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국정 첫해 '여소야대 덫'에 걸리나 [홍영식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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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공약·정부 국정 과제 법안 및 예산안
민주당, “초부자감세” 등 명목 모두 틀어막아
공공임대주택 등 ‘이재명표 예산’은 줄줄이 증액
연간 1조원 넘는 예산 필요한 법안 50건 넘어
“여권, 野와 협상 전략 마련 시급” 지적도
민주당, “초부자감세” 등 명목 모두 틀어막아
공공임대주택 등 ‘이재명표 예산’은 줄줄이 증액
연간 1조원 넘는 예산 필요한 법안 50건 넘어
“여권, 野와 협상 전략 마련 시급” 지적도
2004년 3월 12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였다. 탄핵안 표결을 지휘한 뒤 국회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던 홍사덕 당시 한나라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홍 총무는 기자에게 “점심 약속이 없으면 내 사무실에서 도시락이나 같이 먹자”고 해 따라갔다. 도시락을 사이에 마주하고 있던 홍 총무의 표정이 매우 어두워 보였다. 기자는 “탄핵안 가결을 위한 사령탑 역할을 잘해 냈는데 표정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홍 총무의 발언 요지다. “박관용 (당시)국회의장과 탄핵안 상정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탄핵 전날 밤까지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받지 않더라. 탄핵 사유가 된 선거 중립 위반(“민주당을 뽑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 발언. 당시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소속)에 대해 유감 표명 정도라도 해주면 탄핵안을 상정하지 않겠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관철되지 못했다. 꼬마 민주당 시절 노 대통령과 함께해 본 적이 있어 그를 잘 안다.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전화까지 받지 않은 것은 탄핵으로 유도해 정치판을 뒤집으려는 의도다. 우리가 노 대통령의 전략에 말려들었다. 탄핵으로 인해 우리 당은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당장 총선이 걱정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뒤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국정 운영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국회의 주인은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당 한나라당이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표 국정 과제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집권 3개월도 채 안 된 2003년 5월 21일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한총련의 5·18 불법 시위와 전교조, 공무원 노조, 화물연대 등 잇단 집단 행동에 대한 불만 표시였지만 여소야대 상황에 대한 답답함도 담겨 있었다는 게 홍 총무의 분석이었다. 홍 총무의 예측대로 33일 뒤 치러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19년 전의 일을 꺼낸 것은 지금 정국 상황과 비교돼서다. 그때와 지금의 여야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 임기 첫해 목표로 한 국정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법안 처리가 관건이다. 하지만 거야(巨野)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10대 국정 과제 추진을 위한 것 등 100건에 달한다. 과반 의석(169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모두 틀어막으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것은 지난 7월 내놓은 세제 개편안 관련 법안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발의된 반도체 산업 지원 특별법인 ‘K-칩스법(첨단 전략 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은 민주당이 ‘대기업 특혜’라고 제동을 걸어 막혀 있다. 2차전지 생산을 위한 핵심 광물 확보 등을 논의할 대통령 소속 공급망안정화위원회 설치와 경제 안보 품목의 수입 국가 다변화 등을 위한 공급망기본법, 영구 임대 공동 관리비 및 공용 사용료에 대해 국비를 지원하는 내용의 장기공공임대주택법, 농촌재구조화 지원법 등 논의도 진전이 없다. 방위 산업 기업이 큰 부담을 갖고 있는 지체상금을 완화하는 방위 사업 계약 체결 및 이행 등에 관한 법, 원전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법, 노후신도시재생지원특별법, 재난관리자원법 등도 마찬가지다.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에서 가해자와 마주하고 증언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절차를 보완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희소 질환자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재난적 의료비지원법 개정안, 전자 장치 부착 명령 대상에 스토킹 범죄를 추가하는 스토킹범죄처벌법, 범인에게 직접 현금을 주는 보이스 피싱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적용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특별법’ 등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법안에서만 힘자랑하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의 대표 공약과 정부 주요 국정 과제 관련 예산을 줄줄이 삭감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 대표의 역점 사업 예산은 다수의 힘으로 대거 증액을 밀어붙이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 앞 용산공원 조성과 영빈관 신축, 관련 외교 네트워크 구축, 대통령실 시설 관리, 청와대 개방 및 활용, 행정안전부 내 검찰국 신설 관련 등 이른바 ‘윤석열표 예산’이 대거 칼질 대상이 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 우선 분양 등 공공 분양 지원 예산도 뭉터기로 깎였다. 