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하이트진로의 소주 '참이슬' 등 발주된 주류들이 쌓여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하이트진로의 소주 '참이슬' 등 발주된 주류들이 쌓여 있다. /뉴스1
“소주 상자 열 짝(한 짝당 30병)을 주문했는데 겨우 두 짝 들어왔어요.”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고깃집 사장 김모씨(41)는 미리 받아놓은 소주 박스를 이리저리 옮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민주노총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주 파업으로 소주 물량을 확보하는 게 어려워져서다. 그는 “주류업체에선 이미 참이슬 등 일부 소주 물량이 소진됐다며 발주가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며 “거리두기가 끝나고 이제 저녁 장사를 좀 해보려는데 이대로면 이번 달도 공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소주 대란’이 현실화될 조짐이 보인다. 그간 코로나19에다 최근 각종 물가 인상으로 가뜩이나 힘든 자영업자들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이미 일부 편의점과 자영업자들은 소주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지난 7일 오비맥주 이천·청주·광주공장에서 화물연대 소속 노조원들이 운송 거부에 돌입하면서 소주 수급이 곧 막힐 지경에 처했다. 이천공장과 청주공장은 하이트진로 소주 생산의 70%를 차지한다. 출고율은 계속 떨어지는 중이다. 이천공장 평균 출고율은 45%, 청주공장은 25%로 줄었다. 이들 공장 물량은 대다수 수도권과 충청권에 공급된다.
 민주노총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주의 파업으로 편의점 업계가 소주 물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진열된 소주. /연합뉴스
민주노총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주의 파업으로 편의점 업계가 소주 물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진열된 소주. /연합뉴스
파업이 길어지면 편의점, 대형마트, 음식점 등에서 소주 품귀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편의점 업계는 일부 발주를 막는 조치에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은 하이트진로의 소주 제품 일부에 대해 발주 제한을 하고 있다. CU는 일부 물류센터에서 출고되는 참이슬 후레쉬에 대해 8일부터 발주 제한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세븐일레븐과 미니스톱의 경우도 지난 4일부터 참이슬과 진로에 대해 점포당 1일 한 박스로 발주를 제한한 상태다.

편의점 점주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재고가 많이 안 남아 걱정” “소주 고객이 줄어 매출에 타격이 있을까봐 불안하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때문에 일부 자영업자들은 ‘소주 사재기’에 나섰다. 주류 도매상들이 재고를 확보해놓고 있어 당장 품귀 현상은 빚지 않았지만, 파업이 길어지면 물량 확보가 크게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동작구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양모 씨(36)는 “불안해서 가게 한 켠에 밀가루, 주류, 식용유 등 각종 재료들을 채워놨다”며 “가게가 좁아 손님이 올때마다 짐들을 옮기면서 쌓아두는 중이다. 손님들이 불편해하지만 발주가 끊길까봐 불안해서 최대한 재고를 확보해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관악구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이모 씨(61·여)도 “발주처에서 물량이 없다며 소주를 한 짝밖에 안 주더라”면서 “가정용 주류를 업장에서 판매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혹시 몰라 소주를 구하려 인근 마트를 다 돌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 씨는 “저녁 장사는 술이 없으면 유지하기 힘든데 매출에 타격이 있을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했다.
경기 이천시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으로 주류도매업체 용달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뉴스1
경기 이천시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으로 주류도매업체 용달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소주 물류 차질이 이어지자 주류 도매상이 트럭을 끌고 와 직접 참이슬, 진로 등 소주를 운송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소주가 제때 물류센터에 오지 않자 사정이 급해진 탓이다. 한 주류 도매사 관계자는 “공장에 새벽 4시부터 줄 섰는데 8시간이 지나서야 물건을 실을 수 있었다”며 “그나마도 조합원들이 과적을 지적하며 한 차에 평소 주문하던 물량의 3분의 1 수준의 물건을 주더라”고 털어놨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