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생을 아름다워' /사진=공식 포스터
영화 '인생을 아름다워' /사진=공식 포스터
인생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코미디와 노래라는 상반되는 질감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어딘가 어색하고 촌스럽지만 정확하게 가슴 한 곳을 파고들었다. 죽음을 앞둔 한 여성, 그의 가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이 진부한 설정이 과연 인생은 아름답다는 걸 납득시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웬걸, 투박한 감성이 이내 모든 의심의 싹을 자른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다.

오세연(염정아 분)은 '희생의 아이콘'이다. 그는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철저히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잃어버린 삶을 살았다. 사춘기 딸은 '엄마 혐오증'에 걸린 듯 세연만 보면 치를 떨었고, 아들 역시 미소 한번 지어주지 않았다. 최악은 남편 강진봉(류승룡). 진봉은 아내를 화장실에 휴지를 채워 넣는 사람, 덜 마른 빨래를 말려주는 사람 정도로 여겼다. 세연의 삶은 늘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삶은 야속했다. 가족에 헌신하는 세연에게 '폐암'이라는 비극을 안겼다. 진봉은 버럭 화를 냈고, 수능 전까지 아이들에게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세연은 어딘가 서글퍼졌다. 딸을 위해 만들어둔 새우튀김은 밤이 되도록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바삭'. 한 입 베어 무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결심했다. 사랑을 찾겠다고.

세연은 진봉에게 마지막 생일선물로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했다. 두 사람이 세연의 첫사랑 상대를 찾아 나서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단서는 달랑 사진 한 장. 부부는 부산, 목포, 완도 등 전국을 떠돈다. 그 과정에서 세연은 풋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곁을 지키는 진봉과의 추억을 만나기도 한다.
웃다가, 울다가, 노래하는…'인생은 아름다워' [리뷰]
웃다가, 울다가, 노래하는…'인생은 아름다워' [리뷰]
'인생은 아름다워'는 국내 첫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다. 일반적으로 뮤지컬 영화라 하면 웅장하고 무게감 있는 음악과 어우러진 화려한 영상미를 떠올릴 테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는 현실적이다 못해 소박하며 관객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추억의 대중가요를 곳곳에 배치했다.

신파 스토리가 주를 이루는 영화임에도 기시감이 들지 않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바로 음악의 힘이다. 극 초반에는 상황에 어울릴 법한 가요가 작위적으로 짜 맞춰 들어간 느낌이 들어 헛웃음이 지어지기도 하지만, 중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이 적절하게 영화에 녹아든다.

신중현의 '미인',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 유열의 '이별이래',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 '솔로예찬', 이승철의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등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친 명곡들이 세연의 과거와 현재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세연과 진봉이 신혼여행 장소였던 부산을 찾는 장면에서 '부산에 가면'이 흘러나올 땐 울컥하는 기분과 함께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까지 든다.

염정아와 류승룡은 노래와 춤을 직접 다 소화했다. 담백한 염정아의 창법과 무게감 있는 류승룡의 발성이 안정감 있게 조화를 이룬다. 염정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박세완과 첫사랑 상대역을 맡은 옹성우의 호흡도 눈여겨볼 만하다.
웃다가, 울다가, 노래하는…'인생은 아름다워' [리뷰]
웃다가, 울다가, 노래하는…'인생은 아름다워' [리뷰]
영화는 예상 가능한 결말을 맞는다. 큰 반전과 자극을 주지 않는다. 결국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중심엔 사랑이 있었다. 사랑을 발견한 세연은 비로소 죽음 앞에서도 말할 수 있었다. 인생은 아름답다고. 스토리부터 구성, 음악, 결말까지 참으로 촌스러운데, 어느새 작품에 깊게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투박한 감성이 이내 순도 높은 메시지를 완성했기 때문일 터.

웃다가, 울다가, 노래하고, 춤추고. 영화 곳곳에 흩뿌려진 다양한 감정들은 곧 '이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간혹 튀어나오는 B급 코미디까지 이보다 더 완벽하게 삶을 노래할 순 없을 테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