새 정부 출범 첫해 핵심 정책에 대해선 협력해 주던 관행이 이번엔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헌법상 국회는 정부 예산안을 감액할 수는 있지만 정부 동의 없이 증액 또는 새 항목을 만들 수 없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정부 예산 편성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3·9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국회는 여전히 민주당이 집권당이라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공약 예산을 속속 되살리거나 증액 대상에 올렸다. 지역 화폐 발행 지원과 기초연금 지급, 쌀값 안정화 지원, 재생에너지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주택도시기금 중 공공 임대 주택 지원 예산도 단독으로 증액했다. 민주당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포퓰리즘성 법안들의 강행 처리에 나설 태세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매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어야 한다. 민주당의 기초연금 인상 법안은 연간 예산 6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일정 소득 이하의 청년에게 수당을 매달 10만~20만원 주자는 청년기본법 개정안은 향후 5년 동안 25조원~50조원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게 국회예산정책처의 계산이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재정을 세금으로 무기한 지원하는 법안 등 연간 1조원 이상 예산이 들어가는 법안을 50건 넘게 제출했고 여당이 반대하면 일방 처리를 공언하고 있다.
민주당이 재정 여건 등을 감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비판 받을 만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이 뾰족한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회법에 따라 예산안이 12월 2일까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다면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부의된다. 이 예산안이 과반 의석의 야당 반대로 부결되고 여야가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내년 ‘준예산’ 편성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정부와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각종 법안들은 윤석열 정부 첫해 국정 운영 성공 여부를 가른다.
거대 야당이 거의 대부분의 법안에 대해 반대하며 이 법안들과 성격이 반대인 맞불 법안들을 줄줄이 내놓고 관철시키겠다고 한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윤석열 정부 초반부터 국정 운영이 매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안팎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여론을 등에 업고 관철시키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칫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는 발언의 재판(再版)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여소야대 정국’의 현실을 인정한다면 싫든 좋든 이런 야당의 협조를 어떻게든 이끌어 내야 국정 동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에선 ‘국정 발목잡기’ 프레임만 내세울 뿐 협상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여권은 여소야대의 상황에 맞는 대(對)야당 정무적 전략을 전반적으로 새롭게 짜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지금은 고인이 된 홍 총무의 발언 요지다. “박관용 (당시)국회의장과 탄핵안 상정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탄핵 전날 밤까지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받지 않더라. 탄핵 사유가 된 선거 중립 위반(“민주당을 뽑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것” 발언. 당시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소속)에 대해 유감 표명 정도라도 해주면 탄핵안을 상정하지 않겠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관철되지 못했다. 꼬마 민주당 시절 노 대통령과 함께해 본 적이 있어 그를 잘 안다.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전화까지 받지 않은 것은 탄핵으로 유도해 정치판을 뒤집으려는 의도다. 우리가 노 대통령의 전략에 말려들었다. 탄핵으로 인해 우리 당은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당장 총선이 걱정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뒤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국정 운영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다. 국회의 주인은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당 한나라당이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표 국정 과제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집권 3개월도 채 안 된 2003년 5월 21일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한총련의 5·18 불법 시위와 전교조, 공무원 노조, 화물연대 등 잇단 집단 행동에 대한 불만 표시였지만 여소야대 상황에 대한 답답함도 담겨 있었다는 게 홍 총무의 분석이었다. 홍 총무의 예측대로 33일 뒤 치러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19년 전의 일을 꺼낸 것은 지금 정국 상황과 비교돼서다. 그때와 지금의 여야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 임기 첫해 목표로 한 국정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법안 처리가 관건이다. 하지만 거야(巨野)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10대 국정 과제 추진을 위한 것 등 100건에 달한다. 