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교 변호사의 상속분쟁 A-Z’는 날로 늘어가는 상속분쟁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을 법리와 사례를 통해 살펴봅니다. 최근 자산가치가 급등에 따라 상속재산 가액도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른 상속인들 간의 분쟁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법무법인 바른의 상속분쟁 전문가인 이응교 변호사가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상속분쟁 동향, 분쟁 방지를 위해 고려해야 할 점, 분쟁 발생 시 대응법 등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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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로 한 근대민법에서 사적자치와 소유권 존중은 그 근간이 된다. 따라서 개인이 생전에 자기 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고 사후에도 그 처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근대민법의 기본정신과 배치되지 않는다.

그런데 국내 민법은 일정한 범위의 근친에게 일정한 범위의 법정상속분을 유보해 보장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그것이 바로 유류분이다.

유류분은 피상속인의 자유로운 재산처분행위로부터 유족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상속재산형성에 대한 기여와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를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유언의 자유에 대해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유류분이 한국만의 고유한 제도는 아니다. 독일, 일본, 프랑스, 스위스 등 여러 나라에서도 그 청구권의 법적 성격 및 범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유류분제도를 두고 있다. 또한 흔히 영미법에는 유류분제도가 없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렇지 않다.

영미법에도 피상속인의 유언 자유를 제한해 남은 유족의 부양과 정당한 청산을 보장하는 제도가 있다. 영국에서는 ‘유족유산분여제도’라는 제도가 있다. 피상속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 피부양자를 위해 법원이 상속재산으로부터 일정액을 지급할 것을 명하는 제도다.

이러한 유족유산분여제도의 인정 범위는 점차 확대됐다. 현재 영국의 유산분여제도는 대륙법의 유류분제도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도 유언의 자유가 기본적으로 강력하게 보장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에선 유류분제도와 유사한 ‘유족부양청구권’을 인정한다. 특히 배우자의 정당한 몫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배우자의 강제분을 보장하고 있다.

즉, 피상속인이 유언에 의해 본인 명의 재산을 임의로 처분한다면 그 재산의 형성과 유지에 기여해 온 배우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을 고려해 배우자에게 일정 범위의 강제분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도 실질적으로는 대륙법계의 유류분제도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나라에 공통으로 제도화된 유류분의 정신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법과 게르만법에까지 닿게 된다. 유류분제도의 역사와 보편성은 뿌리 깊은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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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서 유류분 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나타나면서, 제도적 변화에 대한 요구도 강하게 일고 있다. 평균 수명의 증가와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산, 1인 가구의 증대 등은 유류분의 부양적 기능의 의미를 약화했다. 그에 반해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가 확대되어 보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진 것이다.

유류분제도로 인해 상속인들 사이의 분쟁이 필연적으로 유발된다는 시각도 있다. 유류분제도에 대해 2010년, 2013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있었지만, 법원은 계속해서 유류분제도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고 있다.

유류분제도의 위헌성과 관련해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사건들도 수십건에 이른다. 그만큼 유류분제도가 시대적 변화에 직면했고, 수정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의 경우 전통적으로 유류분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제정민법에도 없다가 1977년 민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됐다. 현행 민법에 따르면, 유류분권리자는 모든 상속인이 아니라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배우자, 직계존속, 형제자매다.

피상속인의 4촌 이내 방계혈족의 경우 상속권은 있지만 유류분권리자는 아니다. 이러한 유류분권리자의 범위를 축소해 형제자매를 유류분권리자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법무부 민법 개정안이 올해 4월 국회를 통과했다.

기존까진 직계비속, 배우자, 직계존속이 없는 피상속인이 사망하게 되면, 그 형제·자매도 유류분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법률 개정으로 직계비속, 배우자, 직계존속이 없는 피상속인은 자기 형제·자매의 유류분 권리의 제한 없이 자유로이 자기 상속재산을 처분할 수 있게 됐다.

형제자매간의 경제적 유대관계가 약화한 사회적 현실, 망인의 상속재산 처분의 자유를 존중한 결과라는 것이 법무부가 설명하는 개정입법의 취지다.

현재 실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유류분반환청구사건은 주로 피상속인의 자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쟁이다. 피상속인에게 직계비속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직계비속 사이의 상속분쟁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기 때문에 2순위 유류분권리자인 형제·자매의 유류분권리가 문제 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급속하게 늘고 있는 1인 가구의 상속 사례가 다수 발생할 미래에는 위와 같은 법 개정이 갖는 의미가 더욱 커질 것이다.

이처럼 유류분제도가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향후 유연한 방식으로 수정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그러나 유류분제도 자체의 역사성과 비교법적 보편성 등을 고려해 보면 유류분제도 자체의 폐지 가능성은 높지 않다.

생(生)과 사(死)를 피할 수 없는 이상, 상속은 누구나 일생에 한 번 이상은 겪게 되는 법률 이슈다. 유류분제도는 상속분쟁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상속분쟁을 해결하는 열쇠다.

또한 생전의 현명한 상속설계에도 도움을 준다. 유류분은 해당 상속인의 법정상속분의 1/2 또는 1/3과 같이, 그 권리의 범위가 단순하게 표현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산으로 들어가면 매우 기술적인 측면이 많고, 일반적인 상식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무엇이든 자세히 보아야 그 내용과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유류분제도 역시 그렇다.
45년 역사의 유류분제도, 폐지될 수 있을까 [이응교 변호사의 상속분쟁 A-Z]
이응교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제42기 사법연수원 수료
서울대금융법무과정 제8기 수료
가족법학회 회원
상속신탁연구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