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80석 이하 소형 항공기 운항 시장이 본격화될 조짐입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잇따라 소형 공항 건설에 착수하고 있습니다. ‘가성비’ 좋은 소형 항공기는 지차체 관광 수요를 넓힐 기대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새 시장이 등장하면서 미국, 일본, 필리핀 등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형 항공기 운항사를 국내에서 창업한 ‘정통 IB맨’도 나타났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최용덕 마프 대표를 만나 소형 항공 운송사의 시장 가능성을 살펴봤습니다.
최용덕 마프 대표가 직접 촬영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상공(사진 위쪽). 조종사로 전직한 계기가 된 광경이다. 카탈리나 섬에서 친구를 태우고 비행기를 점검하며(사진 아래쪽)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마프 제공
최용덕 마프 대표가 직접 촬영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상공(사진 위쪽). 조종사로 전직한 계기가 된 광경이다. 카탈리나 섬에서 친구를 태우고 비행기를 점검하며(사진 아래쪽)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마프 제공
2015년 11월 22일. 황량하지만 드넓은 미국 로스엔젤레스(LA) 활주로를 배경으로 최용덕 마프 대표가 섰다. 사람 키 높이의 흰색 자가용 비행기와 함께였다. 인근 카탈리나 섬에서 친구를 태우고 점심을 먹은 뒤 출발 전 비행기를 점검하다가 ‘한 컷’을 남겼다. 이후에도 비행기는 부지런히 미국 상공을 오갔다. 샌디에이고 몽고메리 공항에서 여동생 가족을 태우기도 하고, 그랜드캐니언 내부의 목장과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금문교를 오가기도 했다. 그에게 비행은 곧 자유였다.

미국에서 비행기 조종사 면허를 취득한 최 대표는 지난해 항공 스타트업 마프를 차렸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80석 이하 규모의 소형 항공기 운항 시장을 겨냥했다. 2025년 말 울릉공항 취항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내가 비행기를 몰고 싶어 항공사를 차렸다”며 웃었다. “미국에서 조종사 면장을 취득하고는 혼자 하늘을 누볐습니다. 금문교를 타고 아래로 펼쳐지는 광경을 보면, 무언가 마음속에서 ‘불끈’ 치솟는 느낌이 있어요.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최 대표는 도서 지역 공항 개항을 기반으로 한 관광 노선의 수익성, 이를 기반으로 쌓아나갈 교통망 앱 서비스에 대해 “수익성이 충분하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항공사 창업이 ‘레드오션’이란 견해에 내놓은 반박이다. 그는 국내에선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지역 간 항공교통(Regional Air Mobility·RAM) 시장에 자신감을 표했다.

하늘 보니 가슴 ‘뻥’…번아웃 온 ‘IB맨’의 일탈

그는 비행과 거리가 멀었다. 대원외고와 고려대 일문과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투자은행(IB)업계에서 뱅커로 살았다. “주 6.5일을 일했다”지만, 사실 밤낮없는 12년이었다. 투자한 시간만큼 경력은 점차 빛을 발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바클레이즈,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ABN암로, 미국의 메릴린치까지 세계 최대 투자은행을 모두 거쳤다. 채권 발행을 통해 기업의 자본 조달을 지원하는 DCM 업무는 전문 분야였다. 수억원대 연봉을 받으며 ‘번아웃’이 올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달렸다.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둔 계기는 미국에 살던 친구가 휴가 기간 자가용 비행기를 태워주면서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했다는 최 대표는 2010년대부터 이직 시 발생하는 시간 공백을 활용해 미국에서 자가용조종사(PPL), 사업용 조종사(CPL) 등 면장 시험을 준비했다. IB업계에선 경쟁사로 이직할 때마다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몇 달간 일을 쉬어야 하는데 저축했던 돈을 모두 쏟아부어 이런 기간마다 미국에서 지냈다. “돈을 다 털어 넣어도 아깝지 않았다”는 그는 결국 2016년 항공사 조종사로 취업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근무 은행인 바클레이즈를 퇴사했다.

최 대표가 '고생길'로 묘사한 시기는 이때부터다. 1976년생인 최 대표는 당시 나이가 40세를 넘어 민간 항공사의 조종사 신규 채용에 합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입이 없는 상태로 약 2년간 취업을 준비했던 최 대표는 2017년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로케이에 합격했다. 드디어 조종사로 근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40대 취준생, LCC에서 항공업 기초 학습

2020년 도입된 에어로케이 1호기. /한경DB
2020년 도입된 에어로케이 1호기. /한경DB
기대는 빗나갔다. 신생 항공사 에어로케이는 결국 2017년 항공업계를 뒤흔든 업체로 기록됐다. 항공법에 명시한 설립 조건을 모두 충족됐음에도, 사업 면허 발급이 좌초되며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운항이 연기됨에 따라 조종사로 입사한 최 대표는 운항본부에서 경영기획 직무로 전환됐다. 기존 항공사들이 ‘공급 과잉’을 이유로 LCC 신규 허가를 막던 분위기 속에서 국토교통부와 업계 인사들을 만나며 면허 취득을 위해 뛰었다. 최 대표는 당시를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항공사를 만들어나가는 느낌이었다”며 “마프 창업이 어색하지 않던 이유는 당시 경험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에어로케이는 우여곡절 끝에 2019년 면허를 받았다. 그 뒤엔 비행기를 마련해야 했다. 1호기 도입 프로젝트 역시 최 대표 팀에 배정됐다. 알래스카 항공에서 사용하던 항공기를 한 달 반에 걸쳐 데려왔다. 인력이 적은 신생 항공사에 뱅커 출신 최 대표의 경력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당시 에어로케이에선 소형항공 운항 노선의 수익성 검토 작업도 진행했는데 관련 업무도 그가 맡아야 했다. 업무는 점차 늘어나고, 비행기를 조종할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결국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며 제대로 된 운항본부 근무 기대를 접었다. “비행기를 몰고 싶어 들어온 회사인데, 5년째 항공사 경영 업무를 맡아야 했습니다. 이럴 거면 내가 직접 항공사를 차려야겠다 싶었죠.”

