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선의를 내세운 '정치금융'의 함정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금리 상승세에 편승한 불법 사금융 피해 우려가 크다”며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불법 사금융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고, 저신용자 지원 및 피해자 보호에 총력을 쏟기로 했다.

윤 대통령이 갑작스레 불법 사금융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건 법정 최고금리가 연 20%까지 내려간 이후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리는 ‘풍선효과’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불법 사채에 내몰리는 서민들

올 들어 시장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대출 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로 꼽히는 저신용·저소득층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정부가 대출 약자를 보호하겠다며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연 20%로 낮춘 이후 이들은 불법 사채 시장으로 밀려나고 있다. 제도권 대출 시장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대부업체들이 연체를 걱정해 이들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법정 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로 대출받던 취약계층이 대출 시장에서 배제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최고금리 인하가 오히려 대출 문턱을 높였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대부업 이용자는 112만 명으로,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진 이후 11만 명 줄었다. 금감원은 이들 중 상당수가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금감원이 접수한 불법 사금융 상담·신고는 9238건으로 전년보다 26% 늘었다.

법정 최고금리는 금융회사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 대출 시장에서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2002년 10월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당시 최고금리는 시행령을 통해 연 66%로 정해졌다. 이후 일곱 차례 시행령이 개정됐다.

최고금리 더 낮추겠다는 정치권

부작용이 적지 않은데도 정치권에선 법정 최고금리를 더 낮추려는 법안이 잇달아 추진되고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최고금리를 연 12%로 내리는 이자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법정 최고 이자율을 넘어선 대출의 계약을 무효로 하는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 대표는 최고금리를 연 11.3%까지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의원은 모두 금리 상승기에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선의’에서 법안을 발의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법정 최고금리가 더 낮아지면 저신용 서민의 자금줄이 끊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금리 대출을 취급하는 2금융권이 최고금리가 내려가면 저소득층에 대한 대출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법정 최고금리가 2%포인트 인하되면 2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약 65만 명이 대부업체나 비제도권 금융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은행 예대금리차 공시제 역시 선의에서 추진했지만 오히려 서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정책으로 꼽힌다. 금리차가 높게 나온 은행이 금리차를 줄이기 위해 수신금리를 높이고 대출금리는 낮추는 과정에서 취약계층의 대출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정부와 정치권은 그동안 선의를 내세워 금융시장에 개입해 왔지만 금융시장은 이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시장이 언제나 이들보다 ‘한 수 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