과반 의석(169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모두 틀어막으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것은 지난 7월 내놓은 세제 개편안 관련 법안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발의된 반도체 산업 지원 특별법인 ‘K-칩스법(첨단 전략 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은 민주당이 ‘대기업 특혜’라고 제동을 걸어 막혀 있다. 2차전지 생산을 위한 핵심 광물 확보 등을 논의할 대통령 소속 공급망안정화위원회 설치와 경제 안보 품목의 수입 국가 다변화 등을 위한 공급망기본법, 영구 임대 공동 관리비 및 공용 사용료에 대해 국비를 지원하는 내용의 장기공공임대주택법, 농촌재구조화 지원법 등 논의도 진전이 없다. 방위 산업 기업이 큰 부담을 갖고 있는 지체상금을 완화하는 방위 사업 계약 체결 및 이행 등에 관한 법, 원전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법, 노후신도시재생지원특별법, 재난관리자원법 등도 마찬가지다.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에서 가해자와 마주하고 증언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절차를 보완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희소 질환자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재난적 의료비지원법 개정안, 전자 장치 부착 명령 대상에 스토킹 범죄를 추가하는 스토킹범죄처벌법, 범인에게 직접 현금을 주는 보이스 피싱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적용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특별법’ 등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법안에서만 힘자랑하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의 대표 공약과 정부 주요 국정 과제 관련 예산을 줄줄이 삭감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 대표의 역점 사업 예산은 다수의 힘으로 대거 증액을 밀어붙이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 앞 용산공원 조성과 영빈관 신축, 관련 외교 네트워크 구축, 대통령실 시설 관리, 청와대 개방 및 활용, 행정안전부 내 검찰국 신설 관련 등 이른바 ‘윤석열표 예산’이 대거 칼질 대상이 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 우선 분양 등 공공 분양 지원 예산도 뭉터기로 깎였다. 새 정부 출범 첫해 핵심 정책에 대해선 협력해 주던 관행이 이번엔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헌법상 국회는 정부 예산안을 감액할 수는 있지만 정부 동의 없이 증액 또는 새 항목을 만들 수 없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정부 예산 편성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3·9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국회는 여전히 민주당이 집권당이라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공약 예산을 속속 되살리거나 증액 대상에 올렸다. 지역 화폐 발행 지원과 기초연금 지급, 쌀값 안정화 지원, 재생에너지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주택도시기금 중 공공 임대 주택 지원 예산도 단독으로 증액했다. 민주당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포퓰리즘성 법안들의 강행 처리에 나설 태세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매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어야 한다. 민주당의 기초연금 인상 법안은 연간 예산 6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일정 소득 이하의 청년에게 수당을 매달 10만~20만원 주자는 청년기본법 개정안은 향후 5년 동안 25조원~50조원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게 국회예산정책처의 계산이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재정을 세금으로 무기한 지원하는 법안 등 연간 1조원 이상 예산이 들어가는 법안을 50건 넘게 제출했고 여당이 반대하면 일방 처리를 공언하고 있다.
민주당이 재정 여건 등을 감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비판 받을 만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이 뾰족한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회법에 따라 예산안이 12월 2일까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다면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부의된다. 이 예산안이 과반 의석의 야당 반대로 부결되고 여야가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내년 ‘준예산’ 편성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정부와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각종 법안들은 윤석열 정부 첫해 국정 운영 성공 여부를 가른다.
거대 야당이 거의 대부분의 법안에 대해 반대하며 이 법안들과 성격이 반대인 맞불 법안들을 줄줄이 내놓고 관철시키겠다고 한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윤석열 정부 초반부터 국정 운영이 매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안팎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여론을 등에 업고 관철시키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칫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는 발언의 재판(再版)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여소야대 정국’의 현실을 인정한다면 싫든 좋든 이런 야당의 협조를 어떻게든 이끌어 내야 국정 동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에선 ‘국정 발목잡기’ 프레임만 내세울 뿐 협상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여권은 여소야대의 상황에 맞는 대(對)야당 정무적 전략을 전반적으로 새롭게 짜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영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