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내려 예비군 30만명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하기로 한 뒤 일주일 만에 이미 20만명 가량이 국경을 넘어 해외로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연합(EU), 조지아,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 인근 국가들의 집계 등을 인용해 부분 동원령 이후 조국을 떠난 러시아인들이 2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1일 푸틴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에 서명한 뒤 카자흐스탄에 약 9만8000명, 조지아에 5만3000명 가량의 러시아인이 입국했다. EU에는 지난주에만 러시아인 6만6000명이 입국했다. EU의 러시아인 입국자 수는 전 주보다 30% 늘었다. 러시아인들이 특히 몰린 EU 국가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다.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이 러시아 입국자 수를 공개하지 않아 실제 숫자는 더 많을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추정했다. 앞서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는 지난 21~24일 동안에만 러시아인 26만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이들이 고국을 벗어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부분 동원령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분 동원령 이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전체 예비군 2500만명 중 30만명만 징집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군 경험이 없거나 나이가 많은 남성들에게까지 소환장이 날아오면서 러시아인들 사이 불안이 가중했다. 러시아 정부가 젊은 남성들의 ‘엑소더스’(대탈출)를 본격적으로 막을 것이라는 우려가 더해지면서 ‘탈(脫)러시아’를 택하는 경우가 더 급증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지난 26일 러시아인들의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한 계엄령 발동이나 국경 폐쇄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8일 조지아와 국경을 맞댄 북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세르게이 메냘로 수반은 조지아 접경지대에 차량통행을 제한했다고 발표했다. 북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은 러시아 소속이다. 역시 28일 러시아 정부는 소환장을 받은 러시아 남성에게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웃 국가들은 탈주한 러시아인들을 향해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조지아와 카자흐스탄 국민들 사이에서 반(反)러시아 정서가 강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를 침공했다. 조지아의 한 의원은 최근 러시아인 입국 급증에 대해 “탱크 없는 합병 시도”라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조지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러시아의 반대에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