숄츠에 SOS 쳐서 11시간 찍고 가는 일정 만들어…최고 등급 훈장 수여
영국서 찰스 3세·총리 회동에 의회 연설…파리선 한밤중 식사만
젤렌스키 무시하다 영국에 뺏겨…다급한 마크롱 파리 만찬 급조(종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애초엔 프랑스 방문을 계획하다가 영국으로 틀었으며, 파리 회동은 급조된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8일(현지시간) 젤렌스키 대통령 팀은 처음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측에 파리 방문을 타진했다고 외교관들을 인용해서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딱히 초청 메시지를 보내지 않던 중에 영국 정부가 기회를 낚아채서는 찰스 3세 국왕 면담과 의회 연설까지 조율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7일까지만 해도 먼저 런던으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가 9일 아침 유럽연합(EU) 특별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브뤼셀로 곧바로 가기로 돼 있었다.

심지어 영국에 도착한 8일 아침까지만 해도 파리 방문 계획은 없었다고 우크라이나 측 인사들은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영국 방문 일정을 뒤늦게 파악하고선 런던과 브뤼셀 사이에 파리를 찍고 가는 일정을 만들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고 외교관들이 전했다.

텔레그래프지는 마크롱 대통령측이 기자들의 질문에 "양국 정상이 지난주까지도 대화했다"고 답하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뒤로는 마크롱 대통령 부부의 공연 관람 계획까지 취소하면서 매달렸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무시하다 영국에 뺏겨…다급한 마크롱 파리 만찬 급조(종합)
WSJ에 따르면 다급해진 마크롱 대통령 측은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 측에 SOS를 쳤다.

한참 의회에서 연설하던 중인 숄츠 총리가 일정을 변경해서 파리 만찬에 합류할 수 있는지 문의했고, 최종 일정은 당일 오후가 돼서야 확정됐다.

그렇게 해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른 아침부터 런던에서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 무렵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가 기다리는 엘리제궁으로 이동해 오후 10시 30분 카메라 앞에서 차례로 소감을 밝혔다.

워낙 황급히 마련된 행사인 탓인지 숄츠 총리가 우크라이나 국기 앞에 잘못 선 것을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적하고, 마크롱 대통령이 둘에게 자리를 바꿔 서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텔레그래프지가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이번 만남이 "즉흥적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가 만나서 대화할 수 있도록 한 즉흥적인 아이디어에 감사하다"며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선 전쟁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야식 같은 만찬은 0시 30분께나 끝났고 마크롱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중에서도 등급이 가장 높은 '그랑 크루아'를 수여했다.

5개 등급 중 1등급에 해당하는 그랑 크루아 훈장은 프랑스 대통령이 받는 훈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에게 너무 과분하다"며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무시하다 영국에 뺏겨…다급한 마크롱 파리 만찬 급조(종합)
다음날 오전 9시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브뤼셀로 향하기 전까지 젤렌스키 대통령이 파리에 체류한 시간은 11시간 남짓. 만찬과 훈장 수여를 제외한 다른 공개 일정은 없었다.

프랑스 당국자들은 "영국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몇 주 동안에도 젤렌스키 대통령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는 등 늘 접촉하고 있고 계속 초청했다"고 주장했다고 텔레그래프지가 전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EU 정상회의에서 만날 젤렌스키 대통령을 굳이 파리로 초청해 따로 만찬을 주최하고, 훈장까지 수여한 것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국제 외교 무대에서 영국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전직 외교관 출신인 미셸 뒤클로 몽테뉴 연구소 특별고문은 AFP에 전쟁 후 처음으로 유럽 순방에 나선 젤렌스키 대통령이 만약 파리에 오지 않았다면, 마크롱 대통령의 위상이 떨어져 외교 정책에 실패했다는 인상을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론 무리한 일정 잡기에 EU 내에서도 반발이 나온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프랑스와 독일만 주목을 받은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