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힘이다 보니 권력을 잡은 쪽에선 그 칼을 쓰고 싶어 하기 마련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일한 한 인사는 6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연금의 정치화’ ‘연금 사회주의’가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배경엔 스튜어드십 코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고객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가 ‘충직한 집사(스튜어드)’ 같은 마음으로 따라야 하는 행동 지침을 말한다. 기관투자가가 주식을 투자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주주로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과제로 채택돼 2018년 7월 도입됐다. 국민연금은 과거에는 투자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찬반을 결정하는 단순 의결권만 행사했다. 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저배당이나 지배구조 취약 기업 등에 대화를 요구하고,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를 해임하거나 원하는 이사를 추천하는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국민연금은 2018년 ‘저배당 기업 블랙리스트’에 남양유업과 현대그린푸드를 처음으로 올린 데 이어 이듬해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에 대해 정관변경 주주제안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참여에 시동을 걸었다. 2019년 말에는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삼성물산 롯데하이마트 등 20여 개 국내 기업에 비공개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이 소송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온 기업이 절반 이상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국민연금의 주총 안건에 대한 반대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17∼2022년 국민연금 지분 10% 이상 보유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별 찬성·반대’ 자료에 따르면 2017년에는 찬성률이 89.6%에 달했으나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2018년에는 83.0%, 지난해엔 81.8%로 낮아졌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여당 의원들이 KT의 차기 대표 선정과 관련해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을 향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한 적극적 개입을 주문하면서 ‘연금의 정치화’ 논란이 커지고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일부에서 재무적 관점이 아니라 정치적 관점으로 판단하는 부분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국민연금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키도록 기금운용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이상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