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누가 '미친 집값' 잡았나
영국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가 1898년 내놓은 공상과학 소설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은 지금까지 영화,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걸작이다. 화성에 종말이 닥치자 거대한 눈과 촉수를 가진 화성인은 지구를 공격한다. 인간은 초록색 열선과 독가스로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이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가 정복당했다고 절망하는 순간 대반전이 일어난다. 화성인은 지구의 박테리아에 감염돼 갑자기 전멸한다. 그들은 인간의 반격과 관계없이 허무한(?) 최후를 맞을 운명이었다.

정권 바뀌자 안정된 부동산

출범 초기부터 문재인 정부를 가장 괴롭힌 것은 집값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두 달 뒤인 2017년 7월 “부동산 가격을 잡으면 기획재정부에 피자 한 판씩을 쏘겠다”며 집값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2019년 11월)는 현실 부정은 끝까지 갈 수 없었다. 문 대통령은 ‘정말 부동산 부문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다”(2021년 5월), “부동산 문제는 제가 여러 차례 송구스럽다는 사과 말씀을 드렸다”(2021년 11월)며 고개를 숙였다.

부동산 정책 실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거의 궤멸하다시피 한 보수정당을 되살렸고 정권 교체에까지 이르게 했다면 과언일까. 집값 급등이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런 철옹성 같은 부동산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놀랍게도 집값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족’이 대거 몰렸던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외곽부터 하락이 시작되더니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을 거쳐 철옹성 강남까지 속절없이 내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5년 동안 전력을 기울여도 못 잡았던 집값을 윤석열 정부는 출범 3개월여 만에 안정시켰는데도 대통령 지지율은 한때 20%대로 추락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전 정부 때와 세상이 어떻게 달라진 것일까.

무모했던 집값과의 전쟁

되돌아보면 문재인 정부 때는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경제가 좋지 않았는데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미국 등 전 세계는 돈을 무지막지하게 풀었다. 집만 오른 게 아니고 주식도 올랐고 암호화폐도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몇십년 만에 최고 수준인 인플레이션으로 전 세계가 긴축으로 돌아섰다. 미국 등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숨가쁘게 올리고 있다. 시중에 풀었던 돈을 다시 빠르게 빨아들이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6.3% 올랐다. 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6%를 넘은 건 외환위기였던 1998년 말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올초 연 1.25%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연 2.50%로 치솟았다. 월급 받아서 생활비 대기도 빠듯해졌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 이자를 감당하면서 집을 살 수가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렇게 허탈하게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니 이전 정부가 5년간 벌였던 집값과의 전쟁이 더 허무하게 다가온다. 집값에 인위적인 정치 프레임을 입혀 도도하고 거대한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려고 한 것은 결과적으로 무모했다. 집값이 문 정부 5년간 폭등했던 만큼 하향 안정되면 국민들의 주거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윤 정부가 전 정부와 달리 공급 확대로 집값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것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다. 이를 제대로 실천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