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약세장에 접어들어 펀드 투자자들의 손실이 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내홍을 겪거나 최고경영자(CEO) 물갈이와 인력 이동 등으로 전환점을 맞고 있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장기 가치투자 전도사로 유명한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최근 차명 투자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달 말 전격 사임했다.

2014년 취임 이후 메리츠자산운용을 이끌어온 리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증시에서 이른바 '동학 개미 운동'을 이끄는 개인 투자자들의 멘토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리 대표는 최근 불거진 차명 투자 의혹으로 신뢰에 금이 갔다.

메리츠운용은 P2P(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투자 4개 사모펀드를 리 대표의 배우자가 지분 일부를 소유한 P사 상품에 투자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고 금감원에 의혹을 충분히 소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메리츠자산운용은 한 직원이 회사 자금을 무단 인출한 사실이 적발되는 등 연이은 악재로 부침을 겪고 있다.

메리츠자산운용은 A씨를 징계 면직하고 금융감독원에 횡령 사실을 보고하는 한편 지난 6일 검찰에 A씨를 고발했다.

메리츠자산운용은 이동진 전 메리츠금융지주 전무를 새 대표로 선임하고 악재를 수습 중이다.

이 신임 대표는 화재, 금융지주, 증권 등을 두루 거쳤으나 운용사 경험은 없는 인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오는 2025년 정기주주총회 때까지 메리츠자산운용 경영을 맡는다.

이로써 국내 운용업계에 정통 가치투자 CEO는 사실상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만 남게 됐다.

허 대표는 "최근 몇 년간 가치투자 펀드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국내 운용업계에서 가치투자가들이 거의 다 자취를 감췄다"며 "금리 인상 기조 속에 다시 가치주 투자 주식형 펀드가 주목을 받으면서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업계, CEO·인력이동에 조직개편…악재 진화·ETF 강화
업계 상위권 업체들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을 놓고 최고경영자 교체와 인력 이동,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쟁에 나섰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움직임이다.

국내에 ETF를 처음 도입한 배재규 전 삼성자산운용 부사장이 새 대표로 선임돼 ETF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한투운용은 지난달 마케팅, 상품개발, 글로벌 운용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배 대표이사 취임 후 첫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대표이사 직속으로 디지털 마케팅과 상장지수펀드(ETF) 마케팅을 총괄할 '디지털ETF마케팅본부'를 신설했다.

최근에는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사업에서 운용, 컨설팅, 마케팅을 전담할 솔루션본부를 대표이사 직속 조직으로 만들었다.

솔루션본부장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아울러 27년의 리서치 경험을 갖춘 자산배분 전문가인 박희운 전 KB증권 리서치센터 전문위원이 맡았다.

배 대표는 "운용사는 신뢰가 회복되면 5∼6년 걸리더라도 돈은 움직이게 돼 있다"며 "운용 스타일이 액티브에서 패시브로 대세가 넘어가 ETF는 클 수밖에 없는 시장이므로 주력으로 키워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초고속 승진한 김남기 ETF운용부문 대표(전무)를 통해 ETF 운용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CEO·인력이동에 조직개편…악재 진화·ETF 강화
반면 ETF 선두주자인 삼성자산운용은 핵심 인력이 빠져나간 자리에 증권사 출신이나 해외 인사를 채우고 있다.

삼성자산운용 새 수장에 선임된 서봉균 대표는 골드만삭스를 거쳐 삼성증권 운용부문장과 세일즈앤드트레이딩 부문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서 대표는 해외 ETF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최근 홍콩 릭소자산운용에서 ETF를 담당하던 김영준 헤드를 영입해 글로벌ETF 담당 임원으로 앉힐 계획이다.

또 조직개편을 통해 ETF운용본부와 ETF컨설팅본부를 산하에 둔 ETF 사업 부문도 출범시켰다.

ETF 시장 규모는 지난 6일 기준 73조5천442억원으로 집계됐다.

현재 22개 운용사가 592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운용사들이 CEO를 교체하고 인력 영입과 조직개편을 단행했다"며 "후발주자들이 속도를 내는 ETF 시장 쟁탈전이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