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어제 전체회의를 열어 노동자 대표를 공공기관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제 안건조정 때 합의했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날 표결엔 참석하지 않았다.

노동이사제는 국가 장래야 어찌되든 득표 유불리만 판단 잣대로 삼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작년 11월 한국노총에서 “공공기관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 한두 명 참여한다고 경영에 무슨 문제가 되겠냐”며 패스트트랙까지 언급하며 신속 처리를 약속하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뒤질세라 “노동자 쪽에 표가 많다”며 당론과 반대로 덜컥 받아들여 사실상 입법이 기정사실화돼 버렸다.

노동이사제는 경제계가 우려하는 민간기업 확대 적용은 둘째치고 공공부문 도입만으로도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미 노조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판에 이사회에까지 참여한다면 경영진의 노조 눈치보기는 불 보듯 뻔하다. 이사회에서 노동이사가 극력 반대하는 사안을 밀어붙일 배짱 있는 공기업 사장이 얼마나 될까 싶다. 방만경영에 따른 공기업 구조조정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 자명하다. 자산 2조원 이상 38개 대형 공공기관 중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공기업’이 19곳이나 된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면 공기업 구조조정이 어려워질 게 뻔하다. 오죽하면 여당 청년 최고위원조차 “노동이사제가 공공부문의 청년 고용 문턱을 높이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공개 반대했을 정도다.

이 정부의 개국공신으로 특권집단화한 민노총 등 노동계는 노동이사제라는 더 센 칼을 쥐게 됐다. 노동계로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무차별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등 친노조 정책을 펴온 이 정부가 ‘도깨비 방망이’나 다름없다. 이런 마당에 노동이사제로 ‘노영(勞營)’의 단초까지 확보했으니 기울어진 운동장은 아예 뒤집힐 지경이 됐다. 신년 벽두부터 “부자 곳간 털러 가자”는 민노총이 노동이사제의 민간 확대를 내걸고 어떤 투쟁을 벌일지 기업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대부분 선진국들은 노동이사제를 법제화하지 않고, 기업 자율에 맡긴다. ‘모델국가’라는 독일은 한국과 같은 경영이사회가 아니라 별도 감독이사회에만 참여시킨다. 고용 유연화를 위한 노동개혁은 나몰라라 하면서 노동계 표 계산에만 혈안이니 제대로 된 일자리가 어디서 나오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