. 국제기구와 비교하면 G20(주요 20개국)와 비슷한 규모다.
영연방은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전성기를 누리다가 미국 주도의 팍스아메리카나 시대가 전개되면서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가장 빨리 쇠퇴한 곳은 경제 분야다. 2차 대전 이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국제통화기금(IMF)을 양대 축으로 한 세계 경제질서가 정착하면서 일부 영연방 국가의 탈퇴 조짐까지 일기 시작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영국은 1973년 뒤늦게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두 차례 대전으로 구체화하지 못하던 하나의 유럽 구상은 1957년 로마조약을 계기로 EU로 재출범한 이후 순조롭게 성장했다. 미국 주도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으로 흔들려 영국으로서는 EU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출범 이후 EU는 두 갈래 길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을 늘리는 ‘확대’ 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8개국으로 늘어났다가 영국의 탈퇴로 27개국으로 줄었다. 다른 하나는 회원국 간 관계를 끌어올리는 ‘심화’ 단계다. 유로화로 상징되는 유럽경제통합(EEU)에 이어 유럽정치통합(EPU), 유럽사회통합(ESU)까지 달성해 나간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문제는 영국이 가입할 당시 독일이 EU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EU 가입을 ‘굴욕’으로 본 자국민의 비판과 일부 영연방 국가의 반기로 영국은 처음부터 소극적이었다. 영국이 파운드화 주권을 포기하는 유로화 구상에는 참여하지 않은 데 이어 2016년 아예 EU를 떠난 것(브렉시트)도 이 때문이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시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기 침체 국면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로 2030년까지 자국 경제가 6%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EU에 잔류했을 때와 비교해 2030년에는 5%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금융시장 중심지이던 런던의 위상은 변방으로 전락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주식시장은 프랑스 파리와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으로, 채권시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빠르게 이동하는 추세다.
브렉시트 이후 프랑크푸르트가 국제금융 중심지로 가장 빨리 부상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독일 경제가 코로나19 사태 등과 같은 외부 충격을 잘 흡수하면서 유럽재정위기에서 입증됐듯이 유럽 통합이 흔들릴 때마다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홍콩 반환과 함께 리보(Libor·런던 시중은행 간 금리)는 2021년 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국제기채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금리로 리보를 사용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단기물은 미국 재무부 3개월 만기 증권(TB) 금리, 장기물은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사용한다.
유럽처럼 경제 발전 단계가 비슷한 국가끼리 결합하면 무역 창출 효과가 무역 전환보다 커 역내국과 역외국 모두에 이득이 된다. 어떤 형태로든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찰스 3세를 맞은 대영제국의 앞날이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과 영연방 국가의 탈퇴가 가속화하면서 밝아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개방에 역행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는 ‘갈라파고스 함정’은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