모두가 말리던 항공사 창업이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통상 항공사에선 노선의 수익성과 기체의 ‘퍼포먼스 스터디(운용 성과)’를 검증하는 부서가 분리돼 있다”며 “조종사로서 소형 노선의 사업성도 검토하다 보니 틈새시장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가 주목한 시장은 도서·산간을 대상으로 한 국내 노선이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관광 수요 개척을 위해 짧은 활주로 기반의 소형 공항을 만들고 있다는 점도 호재였다. 최 대표는 “LCC를 포함한 국내 대부분의 항공사가 주목하는 먹거리는 노선 확보가 곧바로 실적으로 이어지는 일본행 국제노선”이라고 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근거리 국제노선 회복에도 정신없는 마당에, 다른 노선을 살필 여력이 없다는 점을 노렸다”는 것이다.

“항공업 본질은 자산운용”…도서·산간 ‘집중’

마프의 1차 목표는 김포공항-울릉공항 노선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울릉공항은 섬 지역 중에선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지는 공항이다. 활주로 길이는 1200m, 폭 36m로 소형 공항에 해당한다. 10시간 남짓한 서울-울릉도 거리를 1시간 내외로 단축시킨다는 것이 업체 목표다. 공항 크기가 작아 80인승 이하 소형기만 취항될 전망인데 국토교통부에선 하루 2000명까지 공항 이용객이 늘 수 있어 경제성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최 대표가 신중을 기한 부분은 도입 기체 종류다. 마프의 ‘ATR72-600’ 기종은 섬 지역 공항에 이착륙이 가능하다. 에어버스 산하 ATR이 개발한 기종으로, 해당 모델을 도입하는 것은 마프가 국내 최초다. 오는 8월 항공기가 들어오면 10월 운항 증명을 받은 뒤 연말 취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선은 김포-울산 노선을 오갈 예정이다. 최 대표는 “김포-제주 노선을 예로 들면 ‘보잉 737’ 기종은 기름을 2.7t 쓴다”며 “ATR이 70명을 태우면 같은 노선에서 연료를 650kg 소모하는데, 좌석당 연료 효율이 절반에 달할 정도로 좋은 기종”이라고 했다. 2026년부터 백령도, 흑산도 등 다른 도서지역 공항이 개항하면 같은 기종으로 노선을 늘려갈 계획이다.
최용덕 마프 대표가 자사 도입 기종인 'ATR72-600' 모형을 들고 있다. 좌석 수가 적지만 연료 효율이 좋은 특징이 있다. /이시은 기자
최용덕 마프 대표가 자사 도입 기종인 'ATR72-600' 모형을 들고 있다. 좌석 수가 적지만 연료 효율이 좋은 특징이 있다. /이시은 기자
대형 항공사나 다른 LCC와의 노선 경쟁 가능성에 대해선 “(그들이) 관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곧바로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항공사를 장치 산업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은 현금흐름을 따지는 자산운용업에 가깝다”며 “항공기 리스료, 노선 가격, 항공유 등 수많은 변수를 따져 축적하는 분석 기술은 기종마다 다르기 때문에 업체 규모가 커도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기존 항공사들은 도서산간 노선 개발엔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다. 국제선을 보유한 항공사가 기존 인력과 비용을 포기해가며 공략하기엔 ‘가성비’가 좋지 않아서다. 지난해 9월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장 울릉공항에 취항하려는 항공사가 없다”며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오히려 마프와 같은 신생 항공사 설립 바람이 불 정도다. 경상북도는 연초 울릉공항 수요 공략을 목표로 ‘경북 지역 항공사 설립 타당성조사 연구용역’을 발주하기도 했다.

틈새시장 공략은 한편으로 ‘양날의 검’이다. 기업가치 성장세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최 대표가 데이터 기반 모빌리티 앱 제작 계획을 설파하는 이유다. 울릉도와 같은 도서산간 지역은 비행기가 도착하더라도 관광지까지의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다. 버스나 택시가 있지만 시간대를 잘 공략하지 않고서는 탑승이 어려워 인터넷에선 ‘울릉도에서 택시 잘 잡는 법’과 같은 글이 공유되기도 한다. 최 대표는 “운항 데이터가 쌓이면 앱 하나에서 목표 관광지를 입력하고, 울릉도 내의 각종 이동 수단을 미리 예약할 수 있는 종합 플랫폼을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앱 개발은 이미 착수한 상태다.

사업 확장 관건은 투자 유치다. 마프는 지난해 9월 두나무앤파트너스, 델타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4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최 대표는 “계획대로면 인력은 연말까지 130명 정도 더 늘어날 예정”이라며 “올해 상반기까지 60억원을 더 모아 시리즈A 투자 라운드를 마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