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화 작곡가 "문화 수준 높인 롯데, 화음으로 풀어냈죠"
3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1921~2020)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였다. 이 자리에서 신 창업주를 기리고 추모하는 곡이 초연됐다.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대 교수인 작곡가 조은화(48·사진)가 쓴 관현악곡 ‘상전(象殿) 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 상전은 신 창업주의 호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곡가가 왜 기업인의 추모곡을 썼을까.

“고향이 부산이라 롯데 자이언츠밖에 몰랐는데 신 창업주의 회고록을 읽으며 생각이 달라졌어요. 한 끼 제대로 먹기도 어렵던 시절에 롯데제과를 설립해 우리에게 ‘맛의 쾌락’을 알려줬고, 놀이동산을 세워 어린이들에게도 욕구와 욕망이 있음을 알게 해줬죠. 신 창업주는 사회의 미적 수준을 높인 기업가였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만난 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조 교수는 한스아이슬러대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웠고 주요 콩쿠르를 섭렵했다. 2008년 한국인 최초로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우승했고, 이듬해엔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특정 개인에 관한 곡을 쓴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 건축가 오쿠노 쇼가 쓴 《신격호의 도전과 꿈》을 읽고 신 창업주뿐 아니라 롯데그룹에 작품을 헌사하고 싶었다”며 “우리나라 문화 수준을 드높여온 롯데의 성과를 화음으로 풀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롯데문화재단으로부터 작곡을 위촉받은 그는 1년에 걸쳐 약 9분 길이의 관현악곡을 완성했다. 파사칼리아는 스페인의 3박자 춤곡으로, 주 선율을 저음부터 반복해 변주해 나가는 게 특징이다. 조 교수는 여기에 동양음악의 연주 기법을 접목했다. “신격호의 영문 이니셜에서 S와 H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름에서 D와 B를, 롯데에선 L과 E를 따서 선율을 빚어냈습니다. 이들 알파벳을 독일어로 바꾸면 여섯 가지 으뜸음이 나타나는데, 이 음표로 주선율을 구성했지요.”

리듬도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롯데타워의 형태가 붓과 비슷하다는 데 착안해 직접 붓글씨를 쓰며 박자와 소리의 강약을 맞췄다. 붓이 화선지 위로 상승하는 순간을 ‘크레셴도(점점 크게)’로 표현하는 식이다.

지휘자 정치용이 이끄는 경기필하모닉이 연주한 조은화의 신곡은 이날 음악회의 서곡 격이었다. 이 곡에 이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경기필하모닉과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들려줬고, 소프라노 신영옥은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열창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신세계로부터)’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